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쁘다는 감각에 중독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바쁘게 산다.
한국인은 특히 그렇다. 일은 물론이고 이젠 필수적으로 운동 하나씩은 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말하는 일잘러들이 같은 필드에서 역량을 펼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잘하고 싶은 욕심과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뭐가 됐든 직무 공부도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자산 증식 소식엔 귀가 저절로 쫑긋하고,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아닌가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은은한 독서 강박에도 시달린다.
나 역시 그랬다.
일도 하고 자발적으로 내돈내산 직무계발도 했다. 퇴근하고 야근하고 자정까지 부트캠프를 듣는 식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3번씩은 헬스에 가고, 쇼츠에 절여진 뇌에서 도파민을 제거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한 달에 두세 권씩 책을 읽었다. 경제 문맹에서 벗어나야 진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들에 혹해서 다른 이들이 추천하는 경제 도서를 찾아보고, 초성장 커뮤니티도 기웃거려 봤다. 20대에 월천을 벌었다는 누군가의 성공담 앞에서 스마트스토어와 해외직구 방법도 공부했다. 본업이랑 겸할 수 있는 부업으로 단기 아르바이트도 하고 블로그도 시작했다. 잘은 모르지만 주변에서 어린 나이인데도 바쁘게 산다고 대단하다고 해주면 기분이 좋았다.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숨 가쁜 삶을 살아내는 내가 대견했다.
그러나 특이점은 불현듯 찾아왔다.
너무 바빠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잘 모르던, 만 5년 차 경력 때의 일이었다. 할 일과 한 일이 빼곡하게 적혀있던 투두리스트를 지워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까지 사는 거지?
소위 말하는 현자타임이다. 바쁜 일과만큼 바빠진 마음에 급제동이 걸렸다.
만 5년 동안 내가 해온 일과 경험이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아직 어리고 젊은 체력으로 벼텨온 경험치는 분명 내 안에 쌓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떤 걸 했고, 결과적으로 뭘 얻었는지. 심지어 내가 진짜 해낸 것과 못한 것, 안 한 것에 대한 경계도 흐려졌다. 그때까지의 나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투두리스트를 작성했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행위에 집중했다. 뭔가 많이 하면 그만큼 인생을 헛살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는 바쁘다는 감각에 중독되어 있었다. 체력은 언젠가 동나는데도.
그날부로 일을 해치우는 대신, 나는 지금까지 내가 세운 목표와 내가 한 일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현자타임처럼 보였지만 갑자기 벌어진 사고가 아니었다. 내가 큰 생각 없이 오로지 ‘행위’에만 몰두하기 시작한 부로 예견된 것이다. 이때까지 나의 문제는 이것이었다.
1. 목표가 너무 많다.
2. 목표 달성을 위한 행위도 너무 많다.
3. 뭘 했고, 뭘 못했는지 생각이 잘 안 난다. (하다가 포기한게 절반이 넘는다)
4. 그래서 이 일들을 하기 전과 후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콕 집어 설명할 수가 없다.
5. 분명한 건, 나는 정신 없이 바쁘다.
한계가 분명한 삶의 방식,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1번부터 5번까지 나열한 문제의 원인을 생각해봤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두개였다.
첫째, 목표를 설정한 이유가 없다.
둘째,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하고 난 후에 돌이켜 생각해보질 않는다. 그래서 성공해도 뿌듯함은 없고, 실패한 건 계속 실패한다.
목표를 설정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실패해도 큰 타격이 없다. (타격이 있어도 모른 척 하기가 쉽다.) 그리고 하는 것에만 집중했지 그 이후 반추하는 과정이 없어서 정작 해낸 일도 뿌듯함이 적다. 분명 어떤 목표를 이뤘다면 나는 그만큼 성장했을텐데, 돌아보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 WHAT이 아니라 WHY이자 HOW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볼까. 유튜버와 인플루언서가 그러길 1년에 3천만원을 모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월급의 50%를 저축하기로 했다. 첫번째 달은 성공했으나 두번째 달은 좀 빠듯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경조사비가 많이 나갔다. 두번째 달까진 어떻게든 유지했지만, 세번째 달엔 실패했다. 생각해보니 50%는 과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또래들은 전부 50%는 한다는데 왜 나는 못할까. 자괴감이 지배하기 전에 나는 이 목표를 일단 후순위로 밀어 잠시 안도감을 가졌다. 이처럼 '그저 직장인이 부자된 썰 푼다' 같은 비슷한 처지의 거대한 성공담을 바라보고 세운 목표는 구체적이지도 않고 현실성도 없었다.
한마디로 내 목표가 아니다.
목표를 설정하는 이유는 남이 아닌 나한테 있어야 하는데, 평생 남한테 끌려다니는 줄도 모르고 끌려다닌다. 나로부터 시작해야, 실패하든 성공하든 남는 게 있다. 그리고 실패해도 또 다시 내가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회고를 시작했다.
무엇이 아니라 왜(WHY), 그리고 어떻게(HOW) 에 집중하기 위해서.
나를 차근차근 돌아보며 성장하려면, 리틀캐빈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