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 마지막 승부던지기 방송을 중계하던 캐스터 최승돈 아나운서는 덴마크 선수의 슛이 들어가며 우리의 패배가 확정된 순간 누구보다 눈물이 나고 허탈한 여자 선수들을 위로했다.
오전에 교회 성도와 밥을 먹은 후 교회 2층 카페서 잠시 쉬며 스포츠 영상을 둘러보던 중 알고리즘 목록에 어딘가 익숙한 이름의 스포츠 영상이 올라왔다.
‘2차 연장에 승부던지기까지...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MBC 영상이었다.
골이 들어가도, 공을 빼앗겨도 악착같이 따라잡으며 혼신을 힘을 다한 여자 선수들을 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한 최 아나운서의 응원, 일방적으로 덴마크를 응원하는 유럽 관중들 소리가 한데 뒤섞인 영상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지막 승부던지기까지 보게 됐다.
머나먼 이국땅서 홈그라운드 유럽 관중의 일반적 응원까지 이겨내며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의 무대 결승전에 올려놓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그녀들을 보며 최 아나운서는 한 언론사와 인터뷰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덴마크 응원단이 경기장을 점령했고 우리나라 팀은 응원단이 없어 선수들이 중계석을 향해 인사하고 손을 흔들어줬다. 우리는 방송에 응원까지 해야 했다. 그때 그 선수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올림픽 결승전까지 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날의 경기에 더욱 감동을 받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이 얘기를 잘 알지 못했다. 2004년 여름 그날 아테네서 어떤 일이 있었고 그분들이 무수히 많은 고충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 순간을 4년 후 영화로 알게 됐다.
나와 동생을 깨우며 영화관에 데려간 부모님은 매표소서 티켓을 받으며 서둘러 관람석으로 향했다. 무슨 영화길래 이렇게까지 깨우며 나를 데려간 건지 툴툴대던 나는 당시 TV 드라마서도 많이 나온 익숙한 얼굴의 여배우가 나온 순간부터 영화에 몰입했다.
문소리 배우가 연기한 우리나라 올림픽 여자 핸드볼 2연패 주역 미숙은 핸드볼을 접고 아들을 데리고 대형마트서 점원으로 일한다.
미숙과 함께 한솥밥을 먹으며 올림픽 무대서 찬란한 영광을 맞이했던 혜경은 미숙에게 다시 핸드볼을 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올림픽 금메달 따면 상금 나오지 않냐며 현실적 고충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조언하지만 미숙은 미온적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혜경의 지속적 설득 끝에 미숙은 여자핸드볼 대표팀에 복귀하고 신인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받는다.
미숙을 비롯한 노장 선수들과 신인 선수들 간 이른바 ‘세대차이’로 불린 문화적 갭으로 인해 팀 내부엔 불협화음이 일게 되고 미숙도 국가대표 선수촌을 떠나게 된다. 혜경도 대표팀 감독 대행직서 물러난다.
신인 감독으로는 엄태웅 배우가 연기한 안승필이 부임하고 기존 훈련이 아닌 유럽식 훈련 방법이 도입되자 노장 선수들은 더 반발한다.
여러 불협화음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 안승필 감독은 팀에서 무단이탈한 미숙을 엔트리서 제외하겠다 하자 혜경은 결사반대한다. 끝까지 미숙을 엔트리서 제외시키려는 안승필 감독에게 혜경은 자신의 국가대표 선수 자격을 건 내기를 제안했고 안승필 감독은 이에 응한다.
혜경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안승필 감독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졌고 약속대로 짐을 싸서 선수촌을 떠나려 한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 팀원을 챙기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혜경의 의지를 본 안승필 감독은 떠나려는 혜경의 손을 붙잡으며 다시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혜경이 요구한 미숙의 엔트리 복귀도 약속한다.
노장선수들의 단합됨과 투지를 눈앞에서 본 신인 선수들도 마음을 열고 노장 선수들을 대했고 이들은 다시 하나된 팀을 꾸린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여름. 제28회 하계 올림픽 개최지인 아테네에 입성한 이들은 여자핸드볼 강국인 브라질과 프랑스를 꺾고 결승에 오른다. 프랑스와 4강전에선 종료를 수십 초 앞둔 시점서 결승골을 터뜨렸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리자 여자 선수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러나 당시 아테네서 주전 선수로 뛰고 있던 미숙은 자신의 남편이 위독하단 소식을 듣게 된다. 결승전이 불과 며칠 안 남은 시점. 한평생 힘이 되주지 못하고 술에 찌든 남편이지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단 불안감에 선수촌을 떠나 아테네 공항으로 향한다.
그 시각 아테네 경기장선 우리나라와 덴마크의 여자핸드볼 결승전이 열렸다. 유럽을 넘어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덴마크 여자핸드볼 대표팀에 우리나라는 초반 고전을 면치 못한다. 여러 차례 올림픽을 뛰며 유럽 팀과 덴마크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미숙의 부재가 절실히 느껴진 상황이었다.
그리스 신화 신전으로 유명한 아크로폴리스를 배경으로 아테네 공항으로 향하던 미숙은 생애 단 한번,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무대서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며 분투하고 있는 동료들을 떠올리며 갈등하다 택시 기사에게 ‘아테네 핸드볼 경기장으로 향해달라’고 말한다.
세계 최고 덴마크 선수들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혜경은 갑자기 경기장에 나타난 미숙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자며 선수복으로 환복한 미숙은 경기장에 투입돼 노련한 움직임으로 덴마크 선수들을 따돌리며 골을 넣는다.
매서운 눈빛으로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슛을 날리는 미숙을 보며 당황해하는 덴마크 선수들을 보고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은 다시 힘을 내며 종료 전 기어코 동점을 만들어낸다. 2차례의 연장전 후 승부던지기에 돌입한 우리나라 대표팀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석패한다.
물론 영화로 연출하기 위해 일부 각색된 얘기도 있지만 본질인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어려움,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세계 최고의 무대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영화보다 더한 열정과 굴지를 갖고 도전을 이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 서울올림픽 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 2012 런던올림픽 4강에 빚나는 우리나라 여자핸드볼 대표팀.
다음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서도 다시 생애 최고의 순간을 써내려 갈 그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