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부모님은 80대 부부이십니다. 오늘은 어머님이 정기검진으로 병원 가시는 날이라 모시고 다녀오느라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연세가 드실수록 서로 더 애틋하고 다정할 것 같은데, 그분들은 50년이 넘도록 함께 지내오셨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그분들을 봤을 때,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답게 따뜻함과 다정함이 넘치진 않더라도 사이가 나빠 보이지는 않으셨는데, 가족이 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본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는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시아버님은 남들에게는 친절하고 점잖은 분이지만, 집에서는 시어머님께 만큼은 전혀 다릅니다. 시어머님께 늘 화를 내고 막말을 하며 함부로 대합니다.
시아버님은 설거지, 쓰레기 분리수거등 집안일을 잘 돕는 편이고 바깥에서는 인정받는 사람이라지만, 그 욱하는 성격과 날카로운 말투는 시어머님을 깊이 상처 입히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내성이 생기거나 상처가 아물지 않습니다. 막말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들을 때마다 찌르고, 시간이 지나면 더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시어머님은 남편과 살며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묵묵히 감내해 왔습니다. 50년을 넘게 함께했는데도, 그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아직도 깊이 남아있고, 진행 중입니다. 연세가 드실수록 조심하는 것도 없어져서, 이제는 제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두 분이 다투시니, 시댁에 다녀올 때면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문득 남편에게서 시아버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편도 시아버님을 좋아하지 않고, 그 성정을 싫어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끔 그와 비슷한 모습이 남편에게서 보입니다. 남편이,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그 습관이 닮아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들이 내겐 너무 힘듭니다. 나의 남편은 결코 시아버님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는데, 가끔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하거나, 배려심 없이 툭 내뱉는 말투에서, 그게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두려워집니다. 우리 부부도 머지않아 노년이 될 텐데, 내 남편이 시아버지처럼 괴팍한 성정의 노인이 될까 봐, 우리 관계가 그분들처럼 노후에 상처로 가득 차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몰려옵니다. 나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나이 들수록 아버님과 닮아가는 외모적인 뒷모습을 보면, 무작정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낸 시부모님을 뵙고 올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은 어떻게 지속되어야 하며,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부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그분들의 상처에서 나는 교훈을 찾고 싶습니다. 막말은 그저 사소한 말이 아니며, 쌓이고 쌓여 더 큰 아픔이 된다는 것을..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친절은 친절이 아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