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성성격장애의 망상
가장 가까운 사이에도 숨겨진 상처는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드러나기도 한다. 전남편은 7살쯤 어린 나이에 생긴 상처가 있었다. 알게 된 건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가족이라는 것을 형성하고도 10여 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누구세요?”
티브이도 없고, 어둡고 적막한 친구들도 없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무서운 7살을 보내고 1년 만에 처음 본 엄마에게 그가 꺼낸 첫마디였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일들이 있었으면 귀하디 귀한 아들을 시골에 방치하고 한 번도 찾아가 보지 않았을까? 집에 가보니 2살위 누이는 돌아가셨고, 막 태어난 입양한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나로서는 가늠도 안 되는 힘든 일을 겪었을 것 같다. '어른들은 힘들어도 어린아이까지 힘들게는 말아야지. 그때는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학대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알려주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하며 애써 그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흐르는 시간 덕분에 그는 내면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어른이 되었고. 그의 부모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입만 굳게 닫혔을 것이다.
내가 만난 그의 첫 모습은 순진한 사람이었다. 안경을 쓰고 웃고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얌전한 모범생 이미지였다.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나는 궁금하면 질문하고, 혼나고, 뭐든 그 즉시 해결해야 하는 반면 그는 우리가 무엇을 해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식당을 운영할 때도, 줄눈을 배울 때도, 영업을 할 때도 움직임이 활동적이지 않으니, 의견을 내는 경우도 없고 조용히 대의를 따를 뿐이다. 본인의 생각을 단단히 닫아 숨긴 채 지냈다. 무의식적으로 상처가 될 이야기들은 함구하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어른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표현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몸으로 익힌 탓일까? 그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난 늘 답답했고 그의 생각을 내 방식대로 추측할 뿐이었다.
처음 여자문제가 생긴 것은 결혼을 하고 1년 도 안 된 시점이었다. 결혼을 앞둔 회사 동료였다. 그녀의 남편 될 사람이 회사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으면서 온 가족이 다 알게 되었지만, 가까운 동료로 서로 힘들 때 도와준 것뿐이라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없었던 일로 덮었다. 이때 그의 성격장애와 잘못을 정확하게 짚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시작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행동들은 계속되었다. 나의 촉은 늘 예민하게 서있었고, 말 한마디에도 날카롭게 변해갔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는 양말도 안 신은 어느 여자가 문상을 와서 그를 찾았다. 비빔밥집을 할 때였고 매출이 줄어들어 가게는 내놓고 나도 그도 직장을 구하고 있어서 그와 나는 면접을 보러 다녔었다. 그 여자는 면접을 본 회사의 면접관이라고 했다. 입사 확정도 되지 않은 사람의 아버지 장례식을 왔다니 이상했다. 그녀는 내가 와이프인 것을 확인 한 직후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핸드폰을 저렴하게 바꿔준 적이 있었던 올케친구에게도 전화를 너무 자주 걸어서 불쾌하다는 욕을 들은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의심을 하면 할수록 싸움은 커져갔고, 아이들은 불안해했다. 아이들에게 싸우는 모습만 보여줄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그의 입을 다물은 모습과 아이들과 행복하게 웃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본인은 외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나를 오히려 의처증이 있는 사람처럼 대했다. 심증은 바람인데 증거는 없으니 그의 말을 답답하지만 믿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나의 이혼을 결심하게 한 그의 외도는 아이 둘과 능력 없는 남편 때문에 힘들어했던 8년 지기 내 친구이자 직원이었다. 나는 그들의 관계를 바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혼인관계 유지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함께 모텔까지 다녀놓고 그들은 끝까지 간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한테 아니 자식들에게 미안하기는 했을까?
그는 외도도 간음도 하지 않은 잘못한 것이 없는 의심받는 불쌍한 남편을 연기했고, 나는 아이들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노와 억울함을 동시에 쌓아가고 있었다. 관계 회복이 필요했을까 싶지만 대화를 시도해도 마음을 숨기는 재주가 있는 그와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계속 마음속에 묵직하게 뭐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속시원히 해결해서 숨통이 트이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기로 하고 부부 상담을 받았다. 그렇게 알게 된 단어 경계선 성격장애이다.
