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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벨 Oct 17. 2024

튀어나온 못의 정체

튀어나온 못에 작품걸기


한 회사를 퇴사하면서 나는 말했다.
 “ 저는 제가 튀어나온 못 같습니다.”
 튀어나온 못,
 그리고 박힌 못이 될 뻔한 나는 n번째 퇴사를 했다.


어릴 적부터 많이 듣던 말이 있다. 바로 특이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남 들과 다르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나에게는 확실한 개성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이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미국으로 왔다.


나는 늘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사는 것이 불행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 다 하는 9시 출근, 5시 퇴근이 너무 불행했다. 꼭 온 몸에 쇠고랑을 차고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불행하지 않기 위해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났음에도, 나는 나를 자책했다. 아니, 남들 다 하는데 난 왜 못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런 내가 고기능 자폐, 혹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은 31살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전부터 관심이 있고 좋아하던 브랜드 전략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등록한 상태였다. 하고 싶던 공부 를 하니 너무 즐거웠다. 수업의 모든 내용을 귀담아 들으며 즐거워하던 날들이었다. 물론, 과제 를 마감일에 맞춰 제출하는 것이나 잊지 않고 모든 수행 과제를 해내는 일과 같은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할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이 뭔가를 읽어오라고 하셨는데, 도통 그걸 읽을 수가 없었다. 전 혀, 한 글자도. 같은 문장을 열 번을 읽어도 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한가?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는 평생 공부를 영어로만 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는 아닌 것도 같은데. 학교의 심리상담가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선생님, 관심이 없으면 글을 전혀 못 읽겠어요. 제가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 글은 왜 이해할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을까요?”


심리상담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잠깐 고민하더니 학교가 지정한 ADHD 스페셜리스트를 소개 해주었다. ADHD 스페셜리스트이자 심리 전문가인 션은 나와 두 시간동안 상담했다. 그렇게 상담이 끝나고, 션은 나에게 놀라지 말라는 듯 말했다.


“ 로벨, 내 소견으로는 네가 ADHD인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가 얼얼했다. 누군가가 망치로 내 머리를 후려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내가 그동안 이렇게 힘들었던 게 내가 이상해서, 내가 별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ADHD를 갖고 있어서 그랬던 거구나. 나는 안도했다. 그 뒤로 나는 약을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다. 약을 먹은 첫 날이었 다. 약효가 몸에 돌자, 평소에 늘 즐겨입던 그 잠옷이 너무 따가웠다. 비명을 지르며 옷을 벗 었다. 벗은 잠옷을 보며 또 생각했다. 이번엔 뭐가 문제일까?


그 때부터 열심히 이유를 찾았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내가 자폐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깨달 았다. 이미 우리 가족 중에는 어릴 때 자폐진단을 받은 남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타당한 추론 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 추론에 동의했다. 재밌는 점은, 남동생은 어릴 적 부터 자폐에 대한 교육을 오래 받은 터라 이미 자기 누나인 나도 그 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점이었다. 녀석, 알면 얘기 좀 해주지.


나는 분필을 들고 못의 머리에 다가갔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 자폐스펙트럼’
 네 이름은 지금부터 자폐스펙트럼이다.

그리고 난 널 박기보다 작품을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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