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직장인들이 '월요병'을 앓듯이, 교사인 내가 월요일이면 뭔가 윤활유가 부족하게 느끼듯이, 학생들도 주말 동안 학교라는 틀 밖에서 자유롭게 지냈던 시간에서 돌아와 다시 틀 안의 생활에 자신을 맞추려니 몸과 입이 많이 간질간질한가 보다. 매주 반복되는 일인데 매 번 처음인 것처럼, 교사나 학생이나 조금은 불편한 월요일을 보낸다.
그렇게 삐걱거림이 있는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왠지 찜찜하다. 학생들에 대한 감상도, 함께 웃었던 시간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오늘 나의 맘을 불편하게 했던 친구들이 했던 말, 행동, 태도, 그때의 장면만이 내 마음을 덮는다.
내가 교육을 잘못해서 그러겠지, 나의 교육을 통해 그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변한 게 있을까? 변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나는 담임으로서 학급 경영을 하는 데 부적임자가 아닐까?...
학생들이 떠나고 난 텅 빈 교실에서부터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나서 까지도이런 어두운 생각은 그림자처럼 내 곁에 있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그림자 곁으로 한 줄기 빛이 지나갔다.
내가 우리 반 친구들과 생활하며 흐뭇해했던 장면들... 그것들을 적어보자. 우리 반 친구들의 모습이 내가 지금 찜찜해하는 그 모습만 있는 게 아니잖아...
하나씩 하나씩 적기 시작하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이 점점 밝아졌다. 점점 낮이 되었다.
1. 아침 일찍 와서 친구들의 의자를 다 내려주고, 우유 먹는 친구들 책상 위에 우유를 배달해 주는 너
2. 친구와 함께 아침활동으로 읽을 책을 나눠주고, 쓰기 공책을 나눠주는 너
3. 선생님을 어려워하여 조심조심 다가오지만, 준비물실 다녀오는 임무를 즐거이 수행하는 너
4. 아침 일찍 등교해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교실로 오고, 쉬는 시간•중간놀이 시간•점심시간 등, 틈나는 대로 책을 보거나 빌리러 가는 너
5. 친구를 도서관에 데려가 책 읽는 맛을 알게 도와준 너
6. 교실에서 키우는 식물에 매일 물을 주고, 식물의 자람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너
7. 게시판에 붙은 작품을 훑어보면서 도란도란 친구와 얘기 나누는 너
8. 교실 바닥에 앉아 바둑판을 펼쳐 놓고 오목이나 바둑을 두는 너, 체스판을 펴서 친구와 체스 대결하는 너
9. 등교하는 친구마다 '안녕!' '안녕!',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너
10. 자리에서 일어나 교탁 가까이 와서 '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보건실 다녀와도 돼요?'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 너
11. 청소 모둠이 되면 쓰레기통을 들고 신나게 쓰레기장으로 달려가는 너
12. 발표의 기회가 오면 늘 손을 번쩍 드는 너
13. 반에서 가장 개성이 강하고, 소리를 많이 내는 아이와 친구인 너
14. 항상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고 선생님 편에 서 주는 너
15. 점심 먹고 학교 한 바퀴를 돌 때면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따라오는 너
16. 급식줄 차례, 모둠 내 차례, 하교 시 나가는 차례 등 우리가 차례로 정해놓은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오차를 허락하지 않으려고 열변하는 너
17. 심부름할 일이 있을 때 '저요! 저요!' 하며 달려오는 너
18. 투덕 투덕하고 있을 때 불러서 자초지종을 말하게 하면 누가 어디서부터 잘못했는지 깨닫고 사과하는 너
19. 아끼는 물통에 스크래치가 생겨서, 정성 들여 만든 작품이 망가져서 속상해 울고 있는 친구에게 가까이 가서 위로해 주고 네 것을 하나 건네는 너
20. 수업 중에 코피가 나 휴지가 필요한 친구를 위해 얼른 달려가 사물함에서 꺼내 가져다주는 너
21. 발야구할 때, 같은 팀 친구에게 공을 차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는 너
22. 기발한 기획과 실감 나는 연기로 재미있는 역할극을 만들어 웃음을 선사하는 너
23. 만들기와 그리기를 좋아해 미술시간을 기다리는 너
24. 자존심 때문에 오랫동안 절교 상태로 지내다가 불편한 마음,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네 마음을 잘 읽어내어 그 친구와 관계를 회복한 너
25. 대학노트 같은 두꺼운 공책에 오늘 배운 내용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는 너
26. 선생님의 시골집 이야기, 초등학교 시절에전학 간 오랜 친구이야기를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너
27. 낯선 학교, 낯선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하게 지내다가 점점 너만의 매력을 발산하여 너와 맞는 친구들 사이에서 밝게 웃는 너
28. 더운 여름날, 수박주스를 만들기 위해 조용하지만 힘차게 돌아가던 고급 블렌더를 숨죽여 지켜보던 너
29. 여름 방학식 날, '한 학기 동안 너희들과 즐거웠고 가끔 욕을 써서 미안해'라고 말했던 너
30. 회색 은빛 물결무늬가 있는 난타 의상에 두건을 질끈 매고, '태권 무희'라는 곡에 맞춰 열정적인 춤사위를보여준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