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나온 못에 작품 걸기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튀어나온 못은 박히게 되어있다고.
그럼 나도 말한다.
거기 그림 걸면 참 좋겠다고.
신경다양인들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내는 편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신념, 꿈 그리고 고유 한 개성을 갖고 살아간다. 80억 명의 지구인이 있다면, 그 색과 모양도 80억 가 지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양이 받아들여질 구멍을 찾아, 그 구멍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므로.
나는 그러한 80억 가지의 모양 중,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뾰족한 모양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뾰족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뾰족 인들은, 종종 다른 사람에게 “너 좀 이상해.”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반대로 너무 순수해 보이거나, 못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뾰족 인들을 가리키는 말은 아주 많지만, 나는 그들을 ‘신경다양인’이 라고 부른다.
신경다양인을 우리는 이렇게도 부른다. 자폐 스펙트럼, ADHD, 뚜렛증후군 등... 정형화된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들은 장애인이라는 시선에 맞춰져 생활해야 한다. 이러한 시선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대신 자신을 숨기기 위한 노력을 하게 만든다. 사회적 고립과 오해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꼭 인정하고 싶었다. 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축복하는 표현인 신경다양인은 그들을 특별하고 특이한 사람들로 만들지 않는다. 그냥, 그런 사람.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예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내 이야기이다. 미국의 이민 1.5세대 재미교포, 30대 여성 그리고 미진단 자폐인.
나는 진단을 받기 전까지, 내가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자폐인, 아니 신경다양인임을 전혀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미진단 자폐인으로 사는 삶은, 비유하자면 가슴속에 항상 정체 모를 뾰족한 가시를 품고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품 안의 가시로 나는 때때로 자신을 찔렀다. 내가 좀 이상하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버리면, 이상하다고 규정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늘 나를 품 안의 가시로 찔러댔다. 하지만 나는 이내 세상에는 나처럼 ‘조용한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나처럼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는 것을 모르고 튀어나온 못, 어딘가 이상한 애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었다. 나처럼, 스스로의 품에 품은 가시로 자기를 쿡쿡 찔러대면서.
나는 이 책에서 내가 진단을 받기 전엔 어떻게 살았고,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사이에 얼마나 혼란스러웠고, 그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리고 내가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자 한다. 이 책은 정체 모를 품 안에 가시를 품은 사람들을 위한 나의 이야기이다. 그 가시로 더 이상 나를 찌르지 않아도 된다고 전하는, 내 이야기.
내가 겪은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더군다나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니, 한국의 독자들과 완전히 소통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꼭 사람들이 신경다양성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발점이자 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세상이 좀 더 넓고 깊어질 수 있기를.
지구의 사람들이 80억 명이고, 그들의 모양이 80억 가지나 되는데 조금 더 뾰족하고 조금 더 울퉁불퉁하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이 틀린 것이 될까? 우리는 틀린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일 뿐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튀어나온 못은 박히게 되어있다고. 그럼 나도 말한다.
거기 그림 걸면 참 좋겠다고.
2024년 09월 어느 가을에. 캘리포니아에서, 로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