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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이기심 VS 이타심

외식주역경영전략 04

by 김두현 박사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고아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대신에 ‘보육원’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곳에 봉사를 다녀오면서, 느꼈던 감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하고 있는 ‘보육원 봉사’는 벌써 10년을 넘게 해 오는 활동입니다. 이 기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봉사에 관한 개념을 정확히 정리하여 동기를 정립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대립하는 내용 또는 어떤 사건의 ‘옳다 또는 틀리다’라는 개념으로 분류하는 것을 이분법이라고 하지요. 이와 비슷하게 컴퓨터는 이진법을 사용하는데, 0과 1의 두 가지 숫자만을 사용하며, ‘Yes or No’로 변환하여 ‘No’는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것은 음과 양을 다 갖고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도 숫자가 비슷해야 짝을 맞추어 종족이 존속될 수 있듯이 주역의 대표적 개념은 음과 양의 균형입니다.


당신의 성격은 내향적입니까? 아니면, 외향적입니까? 이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아요.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나의 성향은 너무 다르니까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할 때는 남자같이 말하고, 최강의 애교도 있는 외향적인 성격입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낯가림이 심해서 어색함을 극복할 수 없는 내향적 성격이니까요. 또는 동성인 여자분들과 있을 때는 너무 활발하고 외향적인데, 낯선 남자분과 있으면 너무 어색해서 매우 힘든 분들도 있지요. 그렇다고 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경우에 따라서 내향적인 사람인 것도 같습니다.


‘내향적, 외향적’이란 단어에서 ‘~적’이라는 접미사를 사용합니다. ‘~적’을 사전에서는 ‘그 성격을 띠는’, ‘그와 관계된’, ‘그 상태로 된’의 의미로 사용되며, ‘~같은’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사용하면 더 좋다고 합니다. ‘외향적’이라는 말은 반드시 외향성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외향성 같은’, ‘외향의 성격을 띠는’의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주역에서 음과 양의 개념은 반드시 이렇게 되는 공식의 개념이 아닙니다. 예컨대, 한 개의 선이 있습니다. 이선을 손대지 말고, 지우지도 말고, 더 잇지도 말고 길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이 답입니다. 이 선이 길다는 것은 이보다 짧은 선과 비교할 경우에 긴 것이지요. 처음 제시된 선보다 짧은 선 하나만 그으면 처음의 선은 긴 선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상대되는 개념을 찾아서 음과 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봉사는 이기심과 이타심 가운데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당연히 이타심이라고 답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정반대의 개념을 양과 음이라고 합시다. 양은 분화되어서 양양과 양음, 그리고 음은 음양, 음음으로 분화됩니다. 우리나라 태극기의 가운데 태극이 있고 사분면에 건(乾), 곤(坤), 감(坎), 리(離)가 있지요. 양(—), 음(--)으로 표시됩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이기심과 이타심을 분화하면, ‘이기적 이기심’, ‘이기적 이타심’, ‘이타적 이기심’, 이타적 이타심의 4가지로 분화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 이기심’은 절대 이기심으로 봉사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어렵습니다. 이기심은 모든 행동과 태도가 오직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최우선으로 두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독재자가 자기 방식으로 백성을 돕는 모양새인데,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봉사입니다. 봉사는 타인의 복지와 사회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기여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따라서, 외형도 이기심이고 내재된 개념도 이기심이면 다른 사람을 돕는 봉사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상반되는 ‘이타적 이타심’은 봉사일까요? 외형도 이타심이고 내재된 개념도 이타심입니다. 대부분 처음 봉사에 임하시는 분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이타적 이타심’은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위험이 따르더라도 타인을 돕기 위한 순수한 희생입니다. 이런 수준의 봉사는 간접적 이익이나 보상이 전혀 없기 때문에 봉사의 동력이 점점 낮아지고 지속하기 어려운 상태에 임하게 됩니다. 우리는 절대 ‘수녀 테레사’ 같은 분처럼 무조건적이 사랑과 헌신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 타인에게 봉사하는 숭고한 정신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연말이나 명절에 즈음하여 익명으로 기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도 이타적 이타심의 봉사입니다.


‘이기적 이타심’은 대의를 위해서 이기적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외형은 이기심이지만, 내재된 개념은 이타적인 마음이지요. 저녁 시간 TV광고를 통해서 봉사 단체의 모금 광고를 접합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우리는 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가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니까 조금씩 힘을 합치면 좋겠다는 광고입니다. 직접 봉사를 하지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봉사입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곳에 돈을 보내면 올바른 일에 쓰일까?”라는 의심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봉사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가장 소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필이면, 우리나라 사람을 돕지 왜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것일까? 또는, 불쌍한 사람을 돕지 왜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살리는 데 돈을 쓰는 것일까? 에 관한 의문입니다. 사회에는 여러 가지 가치관과 세계관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봉사는 다양한 가치관 가운데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점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이기적 이타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나에게 소중한 가치가 유기견이면 유기견을 돕는 것이고, 환경문제이면 환경단체를 돕는 것입니다. 이 모든 명분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을 변화시키는 행복의 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이타적 이기심’입니다. 외형은 이타심이지만, 내재된 개념은 이기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밖으로는 세상을 돕는 것이지만, 실상 나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기부는 돈이나 제화로 사회의 취약 계층을 돕는 행위입니다. 기업은 정부에 납부해야 하는 세금을 기부의 형태로 대납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이왕 납부하는 세금을 사회발전을 위해 기부하기에 좋은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홍보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개인은 작은 비용과 노동을 투자하고, 자신의 봉사를 모든 사람에게 자랑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외적으로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게 됩니다. 칭찬은 간접적 이익과 정신적 보상이 되어 봉사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이런 보상은 강력한 봉사의 동기를 형성합니다.


‘이기적 이타심’의 모금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이타적 이기심’의 정신적 보상에 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형태를 오해의 관점으로 보면, 순수한 봉사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세금을 기부로 대납하는 제도가 생겼으며, 왜 다양한 모금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관해서 생각해 보셨나요? 대부분이 이런 봉사조차도 전혀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봉사는 타인을 위해서 하는 헌신적 이타심이 맞지만, 이런 접근은 봉사를 오래 하지 못하게 합니다. 봉사의 이기심은 나를 위해 사회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봉사를 하면서 즐거우면 봉사를 더 하고 싶어 지는 것 아닐까요? 저는 매년 캄보디아, 필리핀 등으로 해외봉사를 갑니다. 그곳에서 만났던 아이들과 사람들의 순수하고 맑은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해외봉사도 여행 가듯이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봉사도 일부 하시고, 관광도 하신다면, 매년 봉사를 떠날 때 얼마나 기다려지겠습니까? 쾌락적 가치는 죄책감 때문에 지속하지 못하는 특성을 갖습니다. 마냥 놀고 맛있는 음식만 먹으러 여행을 다니면, 사회적 죄책감이 든다는 의미입니다. 봉사의 동기는 이런 괘락적 가치의 죄책감을 희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재미있는 봉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이타적 이기심’의 봉사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상으로 어렵고 지루한 학문이었던 주역의 음과 양을 이용하여 봉사에 임하는 자세를 말씀드렸습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은 열 숟가락의 밥이 한 그릇의 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작은 정성이 모여서 모두 행복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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