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며 쌀독이 비어갈 때마다 오묘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타 쓰고 있기에 어찌하면 생활비를 좀 절약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런데 장을 봐오면 호박이며 당근이며 며칠을 못 간다. 내가 손이 커서 일수도 있지만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집 밥을 참 좋아하고 잘 먹는다. 외식이 월급날 딱 하루이기 때문일수도...
찬거리를 살 땐 돈이 별로 아깝지 않은데 쌀을 살 때면 왠지 모르게 주저하게 된다. 농부인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그럴까? 어릴 땐 쌀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쌀이 없으면 밥을 할 수 없으니 어찌어찌 사다 놓고 통에 쌀을 가득 담아놓는다. 쌀독을 가득 채우면 마음이 참 든든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밥을 지을 때면 쌀독에 쌀이 금세 줄어있다. 요즘 새 아파트 쥐가 사는 것은 아닐 테고 열어볼 때마다 쌀독 안에 쌀이 점점 없어져 간다. 그러면 쌀독이 가득 찼을 때의 든든함과 비슷하게 기분이 흐뭇해진다. 아이들이 잘 때 누워있는 모습을 볼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벌써 이렇게 컸나 싶다. 이게 다 쌀독 덕분이다 생각한다.
다시 또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