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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페이정윤 Oct 07. 2024

시부모랑 결혼한 며느리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 골라도 어찌 이렇게 없이 사는 놈을 골라?" ​


화장실 청소를 해 주는 엄마는 내내 골이 나 계셨다. 혼자하겠다는 걸 굳이 와서 도와주면서 딸의 마음에 비수를 팍팍 꽂는다. 신혼집 청소를 하는 날, 엄마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셨다. 신혼집은 청소해봤자 표도 안나는 작은집이다. 깨끗한 신축건물이라면 덜 하겠지만 남편 친구 부모님이 사시는 다세대 주 택에 한 칸을 얻은 것이라 엄마는 청소 내내 투덜거린다. ​


"처음에는 다들 이렇게 작은 집에서 시작한다구···." ​


"뭐가 다들 이렇게 살아? 너보다 공부 못한 친구들도 다 아파트로 잘만 들어가더만."

 ​

"걔는 걔고, 나는 나지···. 내가 좋음 됐지, 엄마는 왜 자꾸 그래? " ​


" 으이구, 열녀 났네 열녀 났어. 그나마 이 코딱지 같은 집이 낫지, 뭐? 시부모 집으로 들어가서 산다구? 너는 제정신이냐? 아이고, 힘들게 금이야 옥이야 키워놨더니···. 사랑이 밥 먹여 주냐? 결혼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 ​


말 그대로 남편이 너무 좋아 콩깍지가 제대로 씌여 눈에 봬는 것이 없었다. 시장 한켠 낡은 단독주택에서 사는 남편 집을 처음 갔을때 분명 나는 이 집이 '여유가 없는 집'이라는 것을 직감했지만, 콩깍지가 거기서 쉽게 벗겨졌다면 그것은 사랑도 아니었으리라.


틈만 나면 예비 시어머니께 밥을 얻어 먹고 남편 수업이 끝나면 같이 가서 놀다가 낮잠도 자면서 "저는 이집 예비 며느리입니다"를 공표하면서 다녔다. 시부모님은 내가 너무 이뻐서 갈 때마다 맛난 식사도 차려주시고 "싹싹하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일단 급하게 하는 결혼이니까 당분간 어머니 아버님이랑 같이 살다가 분가해도 될 것 같아. 나는 괜찮아." ​


예비 며느리를 이뻐하시는 두 분에게도 콩깍지가 씌인 것이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를 헛소리를 하면서 시부모님과 합가까지도 생각했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얼씨구나~!" 했을 것이다.

25살에, 갑자기 하는 결혼에, 남편이 모아 놓은 돈이 있을리도 없고, 시부모님 또한 그렇게 계획적으로 돈을 모아 놓은 분들도 아닌 듯 보여 한 말이었는데 나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과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고 합가를 포기했다. ​


엄마의 잔소리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씩씩하고 행복하게 잘 지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랑의 힘은 컸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남편하고 알콩달콩 밥해 먹고 둘만 있는 생활이 너무나 행복했다.

윗집에 사는 주인집 아들인 남편 친구는 종종 주말에 와서 우리랑 함께 놀 았다. 철없음의 극치이자 즐거움의 끝판왕들이었다. 주인 아주머니이자 남편 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정말 이뻐하셨다. 아니, 주변 어른들이 전부 나를 이뻐하셨다.


세상이 핑크빛인데 내가 어른들께 불편하게 했을리가 없다. 싹싹한데 일도 하고, 밥도 제법 잘 해먹는 것 같으니 이웃 어른들은 나를 무척이나 대견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 ​


"어머니, 쌀에 벌레가 생겼어요. 어쩌죠?" ​


"아이고, 진즉에 냉장고에 넣던지 했어야 하는데···. 마당에 돗자리 깔고 볕 좋은 날 쌀을 쫙 널어 놓으면 벌레들이 다 나갈 거다. 2~3일 그렇게 하고 나서 냉장고에 넣어놔." ​


어머니가 주신 20킬로 쌀에 벌레가 생긴 것이다.

지금같으면 아마 물어보지도 않고 몰래 다 버리거나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길을 가는데 꽤 많은 쌀이 봉지에 담겨 버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같은 상황이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께 충성하는 며느리가 아니던가.


출근하기 전에 마당 한켠에 돗자리를 깔고 쌀을 쫘악 널어놓았다. 퇴근하면 바로 걷어 놓았다가

다시 반복하기를 3일 정도 했더니 정말 벌레가 전부 없어졌다. 그걸 보신 이웃 어른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어떻게 젊은 사람이 벌레 먹은 쌀을 정리해서 다시 먹을 생각을 했을까?'


벌레 먹은 쌀이 몸에 안 좋은 건지도 몰랐고 차라리 떡이라도 해먹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도 없었다. 그냥 시어머니 말만 따랐을 뿐이었다. ​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부모님께 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집과 시댁은 5분 거리라 퇴근하고 오면 피곤하니 어머니가 어차피 차리실 밥상에 수저만 얹어 함께 먹자는 취지였다. 지금이야 수저만 얹어 한두 사람 끼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알지만 그때 그걸 철없는 내가 알았를 리 없다. 밥을 해주시니 마냥 좋았고 밥 먹는 내내 그날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떠들어댔다.


설거지를 하고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


'너무 행복하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엄마는 왜 그렇게 반대했을까? 이렇게 좋으신 시부모님은 세상에 없을 거야.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밥도 차려 주시고 말야.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여자야. '


복날이면 시어머니는 꼭 양푼 한가득 닭을 삶아 집앞에 놓고 가셨다. 그것도 토종닭이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까지는 아니지만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국물도 잔뜩, 고기도 잔뜩···. 며칠 먹다가 냉장고에 처박힌다. 마늘이며 각종 좋은 것을 넣어서 더운 날 끓여주셨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정말 국물 한 컵도 안 버리려고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 먹어치웠다. 초계 국수도 해먹고 닭칼국수도 해먹으며 입에서 닭누린내가 날 정도로 닭만 먹었다.


시어머니의 사랑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지냈다. ​마냥 행복했던 철없는 나는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지나 임신을 했고 2년이 되었을 무렵 첫째를 낳았다. 친구들은 남자친구랑 연애하고 여행 다니고 직장에서 진급도 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27살, 나는 '결혼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아이까지 낳았다. ​


때마침 시부모님은 이층에는 우리가 들어가고 일층에는 부모님이 사실 수 있는 이층집을 마련하셨다. ​


'엄마 아빠가 함께 살면 어떠냐고 말씀하시는데 어때?"


"나야 좋지, 땡큐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새벽마다 아주버님 가게에 나가 일을 도와주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 저녁까지 신경쓰는 일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복날에 닭을 삶아내는 것이 얼마나 더운 것인지, 철없는 며느리는 알지 못했다. ​


그때는 몰랐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 안 되는 이유를. 친구들이 미쳤냐고 말할 때,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을 때 진심으로 그 이유를 몰랐다. ​ 나는 앞으로 펼쳐질 나의 파란만장한 삶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남자 보는 눈이 1도 없는 나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드디어 시부모님과 합가를 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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