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이 다되어가는 기억.
한 달에 두세 번 토요일마다 혹은 일요일마다 Nathan과 나는 이태원 데이트를 했다.
오리역 앞. 그가 서 있었다. 어디 있냐고 묻지 않아도 노란 머리 그는 한국 사람들 속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하이" 내가 손을 흔들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의 옆에 가까이 다가가자 미국 비누 냄새 같은 게 훅 끼쳤다.
그가 웃었다. "하이."그리고 뭐라고 뭐라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쏘리. 아이 돈 언더스탠드." 미안 다 못 알아 들었어. 내가 말했다.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잠이나 잤던 예전의 내가 후회되었다. 벌써 한 달 넘게 Nathan을 만나는데도 그가 하는 말을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했다. Nathan이 나를 위해 쉬운 단어로 그리고 다섯 살 아이에게 이야기하듯 천천히 영어로 이야기해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 못 알아 들어도 나는 자주 웃었다.
"이츠 오케이" 그가 말했다. 우리는 곧 전철을 탔다. 분당에서 이태원에 가려면 전철을 몇 번이나 갈아탔다. 어디 역에서 환승을 할 때였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Nathan이 내 손을 잡았다. 혹시라도 나를 놓칠까 봐. 아. 손을 잡으면 어떡해? 미국사람이라 그런가. Nathan이 내 손을 잡고 있을 때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손을 잡고 이태원에 도착했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옷을 파는 곳이었다. 영어를 힙합처럼 말하는 흑인 두 명이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눈동자가 유난히 맑았던 흑인 한 명이 나한테 "왓츠업 요."라고 물었고 나는 뭐라고 말할까 하다 고민하다 그냥 웃었다.
Nathan은 거기서 미국 농구팀의 로고가 그려진 회색 티를 샀다. 흑인 한 명이 나한테 프라다 백을 보여주었다. 짜가. 짭이라고 서툰 한국말을 하면서 그런데 진짜 같았다. 와. 이런 건 여기서 파는구나. 아마 내가 충분한 돈이 있었다면 프라다 백을 2만 원에 샀을지도 모르겠다.
이태원은 낭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우리는 서로 영어로 그리고 짧은 한국어로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나도 민병철 어학원을 2달 다닌 실력으로 "미투. 오케이."를 곁들이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태원에 있던 이름 모를 버스 정류장이 노을로 빨갛게 물들 무렵 우리는 분당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탔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늘 동네만 다니던 나에게 Nathan덕분에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어항처럼 좁던 나의 시야도 넓어졌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구나. 나는 전철 안에서 생각했다.
소소한 순간들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전철을 타고 노을이 지는 한강을 건너던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잊지 말아야지. 나는 그런 생각도 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