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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억만개의 치욕 Nov 10. 2024

My story

b7. 습관1.- 독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 중인데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내 눈으로 들어온 활자가 즉시 증발해버리는 것만 같다.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한자한자 집중해봐도 소용이 없다. 슬며시 연필로 줄을 그어보다 지우개로 지우며 '이건 아니다' 하고 말았다. 내가 읽는 책을 빌려볼 사람이 있겠나 싶어 슬쩍 연필을 대다가도 이내 거두고 만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 이 몹쓸 습관에 대해...


나는 책을 읽을때마다 이 내용들을 잃어버릴까봐 아니 내 기억력과 무관하게 이것들이 사라져버릴까봐 조바심이 났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내 머릿 속 뇌의 주름에 문신처럼 새겨졌으면 좋겠다. 명품백 따위엔 욕심 없는 내가 책 욕심은 과하게 부린다. 책을 많이 읽은 자, 책을 많이 가진 자, 책을 많이 기억하는 자가 질투나 죽겠다. 그래서 세상을 읽는자, 여유를 가진 자, 혜안을 가진 자가 부럽고 또 부럽다. 보통의 지성을 가진 내가 꾸는 꿈이다. (꿈도 못꾸나?)


언제부턴가 나는 책에 줄을 긋고 갖가지 모양으로 체크를 하고 중간중간 메모를 하기도 하면서 읽게 되었다. 그러면 묘하게도 안정감이 생긴다. 선으로 도형으로 책의 내용을 가두고 잠구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나는 언제든 그것들을 찾아낼 있다. 아주 쉽게...다시 읽을 때는 내가 체크해둔 표식들을 따라가면 과연 내용이 뼈대가 한눈에 그려진다. 이것이 오랜 습관이 되어버려 나는 공공 도서관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쩔 없이 나는 책을 '많이' 사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형편이 안된다. 하노이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그때 그때 구해서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데 책을 '읽는' 것에 의의를 두고 평소엔 잘 읽지 않는 류의 책들이나 오래된 책들을 보기도 한다. 문제는 어떤 책이든 눈으로만 '봐야' 한다는 것.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 딱 그거다. 허나 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도 만지고 오감으로 책을 읽고 싶다. 낙서는 아니다.(맞을 수도 있다.) 나는 책이 나에게 보여주는 밑그림 그려진 세상을 내 시선으로 채색하는 공동 작업자다. 느낌 있는 단어에 별표를 치기도 하고 공감되는 문장엔 밑줄 긋고 내 생각을 쓰기도 하고 의문이 나는 부분엔 그 내용으로 물음표를 그려둔다. 가끔은 오탈자를 발견하고 정정해두기도 하고...ㅎㅎㅎ 이렇게 쓰고 보니 몹쓸 습관이 아닌 그럴 듯한 습관인듯.


어쩔 수 없어서 이제 노트에 간단히 메모를 하며 읽는다. 영혼을 울리는 어휘나 구절도 쓰고 요약 정리도 하고... 책에다 하는만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해본다.


습관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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