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나온 못에 작품 걸기
어떤 음악의 색은 부드러운 질감의 붉은 와인색 같은 버건디. 어떤 음악의 모양은 동그랗고, 타원형이고, 네모낳고, 비산형. 어떤 목소리는 빛의 일렁임같이 얇고, 또 어떤 목소리는 어두운색과 두껍고, 실키하고, 팝한.
그리고 그걸 보는 좀 이상한 사람.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 어릴 때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가 춤과 노래를 좋아한 이유는 다양했다. 음악의 색과 모양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을텐데, 나는 음악을 들을 때 색과 모양이 떠오른다. 내 머릿속의 복잡한 생방송 채널 중 하나다. 내 머릿속에서는 늘 여러 가지 채널이 켜져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소리의 모양 채널이다.
곡에 따라서 보이는 색과 모양이 모두 다르다. 주로 피아노는 작고 동그란 모양을 띄고, 맑은 색 중 에서 밝은색을 갖는다. 드럼은 또 다르다. 가로로 길쭉한 타원형에 어두운 색을 띈다. 그래도 모든 드럼이 다 그런 것은 아닌데, 스네일 드럼은 일반 드럼에 비해 색이 밝고, 모래를 뿌리는 듯한 모양을 갖는다. 기타는 여러 가지 색이 뒤엉킨 실 같은 형태인데, 리듬에 따라 모양이 흐르듯 변한다. 제일 흥미로운 것은 목소리다. 매혹적인 재즈 보컬은 마치 벨벳같은 질감에 예측불가한 독특한 모양을 갖는다. 반대로 강렬한 랩을 하는 래퍼의 목소리는 탁한 색의 두껍고, 조금 리드 미컬한 패턴의 모양이다.
이런 내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대학생 때였다. 음악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음악과 관련있는 모션그래픽 디자인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ADHD인, 나와 내 집중력은 수업을 좀체 따라가지 못했다. 늘 헤메면서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런 절찬리 헤멤 끝에, 나는 파이널 작품으로 내가 느낀 소리의 형태를 작업물로 만들었다. 그 런데 이상하게도 반응이 나빴다. 내가 컨셉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다들 점점 더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내가 모은 소리 파일과 모양을 재현한 3D 모션 비디오가 내 파이널 작품의 컨셉 이었다. 교실은 아주 조용했다. 사람들이 말없이 눈 앞의 미친, 또는 이해되지 않는 여자를 바 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 보통의 ‘평범한’‘정상’사람은 소리를 형태로 보 지 않는구나. 나는 그 뒤로 아무에게도 내가 소리를 형태로 본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정상인’으로 살고 싶었으니까.
많은 시간이 지나고, 진단을 받고 난 후 신경다양성에 대해 공부하다가 나는 나 같은 사람이 나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이 ‘비정상’적인 능력의 이름은 공감각이 었다. 영어로는 Synesthesia 라고 하는 공감각은 인구의 약 4%, 바꿔 말하자면 2,000명 중 1 명 꼴로 갖고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공감각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관찰되는데, 아마 뇌의 신경회로 발달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공 감각에도 공감각이라는 이름 밑에 다양한 종류가 있다. 내가 가진 음악이 움직임으로 보이는 현상을 Auditory-motor 라고 하는데, 이는 공감각 중에서도 1% 미만의 사람만이 지니는 능력 이라고 한다.
이걸 알고 난 뒤, 나는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미친 사람도, 이상한 사람도 아니야. 나는 그냥 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그리고 세상을 경험하는 사람일 뿐이야. 이 깨달음과 함 께 나는 내 특별한 재능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다시 붓을 들었다. 사람들의 이상한 사람을 보는 시선을 뒤로 한 나는, 나와 같은 공감각을 가졌던 위대한 화가 칸딘스키에게 영감을 받아 내가 보는 음악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내 작품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경험하는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 주고 싶다. 언젠가 전시회에 내 작품이 걸릴 수도 있겠지.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나의 이야기가 자신의 ‘다름’을 숨기며 살아가 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길 바란다. 당신의 특별함은 절대 저주가 아니다.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선물이다. 꼭, 기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