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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욱 Oct 08. 2024

패배 속에 나를 찾는 법

매 순간 어려움은 찾아온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장벽에 부딪히거든, 그것이 나에게 절실함을 물어보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 - 랜디 포시


 내가 복싱을 처음 시작하게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방학 때였다. 부모님이 멀리서 장사를 하시다 보니 방학에 종종 내려가고는 했는데, 부모님 가게에서 TV 보고 있는데 복싱 체육관이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배워보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렸고, 부모님은 방송국에 전화를 거셔서 방금 방송에 나오던 복싱 체육관이 어디냐고 물어봐 주셨다. 다행히 복싱 체육관은 부모님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렇게 찾아간 복싱 체육관은 이불 가게 지하에 있던 곳이었다. 습하고 꿉꿉한 냄새와 벽에는 허름한 복싱 시합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신발장에는 오래 방치된  보이는 운동화들과 쓰다가 터져서  테이프로 덧붙인 샌드백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냄새가 배어있는 글러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체육관 한구석에는 사무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관장님이 계셨다. 체육관 관장님은 무서울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인상 좋으신 관장님이 나를 반겨주셨다. 바로 체육관에 등록  복싱을 시작하게 되었다.

 

복싱은 초보 과정에 스텝을 많이 뛰는데, 계속 반복되는 연습으로 발에 물집이 생겨 걷고  때마다 발이 따갑고 종아리는 터질  같으며 무릎은 시큰거렸다. 그렇게 연습을 이어오던 어느  관장님의 스파링 권유로 난생처음 복싱 스파링을 경험하게 되는데, 상대는 나보다  학년 아래였던 동생이었다. 내성적이고 보기에도 왜소해 보여서 재능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친구였다. 나는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고 상대보다도 근육량도 많아서 자신감 있게 스파링을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왜소하고 에너지라고는 찾아볼  없던, 소심한 동생에게 나는 생애  패배를 맛봤다.

 

1라운드. 옷에는 전부  코피로 범벅이 됐고, 1라운드 3분이 너무나 지옥같이 길었다. 발바닥의 물집은 벗겨지고  팔은 평소 중력의 10배로 나를 짓누르는  같았다. 도저히 가드를 올릴  없었다.  자신감은 자만심이 되었고, 상대가 가볍게 뻗은 왼손 잽에 맞아 코피가 터지고  것이다. 코에서는 뜨거운 것이 흐르는  느껴졌다. 맞은  분해서였을까. 상대에게 무턱대고 달려들다가 뒷손 스트레이트를 맞아 입술 안이 터지고 찢어졌다. 내가 휘청대고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자, 동생은 이때다 싶었는지 소나기 같은 펀치를 퍼부었다. 필사적으로 맞섰지만, 주먹도 뻗지 못한  너무나 충격적인 패배를 맞았다. 체육관을 살듯이 하루도  쉬고 연습하던 내가 이길 거라는 생각과 달리, 현실은 냉정했다.

 

인정할  없는 패배에 씁쓸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 분했다. 저녁을 먹는데 맞은 턱이 아파서 밥알도 제대로 씹지 못했다. 잠들기 전에 나는 누워서 생각했다. 내가  졌을까? 잘못된 부분을 다시 연습해 보자고, 나는 이번 패배로 아무리 만만한 상대여도 절대로 얕보지 않게 되었다.
 
 

 자만과 욕심은 주먹에 힘을 실리게 했고, 힘이 잔뜩 들어간 주먹은 느려지고 나를 금방 지치게 했다. 힘이 들어가 느려진 주먹을 상대는 훤히  읽었을 것이다. 완벽한 나의 패배다. 뒤늦은 생각이지만 내가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복싱을 가볍게 여기고, 금방 싫증 내고 그만뒀을 것이다. 쉽게 얻은 것에 대한 그만한 무게와 가치를 가벼이 여겼을 것이다. 나는 복싱을 시작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잘못된 부분을 알아갔다. 패배는 나를 돌아보고, 부족함을 알게  줬다.  현재의 위치와  마음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줬다. 나는 그렇게 패배 속에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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