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면 화순곶자왈
안덕면 ‘화순곶자왈’ 탐방
가끔 헷갈린다. 곶자왈이나 오름이나 비슷한 식물군을 만날 때 특히 더 그렇다.
길생태 선생님께 여쭤보자 명쾌히 말씀하신다. 오름은 화산이 폭발해서 생긴 것이고 대체로(다는 아니지만 분화구가 있다) 태생이나 발원 자체부터 다르다고. 아, 맞다. 그거였지. 깜빡깜빡하는 학생인 나는 이젠 질문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번에 갔던 화순곶자왈은 처음에는 민둥산처럼 커다란 나무가 전혀 없는 곳이었단다. 그 한 처음이 언제였을까 궁금하다. 곶자왈의 변천사를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여전히 변화 중인 과정을 고스란히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너른 벌판 일부에는 여전히 펑퍼짐한 낮은 키의 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곶자왈, 제주에만 있는 순수 제주어인 그 말뜻은 가시가 많은 덤불이나 잡목림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잡목림과는 식생면에서 차이가 있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용암지대에 분포하는 독특한 형태의 숲을 곶자왈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식물 사회학적으로는 난대와 온대림에 속한다 볼 수 있고 희귀한 식생 분포를 보인다.
특히 천량금이나 개가시 나무, 방울꽃, 큰톱지네고사리와 쇠고사리 등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한다. 용암지대이면서도 다양한 식물이 보이는 이유는 함몰지나 융기된 지역이 많아 지형변화가 심해서 온도차가 나기 때문이다. 함몰지 사이가 지하암반층으로 이어져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니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공존 공생할 수 있다. 함몰지엔 빛이 적고 바람 영향을 덜 받게 되어 시원하고 공중습도는 높으니 이끼류가 바위에 늘 자라게 되고 양치식물이 무리 지어 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또 햇빛에 바로 노출된 바위에서는 건조에 강한 식물이 뿌리내리기도 해 다양한 식물군을 볼 수 있다.
*곶자왈 식생을 보면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공존한다는 점 : 곶자왈은 기후적으로 난대 중부에서 온대 남부에 해당하는데 난대 남부나 심지어 아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천량금을 비롯해 탐라암고사리, 주름고사리, 개톱날고사리 등 남방계 식물이 자라고 있다. 천량금은 길을 걷다 보면 작은 톱니 이파리를 하고 키가 작고 작은 버찌처럼 조록조록 빨간 열매를 달고 있어 쉽게 지표면에서 눈에 띄는 식물이다.
-식생 천이가 매우 느리고 교란에도 둔감. : 일반적으로 난대성 양수림인 팽나무, 때죽나무 군락은 종 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다. 음수에 해당하는 녹나무과, 참나뭇과 어린나무들이 자라면서 종이 새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변화가 적고 태풍 등에 의해서도 하층 식생 변화의 폭은 아주 드물다고 한다.
-착생식물이 지면을 뒤덮는다. : 토양 대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달라붙어 자라는 양치류나 선태류 등 착생식물이 표면을 덮어간다.
-나무뿌리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 흙은 적고 대부분 바위 틈새나 바위 위에서 자라나야 하므로 판근(나무판처럼 옆으로 불뚝 일어서 있는 뿌리)이나 길고 편평하게 자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깊은 뿌리가 자랄 수 없는 곶자왈 특성상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적응한 형태라 걸으면서 유심히 보면 재밌는 뿌리 모양에 반하게 될 것이다. 공기뿌리의 종류에는 담쟁이나 송악처럼 나무기둥에 척척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부착뿌리가 있고, 난초과의 흡수뿌리도 있다. 옥수수 같은 버팀 뿌리가 있는가 하면, 맹그로브나 낙우송, 여뀌바늘에서 볼 수 있는 호흡뿌리도 있고, 목본류나 양치류가 가진 보호뿌리, 일부 야자수처럼 땅 위로 가시처럼 나오는 바늘뿌리 등이 있다.
이미 말했듯이 곶자왈은 그야말로 선태식물과 양치식물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돌멩이들만 있고 식물군이 없던 너른 벌판이었던 땅에 솔이끼 같은 줄기가 있고 수명이 긴 선류와 우산이끼 같은 잎줄기가 없는 태류, 즉 선태류가 처음에 생겨나고 새들이 돌틈에 깃들어 잠을 자면서 먹은 거를 싸고 그 안에 숨어 있던 풀씨나 식물 씨앗이 하나둘 생겨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곶자왈이 서서히 생겨나는 게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선태류에 이어 고사리류의 양치식물들도 제주 곶자왈에서 빠질 수 없는 식물군 아닌가. 걸으면서 쇠고비, 도깨비고비, 큰 봉의꼬리, 십자고사리며 콩짜개덩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들은 숲을 디자인하고 무늬를 만들어 준다. 입체감과 질감까지 풍성하게 해 주는 게 해줄뿐더러 그림 그리고 싶게 하고 그 어여쁜 모습을 수로 놓고 싶어진다. 언제가 될지 모르고 희망사항으로만 그칠 수도 있다만.
이런 선태류를 바탕으로 차츰 엉겅퀴나 찔레, 탱자류 같은 가시가 많은 식물이 생겨나고 다양한 생명군이 깃들면서 관목들도 자리 잡게 되어 숲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란다. 길을 걸으며 개머루, 다래, 마삭줄이며 등수국, 담쟁이덩굴이, 줄사철이나 으름덩굴, 노박덩굴과 청미래덩굴과 송악은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걷는다는 건 숲과 다정해진다는 뜻이다. 무심코 휙휙 지나치는 게 아니라 한 생명에 귀 기울이고 소중히 바라보며 이름을 불러줄 수 있으면 비로소 작은 교감이 시작되는 거 아닐까.
