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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덕과 부모 탓?!

부모의 영향력과 개인의 의지 사이에서

by 타인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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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시경의 만날텐데, 11월 27일 방송)


어제 성시경의 만날텐데에 이금희 아나운서가 출연한 영상을 봤다. 두 사람이 식사하며 스스럼없이 나누던 대화 중 성시경이 문득 던진 한 문장이 유난히 귓가에 오래 남았다.


“저는 잘된 건 다 부모님 덕이라 생각하고, 잘못된 건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해요.”


말은 가볍게 흘러갔지만, 자식을 둔 부모로 살아가는 내 마음에는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한 아이가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해주는 사람이 결국 부모라는 사실은 이해하면서도, 한 인간의 잘되고 안되는 결과까지 부모책임으로 돌리는 느낌을 받아서 서늘함이 있었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표현일 뿐이고,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성시경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삶을 다시 쓰고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을 재건해낸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고, 나 또한 그런 변화의 힘을 믿으며 살아왔다. 부모가 준 조건이 출발점은 될 수 있지만, 결코 종착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성장 환경이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개인의 가능성과 회복력을 축소하게 된다.


좀 더 나아가서는, 무언가 잘 되었을 때 그 자리에 들인 내 노력과 선택을 함께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잘 안되었을 때도 누군가의 탓으로만 돌리기보다는 나의 몫을 따뜻하게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


‘덕’이라는 말 속에서 부모가 준 기반에 감사할 수 있지만, 그 기반 위에 길을 쌓아 올린 것은 결국 내 두 손이다. ‘탓’이라는 말 속에서 부모에게 받지 못한 아쉬움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것 또한 결국 내 삶의 과제다. 결과의 이유를 바깥에 두는 태도는 편안하지만, 책임을 바깥으로 보내는 순간 내가 바꿀 수 있는 여지 또한 함께 밀려난다.


부모의 역할이 큰 것은 사실이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분위기 하나가 아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 평생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로서 책임을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만 부모의 영향력과 개인의 의지는 서로를 완전히 대신할 수 없는 두 축이다. 부모의 선택이 삶의 출발점이라면, 그 이후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잘된 것이 부모 덕일 수도 있고, 잘 안된 것이 부모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을 다시 세우고 계속 나아가는 것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라는 존재가 아이를 얼마나 깊이 형성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모든 덕과 탓을 부모에게만 돌리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선택의 힘, 그리고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는 성숙함을 놓치게 된다.


부모는 출발선에서 바탕을 만들어주고, 그 바탕을 디딤돌 삼아 어디까지 갈지는 결국 각자의 걸음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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