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에 어머니께서 주님 품에 가셨다.
12년간 좌반신 마비로 요양원에서 누워 지내셨던 어머니.
그날 아침 큰언니가 다급하게 전화했던 게 기억난다. 언젠가는 올 소식이었겠지만, 이때일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소식을 듣고 우린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한국을 향했었다.
장례식장에서 언니가 요양원에서 챙겨 온 엄마의 유품이 담긴 작은 쇼핑백. 안에는 양말 한 켤레, 빗 하나. 평소 엄마의 그 욕심 없는 선한 웃음처럼 엄마는 아주 깔끔하게, 아주 단정하게,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재외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터라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1년의 시간을 보내고 겨울방학에 한국에 들어가던 날. 그날따라 눈이 유난히 많이 내려 비행기가 계속 연착되고 있었다. 우리도 대합실 의자에 앉아 거의 4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가방에서 메모장을 펴서 부모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5년 전에 먼저 돌아가셔서, 나의 편지의 수신인은 부모님 두 분 모두이셨다.
편지는 '보고 싶은 부모님께'로 시작하고
....
막내딸 mina (올림)으로 끝났을 것이다.
메모장에 손글씨로 여러 장 휘갈겨 써서 그랬을까?
단단히 챙겨둘 생각을 못해서인지 이때 쓴 <부모님 전상서 1호>의 원본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부터 매 년 1월이면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우리 가족과 함께 읽고, 친정 언니들에게 보내드려 읽어 보시게 했다. 그리고 2호부터는 잘 보관하고 있다.
중국에서 우리 가족이 한 해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애들한테는 어떤 변화와 성장이 있었는지,
올 한 해 어떻게 생활하기 원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부모님께 전해 드렸다.
비록 이 편지가 부모님 전상서이긴 하지만,
간접 수신인들이 있었다.
바로 이 편지를 직접 읽고 듣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가족을 항상 염려해 주시던 형부와 큰언니, 셋째 언니.
2017년부터 매 년 쓴 이 편지는
우리 자녀들에게는, '부모'라는 존재가 자녀들에게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
친정 식구들에겐, 떨어져 있지만 이전 한 해 동안 우리 가족의 생활을 들여다보며 타국에서의 우리의 삶과 접속되는 기회를 드렸던 것 같다.
원본이 소실된 <부모님 전상서 1>은 이 편지의 시작과 배경에 대한 서언으로 대체하고, 내 서랍장 안에 잘 보전되어 있던 두 번째 편지부터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햇빛을 보게 해 주려고 한다.
참고로 남편과 자녀들의 이름은 원본과 다르게 '영어 이름'으로 교체했다. 소중한 이름을 살짝 덮은 채 세상에 내놓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