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페이정윤 Oct 07. 2024

딸같은 며느리? 딸 보다 더한 며느리!

"아유, 며느리가 시어머니 옷 사는데 같이 왔어? 아이고 기특해라~~. 요즘 젊은 애들이 감각이 좋아서 옷 보는 눈도 확실히 높아."


"애 키우느라 힘들 텐데 어머니도 잘 챙기고. 기특해, 기특해." ​


"우리 며느리는 딸이나 마찬가지야. 딸보다 더 잘해~." ​


기특하다는 말을 지겹게도 들었다. 귀에 피가 날 정도이다. 말이 없고 조용한 시어머니도 아주머니들이 모인 곳에 가면 은근히 자랑을 하신다. "딸 같은 며느리랑 살아서 얼마나 좋냐"는 주변의 부러움 섞인 말을 들으면 없던 허세까지 총출동이다.


나는 아주머니들 속에서 어색한 미소를 띠면서 "네~ 네~" 대답만 하고 있다. 이렇게 어른들이 기특해 하니 어머니는 나를 여기저기 제법 데리고 다니시려 했다. 유모차를 끌고, 하나는 걸리면서 잘도 따라다녔다. ​아기를 키울 땐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잘 들렸다. 반사적으로 몸이 벌떡 일어나진다. ​

어머니가 부르시는 소리에도 아기의 울음소리랑 똑같이 반응한다. 스프링처럼 몸이 뿅!하고 튕겨 오른다. 요즘도 가슴이 철렁하면서 벌떡 일어나지는 게 아기 키울 때랑 똑같다. 22년차다.


오늘도 분명 늦잠을 잔 게 분명하기 때문에 "네!!!!"라고 큰소리로 대답하며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이내 다시 침대에 누워 몸을 비비적거리며 "더 자고 싶다!"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제발··· 좀···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자게 해줘···, 제발!!!"

세 살 터울의 두 딸아이는 자기들끼리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티비도 보다가 할머니 할어버지한테 가서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렸을 것이다. "엄마가 안 일어나~~~~"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한테 일러 바치는 고얀 녀석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엄마 품에 안기며 안아달라 한다. 내 몸이 물을 흠뻑 먹은 솜뭉치같아 말을 안 듣는데 어쩌란 말인가. ​


남편과 아버님은 새벽부터 가게에 나가느라 안 계시고 어머니는 아주버님 가게를 도와주느라 새벽 5시에는 나가시니 평일 오전은 내 세상이었다. 아침을 차려드릴 일이 없으니 합가를 해도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허둥대도 아무도 잔소리를 안 했고 아이들끼리 방치하고 조금 더 자도 잔소리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식사만 어머니와 함께 준비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여전히 어머니의 진두지휘아래 나는 조수역할만 했으니까.


문제는 주말이다. 평일과 다름없다. 어김없이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 옥상이며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신다. 이층 베란다에 화초는 왜 그렇게 많이 심어놓은 건지 꼭 올라오셔서 왔다갔다 하신다.

옥상에서 화분들을 정리하며 덜그덕거리는 소리, 뭘 끄는 소리···. '참 가지가지 하신다.'라는 생각뿐이다.


사브작사브작 나름 조용히 다니시는데도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너무나 신경쓰인다. 자는 척을 할 수도 없고 마냥 자기도 안 된다. 일어나기는 싫은데 "일어나!"라는 무언의 압력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


언제부턴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전업주부지만 아이를 키우느라 힘든데 주말이라도 좀 더 자야 하는것 아닌가? 자는 것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어머니 일요일은 좀 더 자게 두시면 안 돼요?" ​


"아니, 9시까지 자면 됐지. 무슨 잠이 그렇게 많냐?" ​


"어머니 사람마다 필요한 잠은 다 달라요. 저는 주말에는 좀 더 자고 싶어요. 평일에는 어차피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요. 좀 늦게 일어나도 깨우지 마시고 식사 먼저 하세요. 저희 기다리지 마시고요. 정말 너무 힘들어요~~~!!!" ​