다른 때와 달리 오로지 화순 곶자왈 한 군데만을 돌았다. 숲 깊숙이 자리한 듯 얼핏 느껴지지만 조금 귀 기울이면 바로 길가에 차 지나다니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어, 이런 곶자왈은 등급을 매기자면 순위가 낮다고 한다. 아마도 무성하고 깊이 있는 식생군이 넓게 퍼져 있었거나 길로 인해 잘리지 않았더라면 소음 없이 다닐 수 있는 멋진 자연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살짝 있었지만 아쉬움도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단점이 장점으로 탈바꿈할 많은 이유를 또 갖추고 있기도 하니까. 사려니 숲 같은 웅장함과 거대한 규모는 아니더라도 우선 친근하고 가 닿기 쉬워서 누구라도 가볍게 발걸음 하기 좋다.
만약 화순곶자왈 근처에 살고 있다면 운동 삼아 녹색 에너지를 얻고 싶어 자주 드나들 거 같다. 어느 길로 가도 그다지 으슥하지 않고 가파르지 않으며 아주 평이하다. 혹시라도 길을 잃게 되더라도 몇 바퀴 돌 기회가 되어 오히려 숲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차라리 길을 잃기를.
우릴 안내하신 선생님 말씀으로는 사람이 좋아하는 피톤치드라는 건 식물 입장에서 봤을 땐 다른 생물, 특히나 사람들이 오게 되면 긴장하며 내뿜게 되는 물질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아, 좋다 하고 들이마시는 게 그들에게는 괴로운 신음일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사람들 반응이 여기서 갈렸다. ‘우리가 자주 오면 안 되겠네’ 하는 이들과 ‘그래도 그게 우리에겐 좋은 거 아닌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주고받으니까?’ 하고.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가 덜 가야지...’라고 굳은 맹세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나무들도 우리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우리는 살며시 숲을 가만가만 통과해 나간다면 조금씩 내어주고 조금씩 삶을 양보하는 거 아닐까. 탠션을 유지하는 건 늘어진 방만함보다는 살짝 긴장할 때 오는 것이니까, 산소와 탄소를 주고받듯 긴장감 일부도 주고받으면 어떨까 싶다.
이번 곶자왈은 작지만 아기자기한 식물군을 공부하기에 참 좋았다.
자연의 생명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한 회원. 아무것도 없던 화산지대에 새들이 흘린 씨앗으로 탱자나무와 같은 가시가 있는 나무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렇게 거친 땅에서도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자연의 힘에 찰지게 감탄하는 시간이었다.
탱자나무는 세 장의 잎이 한 줄기에서 나오는 모양이고 탱자의 뾰족하고 기다란 가시는 가지가 변한 것이고 찔레나 초피의 가시는 껍질이 변화한 것이라 한다. 탱자나무는 제주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감귤나무를 접목시키는 토대가 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탱자 한 알을 주었다. 자꾸만 코에 대고, 아예 코에 붙여두고 싶은 이 향긋하고 단단한 탱자나무는 화순곶자왈 평지 이곳저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금 늦가을 그곳 평지에서 가시 사이로 잠시 조심스레 손을 뻗으면 가으내 탱자 향기에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가 이미 섬이어서 어디로 함부로 나가기 어려움에도 조선 시대에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형벌이 있었다. 유배 생활 중 가장 무거운 형벌로 유명하다. 가을이 되어 노란 열매의 향기는 엄청 좋지만 가시가 길고 나무가 촘촘히 서로 얽혀 꼼짝할 수 없는 탱자나무 울타리에 갇혀 있다고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아 그래도, 그냥 탱자 열매의 향기에만 갇혀 있고 싶다면 늦가을엔, 당장 화순곶자왈을 갈 일이다.
제주에 와서 위에서 알려준 다섯 가지 정도를 한 번이라도 읽고 곶자왈에 들어선다면 어떨까?
모르던 것이 새롭게 보이고 보이지 않던 뿌리 모양이, 바위를 덮고 있는 초록 이끼들이 사랑스러워 한 번씩 눈으로 손으로 쓰다듬어 보는 여유로움도 갖지 않겠는가.
#화순곶자왈 #곶자왈 #탱자 #탱자향기
이 얼룩이 나무는 육박나무, 어린이들은 얼룩덜룩한 무늬를 보며 해병대나무라 맘대로 부르기도 한다는^^.
계속 변해가는 펑퍼짐한 곶자왈
도처에 탱자나무
봄에 라일락향이 나는 연보랏빛꽃 피는 멀구슬나무, 이젠 열매가 조록조록
위에 물고기모양처럼 매달린 게 붉나무벌레집(충영)
노박덩굴ㅡ씨를 말렸다가 생리 끝나는 날부터 한 수저씩 다음 생리 직전까지 먹으면 지독한 생리통이 사라짐(내 경험으로)
보리수
북나무가 아니라 붉나무
봄에 꽃핀 모습
방화수, 방염수라고도 불림. (일본이름은 아와부끼, ) 거품나무
노박나무 덩굴
봄의꼬리
*사진에 잘못된 표기는 사진 바로 아래에 바로잡아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