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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 28

시월의 어느 늦은 오후

by 이효범

시월의 어느 늦은 오후


구녕 이효범


대지는 슬픔에 젖어 있다.

바람은 북쪽에서 불어오고

나뭇잎은 말라 간다.

멀리서 말하는 사람아

그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산모퉁이를 돌면

목마른 사람이 찾아와도

한 모금 찬물조차 줄 수 없는

허물어진 우물.

정갈하게 말이 고이지 않는다.

가난은 우리 죄가 아니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을 것이다.

음악처럼 흘러가면 그뿐이니

그리워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억할 일도 아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잘 가거라.

나는 귀를 접고 눈을 감는다.




후기:

시월은 왠지 쓸쓸합니다. 바깥도 쓸쓸하고, 마음도 쓸쓸합니다. 구름도 쓸쓸하고, 나무도 쓸쓸하고, 햇살도 쓸쓸하고, 꽃도 쓸쓸하고, 심지어 강아지도 쓸쓸합니다. 쓸쓸이 쓸쓸하게 천지를 덮고 있습니다. 쓸쓸이 시간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명도 쓸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쓸쓸한 날에, 쓸쓸한 내가, 쓸쓸하게 걸으면서, 쓸쓸한 시를 씁니다. 당신도 쓸쓸하겠지요. 심술궂게도 쓸쓸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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