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가족과 함께 인천 삼산 농산물시장을 갔다. 오랜만에 본 호박고구마와 감자, 대추, 감 등 가을 작물들이 시장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여러 농산물을 구경하던 중 한 채소가 눈에 들어왔다. 비름나물. 생소한 이름의 이 나물은 한해살이풀로 주로 데친 후 무쳐 먹거나 비빔밥에 넣어 먹는다.
이름도 생소한 나물이 내 눈에 들어온 이유는 이 나물을 유독 좋아했던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청와대에 비름나물을 따로 키워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름나물을 좋아한 데엔 과거 기억과 연관이 깊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첫 직업을 군인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 첫 직업은 교사다. 군인은 같이 근무한 동료 교사로부터 ‘성격상 군인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제안을 받고 시작했다.
지금도 논란이 많지만 당시 교사 임금도 많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교사 재직 시절 동료 교사와 같이 방을 썼다.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밭에서 흔하게 자라던 비름나물을 따 와 밥에 비벼 먹었다. 배고픈 시절을 함께 한 비름나물에 대한 기억이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맛은 어떨까. 내 기준서 말하자면 맛없다. 차라리 시금치나 고사리 같은 다른 나물을 밥에 넣어 비벼 먹는게 훨씬 낫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하던 청와대 경호관들도 맛이 궁금해 비름나물을 먹었는데 평이 좋지 않았단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음식 관련 일화가 많다. 많고 많은 얘기 중 빼먹을 수 없는 건 곰탕이다.
박정의 전 대통령은 청와대 부근 식당서 파는 곰탕을 매우 좋아했다. 제주도 출장 당시 곰탕이 먹고 싶다 말해 경호관들이 헬기를 타고 서울서 제주도까지 곰탕을 배달할 정도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얘기도 빼먹을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국내 모 일간지는 독방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한 여성의 얘기를 보도했다. 오늘날로 치자면 르포 기사인 셈이다.
먹은 것이 없어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를 굶길 수밖에 없단 내용을 본 육영수 여사는 소고기와 미역을 챙겨 기사에 나온 여성의 집을 찾아갔다.
기사에 나온 내용대로 허름하고 먹을 것이 없는 집에 들어선 육영수 여사는 경호관에 미역국을 끓일 것을 지시했고 바닥에 누워 있는 여성의 옆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울음을 달랬다.
갑자기 부산스러워진 집 분위기에 놀라 깬 여성은 대통령 영부인이 바로 옆에서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고 육영수 여사는 이 여성을 위로했다.
따뜻한 음식 얘기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빠질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까지만 해도 청와대 셰프들은 주말에도 근무를 해야 했다. 대통령 식사를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셰프도 일요일엔 쉬어야 한다’며 일요일에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식사는 본인이 직접 끓인 라면으로 대신했다. 완성된 라면 위에 계란과 고명을 얹은 옛날식 라면을 일요일마다 직접 끓여 먹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물고기를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쏘가리로 만든 매운탕을 유독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쏘가리 한 마리가 들어간 매운탕을 다 먹고 나서도 아쉬웠는지 청와대 셰프에게 ‘쏘가리 살이 없는데 너희가 다 먹은거 아니지’라며 웃픈 농담을 건넸다.
이명박 전 대통령 얘기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보수 지지자들은 대부분 다 알겠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를 도와 일을 하면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나는 너의 재능이 너무 아깝구나. 인문계 고등학교가 (형편상) 되지 않는다면 장학금이 있는 동지상업고등학교라도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께 이 말을 전했고 그의 어머니는 ‘너가 정말 하고 싶으면 해라. 대신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며 조건부로 고등학교 진학을 허락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지상고 재학 3년간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장학금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가난했던 과거 시절을 얘기하면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청와대 유튜브 채널서 대통령 일상을 공개하는 영상을 찍었을 땐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꿀에 찍은 가래떡’을 꼽았다. 과거 시절 부잣집 아이들이 가래떡에 꿀을 찍어 먹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부러웠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단 이유서다.
음식은 인간의 기운을 회복시키고 북돋아 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기분을 느끼느냐에 따라 하루 일과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너무 맛없는 음식을 원치 않게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과 정말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고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의 기분 차이를 상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물론 비싼 재료가 들어가고 요리를 잘하는 셰프가 만든 음식도 맛있다.
그러나 단순하면서도 바쁜 일상 속 잠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기분에 비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최고 권력에 선 그들마저 청와대서 곰탕과 라면을 찾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