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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현 Nov 22. 2024

미처 놓치고 있던 우리 주변의 소중한 것

‘요즘 시골 땅 다 별장이나 개인 저택 짓기 위해 보러 오지 누가 농사 지으러 보러 오나요’


바람도 쐬고 부모님 노후 준비를 위한 토지를 알아보기 위해 겸사겸사 강원 홍천을 방문했다. 몇몇 부동산을 보고 다니던 중 홍천 시내에 위치한 한 부동산을 방문했다.


노후 별장을 지을 땅을 알아보러 다닌단 아버지 말에 부동산 사장님은 몇몇 땅을 보여주며 ‘여기가 사장님이 말한 지가(地價)에 부합한 땅인데 가보실래요’라고 말했다.



직접 차를 끌고 나와 아버지를 홍천 산기슭에 위치한 볕 좋은 땅을 소개시켜 준 부동산 사장님은 ‘아직 땅 정리가 덜 돼서 그런데 하루이틀 땅 고르고 마사토 깔면 깔끔히 정리 될 거에요’라며 좋은 땅이란 걸 강조했다.


바로 아래 농지로 쓴 흔적이 보인 땅을 본 아버지는 ‘이 땅은 농지로 쓰는 거에요’라고 물었고 사장님은 ‘아뇨. 용도변경 거쳐서 팔 거에요. 요즘 누가 농사 지으려 땅 보러 다니나요. 다 옛날 일이지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가 본 땅엔 말라 비틀어진 파와 채소잎이 뭉그러져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고른 땅이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지로 쓰인 땅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웃픈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사실 많이 슬프면서도 우려스러운 현실이 반영된 말이다.


도시화, 공업화가 진행되고 지방 인재들이 경제적 기회와 고소득 일자리를 위해 수도권으로 몰리며 시골을 비롯한 지방엔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농업을 비롯한 시골 경제를 지탱하는 1차산업은 몸과 기력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군이라 고령층이 이를 모두 소화하는 데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분들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일손을 놓으시게 되면 우리가 식탁에서 마주하는 먹거리, 농산물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외국서 수입하지 않는 이상.


‘어차피 우리나라 농산물보다 외국산 농산물이 값이 더 싼데 뭔 그런 걱정을 하냐’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국가 경제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말이다.


유엔세계식량 안전 보장위원회가 명명한 식량 안전 보장, 식량 안보 뜻을 보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올 것이다.


식량안보는 음식, 그리고 개인이 해당 음식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항시 충분하고 안전하고 영양분 있는 음식에 대한 물리·사회·경제적 접근을 가짐으로서 활동적이고 건강한 삶을 위한 음식 선호 및 식이 요건을 충족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전시든 비상상황이든 언제 어떤 상황서든 국민이 안정적으로 식량을 사서 먹을 수 있는 역량’을 말하는 것이다.


돌려 말하면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서 안정적으로 식량을 수급할 수 있는 능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게 왜 중요하냐.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3가지는 언제나 의식주다.


옷 없인 외부로 나갈 수 없고 먹을 것 없인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없으며 집 없인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 중 식(食)은 집보다 중요한 2번째에 위치해 있다. 즉 먹을 게 없으면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만큼 식량 주권을 지키는 건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식량안보가 무너진 국가의 시나리오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A 국가는 젊은 농부들이 경제적 기회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농업을 포기하고 도시로 가고 고령층도 일손을 놔 식량을 전량 외부서 수입한다.


처음엔 싼 가격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던 해외 국가 B는 점점 식량 단가를 높여 판매한다.


마침 B 국가에 자연재해가 덮쳐 농업 생산량이 예년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자국 국민에 팔 식량도 부족해진 B 국가는 식량 수출을 원하는 A 국가에 예년의 2~3배에 달한 비용을 요구한다.


B 국가로부터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하던 A 국가는 울며 겨자먹기로 식량을 수입한다.


평소보다 2~3배 비싼 가격에 식량을 수입한 A 국가는 국가 예산이 부족해지고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식량을 판매해 전체 물가 지수가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을 맞이한, 경제 위기를 맞게 된다.


믿기 힘들겠지만 불과 10여 년전 동남아 국가서 이런 시나리오가 실제로 발생했다.


2008년 KBS 대기획으로 방영된 ‘쌀을 포기한 대가’는 이런 상황을 상세히 담아냈다.


방영년도 수년 전까지만 해도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은 급속한 도시·공업화를 겪으며 농업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됐다.


농업 포기로 쌀 생산량이 떨어진 필리핀은 이웃 나라인 베트남으로부터 쌀을 수입했다.


그런데 2008년 초 베트남 북부에 몰아친 한파로 식량 생산량이 떨어진 베트남은 외국으로 쌀 수출을 제한했다.


필리핀도 예외는 아니었다.


KBS 다큐에 출연한 당시 필리핀 식량청(NFA) 홍보국장인 렉스 에스토페레스는 인터뷰서 ‘주요 쌀 수출국들이 필리핀으로의 쌀 수출을 제한하고 가격을 인상시킨 적이 있다.


우리는 식량 안보를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가격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필요한 쌀을 다 수입하지는 못했다’며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한 쌀을 필요치 만큼 확보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했다.


바로 옆에서 우리 먹거리를 책임져준 농업이 ‘국가 경제 안정화’의 중요 요인이라는 걸 확인시켜 준 것이다.


내 아버지도 농사를 지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학교 방학 땐 할아버지를 도와 농업 일손을 거들었다.


지금도 집이나 밖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때면 그때 할아버지 옆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었고 일을 도왔는지 만담으로 얘기해 주시곤 한다.


그만큼 농업은 우리 바로 윗세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주요 국가기간산업이었다.


우리 바로 옆에서 힘든 일을 도맡으며 밥상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준 농업인 분들이 더 힘들지 않길 바란다.


선거 때마다 농사 현장을 방문하며 ‘농업인 고충을 청취했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이들이 농업인보다 더 열심히 뛰길 바랄 뿐이다.


선거 때 남긴 메시지가 보여주기 멘트가 아니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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