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나뵈뵈 Nov 08. 2024

수업 이야기 2

이 사람은 ____년 뒤 __________이 됩니다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수업, 그 두 번째는 최근에 있었던 미술시간, <사진을 찍어요> 단원을 공부할 때였다. 


이 단원의 도입부에 ‘내가 나온 사진을 보며 재미있었던 추억을 떠올려 보기’ 활동이 다. 우리 반 친구들의 어릴 때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음 미술시간 준비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어릴 적 사진 한 장을 메신저로 보내라고 하였다. 듣자마자 어떤 사진이 떠오르는지, 옆 사람한테 '나는.... 사진 가져와야지.' 하는 말들로 교실이 왁자지껄했다.


아이들이 하교한 뒤, 반 메신저를 통해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이 한 장 한 장 전송되어 왔다.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열 때마다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휴, 예뻐라.
아응, 귀여워! 저 젖살 좀 봐.
어머, 지금이랑 똑같아.
위로 옆으로 좀 늘려 놓기만 하면 현재의 모습이야.
와, 이 사진은 어린데도 성숙해 보인다...


갓 태어나 강보에 단단히 싸여 있는 아기 때 사진부터 6개월쯤 된 얼굴, 돌 전에 보행기 타고 있는 모습, 돌잔치 때 한복 입고 있는 사진, 아이스크림 처음 먹어보며 활짝 웃는 사진, 먹고 싶은 것 못 먹어 속상해 우는 얼굴, 네다섯 살쯤 된 아이가 놀이공원에서 양손에 먹을 것 쥐고 행복해하는 사진, 여름날 공원에서 킥보드 타는 사진, 꽃밭 앞에  앉은 사진, 병원에 앉아 있는 사진, 교회에서 찍은 사진, 제주도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등등...


다음날 미술시간, 이 사진 파일을 하나하나 열어 보여주며 우리 반 친구 누구의 어릴 때 모습인지 맞혀보기를 했다. 단번에 누구라고 맞히는 친구가 있는 반면, 빨리 알아맞히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사진에 대해서는 누구라고 알려주면,

 "으응??? ______라고?"
"그때 저렇게 포동포동했는데, 지금은 왜 말랐니?"
"지금이랑 닮은 친구도 있고, 얼굴을 잘 못 알아보겠는 친구도 있어요."

하는 여러 반응이 있었다.


이어지는 활동으로, 어릴 적 사진을 붙여

<이 사람은 ____년 뒤 __________이 됩니다>를 채워 꾸며보게 하였다.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예언을 하며...


이 사람은 20년 후 변호사가 됩니다.

이 사람은 15년 후 프로게이머가 됩니다.

이 사람은 9년 후 11마리 도마뱀 집사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서울대에 갑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요리사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공학박사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유튜버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화가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골키퍼가 됩니다.

이 사람은 10년 후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됩니다.

이 사람은 29년 후 사업가가 됩니다.

이 사람은 18년 후 축구선수였다가 군대를 갑니다.

이 사람은 25년 후 간호사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게임 유튜버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작가가 됩니다.

이 사람은 11년 후 1이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파티시에가 됩니다.

이 사람은 19년 후 기계 공학과에 다니는 학생이 됩니다.

이 사람은 22년 후 축구선수가 됩니다.

이 사람은 10년 후 성숙한 여자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개그맨이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됩니다.

이 사람은 26년 후 회사를 차립니다.

이 사람은 16년 후 평범한 여자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프로게이머가 됩니다.

이 사람은 20년 후 유치원선생님이 됩니다.

그래, 너희들이 예언한 대로 될 거야.
너희들이 예언한 것보다 더 뛰어나게 될 거야.

나도 우리 친구들의 예언에 긍정적인 예언을 덧붙여본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의 일생이 나에게 오는 것이다.
그가 속한 모든 세계가 함께 오는 것이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과 같이,

2024년 3월, 저 사진 속에 있는 스물여섯 개의 별들이, 그들이 속한 소우주가 나에게 다.

각각의 크기와 색깔과 무게와 특징과 빛지닌 별들이.

나와 함께, 다른 별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들 안에 있는 잠재력이 발현될 기회가 많았길, 마음씀의 너비가 확장되었길, 관계 맺고 소통하는 기술이 조금 더 익숙해졌길 바란다.

부족함이 있다면 이 학년이 끝나기까지 남은 두 달 동안에라도 조금 더 채워지기 바란다.


우리 친구들과 한 이 수업의 결과물을 교실 뒷 게시판에 붙여두었다. 우리 친구들이 누구인지, 내가 그들과 부대끼며 보내는 1년의 시간 동안 얻길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나게 하려고...


자주 잊어버린다. 하루하루 내가 이 별들과 전쟁을 하거나 별들 간에 충돌이 있을 때는...

그럴수록 게시판에 붙여 둔 저 반짝이는 '어린 별들'을 자주 바라보려고 한다.


이번 수업이 나에게  가져다준 '선물'이다.

평범한 수업의 연속 가운데서 이런 '특별한' 선물을 받으니 감사가 차오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