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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욱 Oct 08. 2024

꿈이 매번 바뀌던 나

매 순간 어려움은 찾아온다.

 화려한 조명. 집중되는 시선과 거친 숨소리. 사방으로 튄 혈투의 흔적들. 사각의 링 안으로 장엄한 분위기가 흐른다. 두 열정이 부딪치는 격렬한 타격음. 차갑던 나의 마음을 뜨겁게 달궜다. 불길 속 화려함에 매료된 불나방처럼 홀연듯 복싱에 빠져들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나의 마지막 꿈은 프로 복서였다.


나의 어린 시절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눈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 우리 집 옥상에서 작고 귀여운 강아지 메리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뛰놀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특히 나를 예뻐하셨고, 친척들과 자주 여행을 다닐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지금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뽑으라 한다면 '유년 시절'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어릴 적 혼자서도 잘 노는 심심함을 모르는 아이였다. 혼자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아버지가 사주신 게임기를 두드리며 행복을 느끼던 평범한 꼬마였다. 그래서였을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 파주에서 열린 에어쇼에 나를 데려가 주셨는데, 멋진 전투기들의 화려한 비행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에어쇼를 본 뒤에는 항상 전투기 장난감을 사달라 떼쓰던 기억이 나는데, 전투기를 참 좋아해서일까. 전투기를 직접 조종하는 멋진 파일럿이 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꿈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꿈이 자주 바뀌고는 했는데.
 

또 다른 취미는 낙서하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만화 주인공을 따라 그리거나 공룡을 자주 그리곤 했다. 매일 낙서하던 터라 그림 그릴 종이가 모자라고는 했는데, 그럴 때는 날짜가 지난 달력을 찢어 뒷면에 그림을 그렸다. 내가 그림을 다 그리면,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남는 밥풀을 그림 뒷면에 발라서 벽면에 붙여주시고는 했다. 말 그대로 내 방의 벽은 낙서들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정신없던 방이었다. 학교에서는 같은 반 아이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내게 그려달라고 줄을 서기도 했다.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는 상황들이 많아서였을까? 나의 두 번째 꿈은 만화가였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체육 선생님이시던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학교에 신설된 운동부에 들어가게 되는데 대학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게 많아서였을까 운동과는 거리가 먼, 미디어 영상에 관심을 보이며 미디어영상과를 선택하여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행복할 것만 같았던 대학 생활은 내 상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기숙사 선배의 매일 계속되는 술 판과 대학 시험 중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는 커닝들. 비즈니스적인 친구 관계. 거기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며 집안이 형편이 어려워졌다. 현실적인 여러 이유에 다니던 대학을 스스로 자퇴하고 만다. 부모님은 자퇴를 반대하셨지만, 짐이 되기 싫어서 더더욱 대학을 포기한 걸지도 모르겠다. 늘 하고 싶은 것이 많고, 꿈이 많던 내가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포기한 꿈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휴학 뒤에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며, 어릴 적 운동 삼아 다니던 집 앞 작은 복싱 체육관에 다시 다니게 되는데, 모든 것을 포기한 나에게 복싱 체육관의 땀과 열기로 가득 채운 열정과 투지는 그동안 포기했던 꿈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링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프로 복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복싱이 죽을 수도 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프로 복싱에 도전하게 된다.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 도스토옙스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뛰어든 복싱이기에 나에게 다른 종착지는 없었다.  마지막 꿈이라는 생각에 복싱만을 생각했다. 가장 절망적인 시기를 겪고 있는 나에게 복싱은 나의 힘듦을 덜어주는,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다.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를 나는 복싱과 함께하게  것이다.  가치관의 대부분은 복싱을 다시 시작하며 형성되었고, 복싱은 나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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