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나뵈뵈 Oct 23. 2024

해물 누룽지탕

기억의 꼬리를 잡아당겨 보다

가족대화방에 뭔가 담긴 흰 비닐봉지 사진.

사장님께서 누룽지를 만들어주셨어요. 드세요~.

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큰아이의 문자이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보니 양이 꽤 되었다. 간식으로 야금야금 먹어도 다 먹으려면 며칠은 걸릴 것 같았다. 흠, 그렇다면, 아하, 해물누룽지탕! 번뜩 드는 생각이었다. 그래, 해물누룽지탕을 해 먹어 보자. 마침 냉동실에 모둠 해물 사 두었던 것도 있고, 청경채, 양파, 당근, 팽이버섯도 채소박스에 있으니...  

   

나는 요리를 잘하거나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요리에 그렇게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음식은 그냥 내 앞에 차려지면 먹는 대상이었다. 재료나 조리법, 한 끼 밥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부지런한 움직임과 수고가 있는지에 대해 무심했다.


고등학교땐 언니가 해 준 밥에 엄마가 해 다 주신 반찬들로 끼니를 해결했다. 대학 와서 자취생활을 하면서는, 음식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교회 분들의 가정에 초대받아 갔을 때, 차리신 음식을 어떻게 하시는지 보고 들으면서 배운 음식 몇 가지 정도였다.


결혼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내가 만든 음식으로 우리 다섯 사람이 식구(食口)가 된 지 20여 년. 지금껏 우리 식구 중 한 사람도 한테 특별히 해달라고 요청하는 메뉴 없다. 내가 한 음식은 항상 뭔가 2% 부족한 맛이었으므로. 찌개는 늘 국이 되고, 간은 늘 살짝 싱겁고, 국물은 깊은 맛 대신 밍밍했다. 하하.

반면,  '할머니표 김치찌개', '할머니표 닭갈비'는 우리 아이들이 단연 맛을 인정하고 항상 찾는 요리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느낀다. 주부생활 20여 년의 관록으로 어떤 음식이든 대충 흉내 내어 만들 수는 있게 되었으므로. 어제저녁에 만든 ‘해물 누룽지탕’도 그중 한 가지.    

 

평소 때 집에서 한 번도 맘먹고 조리해 보지 않은 음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에서 살 때, 동료샘들과 자주 갔던 한국 식당에서 우리가 좋아했던 메뉴, 그래서 자주 시켜 먹었던 메뉴 중의 하나이다. 대략 굴소스로 간하고, 마지막에 전분물 끼얹어 주면 될 것 같다는 감으로 재료를 꺼내 간단히 완성했다. 국물에 깊은 맛, 전분의 걸쭉함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지만, 누룽지 넣어 따뜻하고 든든하게 한 끼 해결하기에는 충분했다.


저녁 약속 있어 나가려던 큰 아이가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고 바로 숟가락 들어 맛보더니, “음, 괜찮네요.”라고 하였다. "와, 정말 맛있어요!”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만으로도 뿌듯했다. 그렇지? 대충 만들었어도 흉내는 잘 낸 것 같아.

   

'해물 누룽지탕'

누룽지를 보자 이 음식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과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참 거슬러 올라가 보니, 육아휴직하고 집에서 6살, 3살, 2살 된 우리 삼 남매를 돌보던 시절의 기억이 있다. 문화센터에서 ‘요리교실’을 수강했었던 기억. 강사님이 첫 수업에 소개한 요리가 바로 이 ‘해물 누룽지탕’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때가 내가 이 요리를 처음 접했던 때구나...

    

아주 오래전 일들은, 시간과 함께 우리 기억의 창고 깊이 파묻혀 있다가, 작은 촉매제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파헤치거나 계속 더듬어보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 같다.


아... 내가 요리교실을 수강한 적이 있었지. 요리의 기본을 좀 배워두자 하는 마음에 등록했었지. 어린 삼 남매를 데리고 가서, 막내는 업고, 두 형제는 실습실 옆 놀이방에서 놀게 하고 요리를 배웠었지.


나의 식구(食口) 여러분!

나의 요리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성내거나 실망하지 마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려고 노력을 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오.

나의 감각과 열성이 부족함을 인정하오. 그리고 미안하오.

그래도 배가 고플 땐 내가 해 놓은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시오.

서툴러도 여러분의 허기를 채워주기에는 딱 적당할 것이오.

지금까지 나의 요리에 대해 솔직한 평은 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 주어서 고맙소.

더욱더 고마운 것은 나의 식구(食口)가 되어 주어서 고맙소.

앞으로도 서로의 배고픔, 돌아보고 채워주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봅시다!!

 나의 식구(食口) 여러분,  사랑하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