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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억만개의 치욕 Nov 01. 2024

 My story

b6. 기념일을 기념하는 법

11월 3일은 22주년 결혼기념일이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꽃다발을 두 개 사들고 와 나와 딸아이에게 안겨준 것이 몇 년 된 것 같은데 그마저 오래된 건 아니니 짐작컨대 그건 아마도 딸아이의 성장에 맞춘 교육용 기획(?)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연애를 4년 간 했지만 100일, 200일 같은 것을 챙겨본 적이 없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도 그냥 생각나면 슈퍼에서 파는 가나 초콜릿 하나, 츄파츕스 하나로 '오다 주웠다'하는 정도. 생일엔 꼭 밥을 같이 먹지만 특별한 이벤트는 없다. 선물도 굳이 일부러 준비하지 않는다. 촛불을 켠 카페나 차량 풍선 이벤트 같은 청혼도 없었다.(이미 결혼하기로 협의(?) 한 상태에서 날 잡고 족발 먹다가 반지 하나 받은 게 다다.ㅎㅎㅎ) 섭섭하지 않냐고? No!!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무관심하거나 무뚝뚝하게 대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 우리는 정말 '친하다.' 대학 같은 과 선후배인 CC로 이미 로맨스 기본조건은 마련된 셈이고, 누구 못지않은 열정적인(?) 사랑을 했고 지금도 요즘 애들 표현으로 '꿀 떨어지는' 커플로 소문 나 있다. 무엇보다 가사, 육아 동지를 넘어 인생의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반려자로서 끈끈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뻔한 이벤트, 퍼포먼스 체질이 아닐 뿐이다.  


나는 남들 다 하는 방식으로 호들갑스럽게 기념일을 챙기는 게 어색하고 싫다. 뭔가 본질이 형식에 압도되는 느낌이랄까. 겉치레가 화려할수록 비어 보인다. 감동이 없다. 내가 유일하게 챙기는 날은 남편과 아이들의 생일인데 그것도 무슨 대단한 파티가 아니고 정성 들여 생일상을 차리는 정도다. 결혼기념일이나 아이들 입학식, 졸업식엔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도 장소나 메뉴보다 함께 하는 시간 자체를 중시한다.


그런 나지만 생일도 뭣도 아닌 어느 평범한 날에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에게 특별한 날은 평범하게, 평범한 날은 특별하게 보내는 지혜를 가르치고 싶었다. 케이크는 생일에만 먹는 게 아니고 생일이라도 케이크를 안 먹을 수도 있으니까.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기 싫은 이 청개구리 본능은 기념일을 기념하는 법에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기념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결혼기념일이 되면 추억으로 마음이 몽글해지고, 감사함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뻑적지근한 이벤트나 비까 번쩍한 선물이 부럽지가 않을 뿐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합리화일까? 신포도? No!!


나는 내 방식대로 기념일을 ‘기념’한다. 내가 선택한 순간들, 내가 채운 시간, 역사가 된 나의 스토리…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시간을 살고 우리만의 웃음을 웃고 우리만의 울음을 울며 여기까지 왔다. 서로가 증인이다. 눈빛만으로 전해지는 사랑, 우정, 연민, 전우애면 되었다.


그래도 11월 3일엔 내가 좋아하는 맥주 한잔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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