너의 마음을 만지는 순간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발견하는 작은 기적들에 대하여

by 도토리샘

하늘이 잿빛으로 물든 겨울날이었다. 지하철에서 본 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의자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고, 그 옆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살며시 다가와 자신의 무릎담요를 덮어주었다. 그 순간 나는 '공감'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와는 깊은 인연을 맺기도 하고, 누군가와는 한 번의 눈빛만 나누고 영영 이별하기도 한다. 그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우리를 진정으로 이어주는 건 '공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다.


새벽에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이웃집 부모님 마음이 내 마음처럼 느껴지고, 출근길 버스에서 마주친 지친 직장인의 한숨 속에서 나를 본다. 식당 주방에서 땀 흘리는 아주머니의 굽은 허리를 보며 엄마가 생각나고, 편의점 알바생의 어색한 미소에서 내 청춘을 마주한다. 이렇게 공감은 타인의 삶 속에서 나를, 내 삶 속에서 타인을 발견하게 하는 양방향 거울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폰 속에는 수백 명의 '친구'가 있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모티콘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웃기게도 마음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수많은 '좋아요' 속에서도 진정한 이해와 위로를 목마르게 찾고 있다.


공감은 그저 "그랬구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 사람의 기쁨에 덩달아 미소 짓게 되는 것. 바로 그게 진정한 공감이다. 거울처럼 감정을 그대로 반사하는 게 아니라, 따뜻한 햇살처럼 상대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거다.


우리 뇌 속에는 '거울뉴런'이라는 신기한 세포들이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볼 때 마치 내가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세포들. 우리가 태생적으로 공감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증거일 텐데, 현대 사회는 이런 타고난 공감 능력을 무뎌지게 만든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물리적 거리두기를 경험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공감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화면 너머의 목소리와 문자 메시지로는 채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작은 표정의 변화를 읽어내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우리에겐 필요했다.


완벽한 공감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각자의 삶이 너무나 다르고, 경험하는 감정의 깊이도 다르니까.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공감하려 노력한다. 서툴고 어설픈 위로라도, 그 진심은 분명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테니까.


특히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런 인간다운 공감의 가치는 더욱 빛날 거다. 기계는 감정을 분석하고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는 있겠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건 불가능하니까.


결국 공감은 '나'와 '너'의 경계를 지우고 '우리'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그것은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때로는 큰 용기가 되며, 때로는 작은 희망이 된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의 눈물에 마음이 젖어들며,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진정한 공감의 순간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누군가의 마음을 만지는 순간, 내 마음도 따뜻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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