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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민 7시간전

지루한 기차를 마주하다

어린 날의 기차

먼지 풀풀 날리는 오토바이와 릭샤들 틈을 비집고 도로에 서 있는 차 안. 숨막히는 교통체증 때문에 가능하면 장거리는 피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부득이 짧은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실내 놀이동산이라도 다녀와느라 피할수 없는 전쟁에 갇혀있는 중이다. 하필이면 길고 긴 기차에 걸려 교통체증에 짜증은 더해만 간다. 인도는 넓은 땅, 많은 인구 만큼이나 기차의 길이도 길다.

짜증이 가득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끝말잇기 놀이를 하다 멈추어 아무일 없다는 듯 지나가는 기차의 칸을 세면서 또 다른 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 댁에 보내졌다. 외할머니 집은 기찻길 바로 옆에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면 작은 역을 빠져나와 혼자서도 단숨에 갈수 있는 거리다.

‘통일호’ 집에서 외할머니 집에 가려면 나는 통일호를 탔다. 당시 그 보다 더 빠른 무궁화호가 있었지만 외할머니댁은 너무 시골이라 ‘비둘기호’와 ‘통일호’만 정차했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댁에 보내는게 미안했는지 비둘기호를 끊어주지 않고 구지 꼭 통일호를 끊어 타게했다. 비둘기호는 통일호 보다 정차하는 곳이 더 많고 많이 느렸다.

그래도 온 가족들이 외할머니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있을 때는 비둘기호를 타기는 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고구마와 감자, 옥수수도 삶아 주시고 조물조물 나물 반찬에 손녀를 위해 맛있는 음식들을 해주셨다. 농사를 지어 손톱 밑이 까맸지만 그 손으로 훌훌 불어가며 감자 껍질을 벗겨 주어도 유일하게 나를 어린이 다운 어린이 대접을 해주고, 집에서 다 받지 못하는 부족한 사랑을 채워 받는 느낌이 들어서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도 밤만 되면 집에 가고 싶고 엄마를 많이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기찻길 바로 옆이라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참 많이 시끄러웠지만 나는 그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오히려 좋았다. 엄마가 나를 언제 데리러 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또 이따금 기차를 타고 이모들도 오고 사촌들도 오고 손님들이 왔기에 시끄러운 기차 소리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심심한 시골집에 언제 반가운 손님이 저 기차를 타고 올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구지 싫은 때를 꼽자면, 고추밭 가장자리 꼬챙이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느닷없이 기차 소리가 울리면 당혹스럽고 그때 만큼은 기차 소리가 원망스럽고 싫었다. 또 이웃 할머니집에 나와 같은 처지의 동무를 만나면 서로 자기가 사는 진짜 동네에 자랑거리가 늘어지곤 했는데 꼭 내가 이야기 할 중요한 시점에 기차가 지나가 버리면 허무해지곤했다. 그래도 비둘기호를 타고 온 친구 앞에 나는 통일호를 타고 왔노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비둘기호와 달리 통일호에는 계란과 귤 과자들도 팔았기 때문에 어린 나에게 큰 자랑이었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 때를 많이 기다렸으면서도 막상 엄마 손을 잡고 할머니 댁을 나설 때면 눈물이 났다. 할머니는 또 혼자 남아 넓은 마당을 서성거리겠지, 내가 잠자리 잡으며 놀던 고추 밭을 괜히 왔다 갔다 하시겠지. 내가 지어 준 토끼 이름을 놀렸다고 후회하시면서 토끼 집 앞에 앉아 손녀가 부른 엉터리 토끼 이름을 불러보겠지. 어린 마음에도 혼자 남은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 쉽게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방학에 또 올게요 할머니…’ 나는 다시 통일호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엄마가 사주는 계란과 사이다를 먹으며 할머니의 모습은 금방 잊어버렸다.


길고 긴 기차가 지나갔나 보다. 숫자를 세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언제들 왔는지 조금이라도 일찍 가려고 좁은 길들을 비집고 들어선 다른 오토바이들이 재빨리 뿌연 먼지를 내면서 지나가 버린다. 나의 어린 추억들 만큼이나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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