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어느 늦은 오후
구녕 이효범
대지는 슬픔에 젖어 있다.
바람은 북쪽에서 불어오고
나뭇잎은 말라 간다.
멀리서 말하는 사람아
그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산모퉁이를 돌면
목마른 사람이 찾아와도
한 모금 찬물조차 줄 수 없는
허물어진 우물.
정갈하게 말이 고이지 않는다.
가난은 우리 죄가 아니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을 것이다.
음악처럼 흘러가면 그뿐이니
그리워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억할 일도 아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잘 가거라.
나는 귀를 접고 눈을 감는다.
후기:
시월은 왠지 쓸쓸합니다. 바깥도 쓸쓸하고, 마음도 쓸쓸합니다. 구름도 쓸쓸하고, 나무도 쓸쓸하고, 햇살도 쓸쓸하고, 꽃도 쓸쓸하고, 심지어 강아지도 쓸쓸합니다. 쓸쓸이 쓸쓸하게 천지를 덮고 있습니다. 쓸쓸이 시간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명도 쓸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쓸쓸한 날에, 쓸쓸한 내가, 쓸쓸하게 걸으면서, 쓸쓸한 시를 씁니다. 당신도 쓸쓸하겠지요. 심술궂게도 쓸쓸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