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우리가 마주하는 작은 죽음들에 관하여

by 도토리샘

나는 오늘도 실망을 마주했다. 창가에 앉아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그 무거운 감정을 들여다본다. 실망이란 감정은 참으로 이상하다. 기대라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의 그 순간적인 허공감과, 이어지는 둔탁한 착지감. 그리고 남는 것은 희미한 멍과 같은 아픔이다.


어린 시절, 나는 실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실망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산타클로스가 두고 간 선물이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 아니어도, 그저 새로운 장난감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친구와의 약속이 취소되어도, 곧 다른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라 믿었다. 실망은 마치 봄날의 소나기처럼 금세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실망은 더욱 깊어졌다. 마치 시간이 쌓이면서 실망도 함께 켜켜이 쌓이는 것처럼. 누군가는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기대치가 높아지고, 현실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실망도 함께 자란다. 때로는 그 실망이 너무 커서, 마치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는데 오히려 핀잔을 들었을 때, 밤새워 준비한 발표가 상사의 차가운 반응으로 무너졌을 때, 전화번호를 교환한 소개팅 상대가 연락을 건너뛰었을 때. 그때마다 나는 실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와 마주했다. 그림자는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드리워졌지만, 언제나 내 발밑에 존재했다.


실망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그것은 항상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태어났다. 마치 단단한 줄을 잡고 있다가 그것이 허공인 것을 깨달은 때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바라고, 꿈꾸고,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이라는 감정의 늪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실망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직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완전히 체념한 사람은 실망조차 하지 않는다. 실망은 우리가 아직 살아있고,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집 앞 작은 화분을 가꾸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싹이 나기를 기다린다. 어떤 씨앗은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 느끼는 실망감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도 다음 계절이 오면, 다시 씨앗을 심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실망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때로는 우리의 기대가 비현실적이었음을, 때로는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함을, 때로는 우리가 잘못된 곳에 희망을 걸었음을 알려준다. 실망은 아프지만, 그 통증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마치 운동 후의 근육통처럼, 그 아픔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오십이 넘어가면서 나는 실망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실망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그림의 한 부분일 뿐이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듯이, 성취가 있으면 실망도 있다. 이것이 바로 삶의 균형이 아닐까?


때로는 실망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처음 계획했던 길이 막혔을 때의 실망감은 크지만, 그것이 우리를 예상치 못한 기회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실망은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일 수 있다.


이제 나는 실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아프고, 때로는 힘들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아직도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는 증거다. 실망은 우리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인내를 배우게 하며, 때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비가 그치고 창밖으로 흐릿한 무지개가 보인다. 실망도 이와 같다. 먹구름이 걷히면 그 자리에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그 순간을 견디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실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는 우리 삶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어둠이 아니라, 우리가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이 작은 깨달음을 안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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