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시간에 쓴 글
어제 내 남자 친구가 한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다. 시각은 일출 쯤으로 예상된다는데 그 친구는 항상 자살하면 황혼 사이로 떨어지면서 자살할거라고 말하던 친구라 뭐가 그렇게 그 애를 힘들게 해서 그렇게 조급하게 보내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하고, 금방 깨어날 거라고는 했지만 내 몸은 점점 슬픔에 잠식되고 있다. 아직은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물음을 혼자 곱씹고있다. 왜? 왜 그랬어? 뭐가 그렇게 급해서 저녁까지 기다리지도 못한 거야? 누가 너 괴롭혔어? 지난번에 너 때렸다는 걔 때문이야? 그러게 내가 걔가 괴롭히면 말하라고 했잖아.
그런 물음표들 사이에 갇혀있다보면 어느새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야 할 시간이 되어있고, 난 그 일정으로 넘어가고 나서도 계속해서 물음표들을 떠올린다. 그 과정을 한참 반복하다보니 하루가 끝나있었다.
저녁 먹기 전 쯤에 습관적으로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문자를 보내려다 멈칫했다. 얜 오늘 하루를 힘겹게 버텨내지도 못할 것 같아서 뛰어내렸고, 그렇게 뛰어내려서 오늘 하루를 보내지도 못했어. 그런데 이 문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저녁에 학원가는 길에 나와 굉장히 친한 친구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남자친구가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무슨 대단한 고민이 있어서 전화를 건 건 아니었다. 그냥 아무나 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해서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나를 진심을 담아 위로해줬고 전화는 한참 뒤에 끊겼다.
학원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가족들은 내가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예전에 잠깐 그 친구와 사귀었을 때 그 애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굳이 티내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걔가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걸 알면 '그런 애'하고는 더 이상 어울리지 말라고 하겠지. 그래서 슬픔을 삼켰다.
아래 글은 내가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 이 일로 인해 드는 내 생각을 적은 글이다. 주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라... 지금은 너가 미워서 너를 위해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너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어. 너무 진부한 표현 같지만 이만큼 지금 내 심정을 더 잘 대변하는 말도 없을 것 같네.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가 있겠지. 가령 길 가다가 너를 연상시키는 예쁜 꽃이 피어 있으면 사진을 찍어서 너에게 보내준다거나(예쁜 꽃을 보면 네 생각이 나거든.), 너를 위해 선물을 고르러 가서 너한테 잘 어울리는 것 보다는 네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선물을 산다거나(넌 너한테 어울리는 거랑 좋아하는 게 다르잖아.), 한참 붓을 잡고 있느라 아픈 너의 손을 주물러준다거나(이제는 예전처럼 그릴 수도 없는데도 예전과 같은 상태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늘 전자기파와 함께하는 너에게 뒤에서 슬며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씌워준다거나(뭐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너 예뻐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거북목 되면 안 예쁠텐데.), 네 손목과 허벅지에 새겨진 붉은 선 위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준다거나(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그건 안 했으면 좋겠어.), 네가 잠에 들지 못할 때마다 네가 잠에 들 때까지 전화를 이어간다던가(넌 불면증이 있는데도 나랑 전화하는 날에는 잘 자더라. 그래서 너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 밤에는 잠에 잘 들었구나 생각하게 돼.), 네가 좋아하는 애정표현을 해준다거나(넌 안아주는 걸 제일 좋아하더라. 특히 뒤에서 안아주는 거.), 늘 아침에는 사랑한다고, 저녁에는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메세지를 보내주는거(우리 둘 중 누가 먼저 생각해낸 건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이거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우리가 예전부터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했으면 좋겠는 것들을 난 네게 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높은 데에서 뛰어내리는 놀이 안 하면 안될까. 그거 네가 안 한다고 하면 네가 해달라는 거 뭐든지 해줄 수 있는데. 나 지금도 너무 불안해. 네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가 영원할까봐. 그러니까 이번에 깨어나면, 그 놀이 다시는 안한다고 나랑 약속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