'잠을 못 자서 죽을 것 같아요!' 라고 절규하는 며느리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 보신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을 싫어하시는 어머니는 싸우고 따지고 그런 것을 잘 못하신다. '그냥 내가 말을 말자.' 하면서 대부분 참으신다. 얼굴에 다 써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꾹 참고 말을 안 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슨 말이라도 하다 보면 절충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어머니는 참고 계신다. 절충이 아니라 싸울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대가족의 삶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남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살면서 많이 이용했다. 죄송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나도 살아야 한다. ​결혼하고 본의 아니게 성당 활동을 소홀하게 되었다. "성당을 가지 말라."고 대 놓고 하신건 아니지만 시부모님은 불교(무늬만) 신자라 나만 성당을 가는 것이 이상하고 어색했다.


아이를 낳고 유아세례만 해 놓은 상태에서 아이들이 좀 크니 어린이 미사를 데리고 다니고 싶었다.

나도 마음이 항상 무거웠기에 이제는 다시 성당을 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었 다. 혼자서 갑자기 갈 순 없으니 집안의 어른인 아버님의 동의가 필요했다. ​


"아버님 저 성당 다시 다니고 싶어요." ​


"갑자기 왜? " ​


"갑자기가 아니라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고 저도 성당 안 다니는 게 항상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성당 유치원도 보내고 싶고 어린이 미사도 보내고 싶고 첫 영성체도 시키려면 이제 슬슬 다녀야 할 것 같아요." ​


" 음. 내가 죽으면 다시 다니면 안 되겠니?"

적막이 흐른다.

어머니도 남편도 아무 말이 없다. 남편은 이럴 때 도와 주는 적이 없다. 나 혼자서 이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야 한다. ​


"그러면 제가 아버님 빨리 돌아가시게 바라게 되잖아요."


​이겼다!


내가 이 상황에서 이런 명언을 말할 줄이야.


"쟤는 우리 선에서 감당이 안 되는 이상한 애야",라는 생각이 각인 되기 시작 한 것은 아마도 이 무렵이었으리라. 큰형님 작은형님보다 당당하고 자기 할 말은 다 한다.


그렇다고 꾀를 부리면서 일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내 할일은 다 하고 남편도 잘 챙겨준다. 하지만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꽤나 불편한 동거다. ​


"동서, 동서는 아버님이 그렇게 짧은 반바지 입고 다니면 뭐라고 안 하셔?" ​


"네, 아무 말씀 안 하시는데요? 더운데 긴 바지를 어떻게 입어요?" ​


"아니, 우리한테는 반바지도 입고 오지 말라고 하시고 민소매도 입고 오지 말라고 하셨거든. 동서는 같이 살아서 그런가 보네." ​


그렇게 짧은 핫팬츠도 아니었다. 나도 나름 부모님을 배려해 무릎에서 조금 올라오는 반바지를 입었다. 거기다 집안으로 계단이 있어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기에 사실 옷 입는 것이 신경쓰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삼복더위에 한복을 입고 있을 순 없지 않나. 민소매도 반바지도 적당한 선에서 입고 다녔다. 아버님도 아무 말씀 안 하셨고 나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버님이 한 말씀 하시면 나는 할 말이 백 마디 였기에 더욱 신경쓰지 않았다.


아버님은 며느리가 편해서 런닝셔츠만 입고 다니시면서 , 며느리한테는 반바지를 입지 말라고

하시는 건 앞뒤가 안맞으니까.


그렇게 꽉 막힌 시아버지는 아니실 거란 나의 생각이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부모님한테도 죄송하단 말이 쉽게 안 나오는 판국에 시부모님한테는 더 하 기 싫다.

그래서 실수를 줄이려니 생각을 열 번은 하게 되고 이게 맞나 싶고 눈치도 보고 분위기도 본다.


기특한 며느리, 딸같은 며느리로 살려고 시작했는데 딸보다 더한 며느리가 되어버렸다. 명랑하지만 맹랑하다. 살얼음판이 깨질 듯 안 깨질 듯 아슬아슬하다. ​ ​

작가의 이전글 시부모랑 결혼한 며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