경계성성격장애를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면 자아상, 대인관계, 정서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특징을 갖는 성격장애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인은 많은 수의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에서 어린 시절 버림받거나, 신체적, 성적 학대를 받았다는 결과 등이 나타난다.......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이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사건들이 번개 치듯 생각났고, 마지막 퍼즐 조각을 못 찾고 헤매다가 마지막에 끼워 넣으며 퍼즐을 완성되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심리상담 선생님 말씀은 본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버림받을까 초조한 마음에 시달리고, 안정적이지 못한 마음으로 어린아이가 애착인형을 찾듯이 서브로 다른 장난감을 만든다고 한다. 그럼 그동안의 그 여자문제들이 다 이런 심리적인 문제에서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잠시 도피할 곳 만들어 놓거나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안정감을 느낀다니. 아무리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있더라고 모든 사람이 잘못된 행동임을 인지하고 스스로 자제를 하는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두 집 살림해야 맘이 편하다는 말도 안 되는 지랄 같은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더 있었다. 그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오타쿠 같은 행동을 했었다. 작은 어항에서 시작된 그의 수족관이 6-7개로 늘어나며 거실을 아쿠아리움으로 만들어놨었다. 처음엔 취미겠거니 했는데 비정상적으로 물고기에 매달려 아침마다 어항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현실을 회피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화분을 키우면서도 그랬고, 사직을 찍으면서도 다른 것은 보지 않고 그것에만 푹 빠져 시간을 보냈다. 관심이 끊어지면 어항도 화분도 모두 버려졌다. 이것 역시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상간녀소송 준비를 위한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나의 SNS의 친구들이 그와 모두 1촌이나 이웃으로 신청되어 있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미친놈. 그럼 결혼을 하지 말던가. 친구가 필요하면 동성친구를 만들던지, 아님 그냥 어항이나 들여다보던지 하지.” 왜 여자한테만 껄떡거리면서 뭔 주접인가 싶었다. 그놈이나 그년이나 정신병자라고 생각해야 내속이 편하겠지. 그의 상식이하의 변명으로 나는 치를 떨었다. 이기적인 그의 이중생활은 거짓말이었다. 가증스러운 그의 위선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니글거려 구역질이 나왔다. 조금만 더 소송이 길어졌다면 난 그의 눈을 파버렸을지도 모를 일이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부부와 연인이 어디 있을까? 흔들리며 마음을 다 잡아 배우자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것이 부부간의 예의고 도리다. 우리는 성장하고, 돈독해지면서 확실하고 끈끈한 가족애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에게 아픈 병이 있다면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참아보려고 했다. 그는 본인의 허탈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했고, 죄 없는 아이들이 상처받았다. 이혼은 나에게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결혼 생활의 종결이었고, 아픔과 상처가 가득한 시간의 마무리였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에 씨앗을 심고, 햇볕을 받으며, 물을 주고, 비바람도 견뎌내야 한다. 꽃이 피고 지면 열매를 맺는다. 인간의 삶도 비슷하다. 타고난 기질은 좋은 품종의 씨앗이고, 좋은 환경은 좋은 토양, 적절한 햇볕과 물이다. 기질과 환경은 안타깝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통제 불가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비바람을 견디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내가 나의 상처를 알았다면 극복하면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야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 힘은 인간관계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는 노력하는 힘을 헛으로 사용했고 본인만 생각하는 못된 사람이었다. 난 옆에서 힘이 되어주지 못했고, 그의 행동에 지쳤고, 이해하지 못했고, 분개했다. 그래, 누구나 사람은 나약하고 이기적이다. 너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더 이상 나는 상처받지 않겠다 생각했다.
나의 아이들에게 좋은 토양과 햇볕, 물을 최고급으로 해주지 못할지언정, 더럽혀지고 훼손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절대로 상처를 대물림해주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소송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