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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뵈뵈 11시간전

짧지만 특별한 만남

- 스승부터 제자까지

3월부터 아침 출근길에 잠깐씩 만나 오늘 일과나 일상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누던 두 교사가 12월에 자신의 제자들에게 '짧지만 특별한' 만남을 경험하게 해 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현재 근무하는 곳은 개교한 지 50년이나 된 서울의 한 초등학교이다. 학교 규모는 700명 조금 못 되는 수의 학생들, 32개 학급, 80명 조금 못 되는 수의 교직원, 5년 전에 개원한 병설유치원에 세 개 반과 유치원 교직원 10명 이내 정도이다.


한 해 190일을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얘기를 한 번도 나눠보지 못한 분이 몇 있다는 것은 이상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담임교사로서 아침에 출근해서 학생들 하교하기까지 계속 교실에 있다가 그 이후 시간엔 맡은 업무를 처리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다가 개별적으로 퇴근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가끔 두 번 있는 전교직원 협의 시간에 얼굴은 보지만, 업무로 관련되어 있거나 동학년이 아니면 개인적으로 대화 나눌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 수의 범위를 헤아려 본다면 우리 반 아이들 수(26)+동학년 교사 수(4)+가끔 업무 관련하여 대하는 교사(6) 몇 사람 정도라 하겠다.




3월에 유치원 7세 반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출근길 마을버스 안에서이다. 지하철 역 정류장에서 탄 선생님이 학교 앞 정류장에서 같이 내리자 서로 첫인사를 나눈 이래로, 출근길에 만날 때면 교문을 통과해 운동장 주변을 지나 각자의 교실이 있는 건물까지 걸어가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눴었다. 함께 걷는 시간이 10분쯤 되었을까?


190일 동안 선생님을 매일 만난 건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좀 빨리 마치면 선생님을 못 마주치고, 몇 분 늦게 타면 선생님과 마주치곤 했다. 3월부터 12월까지 두 사람은 그때그때  날씨 얘기, 서로의 자녀 얘기, 오늘 있는 행사 얘기,

서로의 제자들 얘기, 마을버스 안에서 관찰한 일에 관한 얘기 등등 깊은 내면을 나누는 대화는 아니지만 서로의 하루를 응원해 주는 유쾌한 인사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그 짧은 시간을 보냈다. 그 짧은 시간들이 쌓여가는 동안, 필요가 있는 어느 시점에 딱 맞춰 서로를 도와줄 수 있는 관계도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혹시 유치원에 블렌더 있어요? 애들과 수박주스를 만들어 먹으려고 하는데... 실과실에는 없더라고요. "

1학기가 끝나가던 7월 초의 어느 아침, 출근길에 만난 선생님에게 물었다.

"있을 것 같아요.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해요 ~."


며칠 후 선생님이 깨끗이 씻어 준비해 둔, 통이 두꺼운 유리 재질로 되어 있고 용량이 상당이 큰 고급 블렌더를 빌려왔다. 전 시간에 체육하고 나서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들에게 얼음 넣어 갈아 시원함이 더한 수박주스를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유치원 졸업식은 언제예요?"

"12월 27일이에요. "

"선생님, 졸업할 저희 아이들이 초등학교 생활에 대해 궁금한 것을 형님들에게 물어볼 수 있는 수업을 12월 중에 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선생님 반 아이들에게 부탁을 해도 될까요?"

첫눈이 폭설이었던 11월 말의 어느 아침, 출근길에 선생님이 물었다.

"네, 좋아요. 언제 할지는 12월 진도 나가는 상황 보고 정해요."

"와, 감사합니다 ~~."


그리하여 12월 18일 수요일 11시. 곧 유치원을 졸업하고 예비 초등 1학년이 될 아우들과 초등 4학년 우리 반 형님들의 만남의 약속 시간이 정해졌다.




전 날인 12월 17일 화요일, 하교 전에 내일의 일정을 칠판에 적는 데 3교시 <유치원 졸업생과의 만남>이라고 적었더니 이것을 본 친구들이 즉시 관심 폭발!!


- 선생님, 저게 뭐예요?

- 저희가 유치원으로 가는 거예요?

- 선생님, 저 병설유치원 1회 졸업생이에요.

- 저도요!


- 유치원 친구들이 우리 반으로 와서 초등학교 교실도 구경하고, 궁금한 것도 적어와서 물어볼 거예요. 모두 13명이래요. 여러분 짝꿍이랑 유치원 친구 한 명씩 짝지어 줄 테니 친절하게 설명해 주세요.

- 네!! 와!! (웅성웅성)




12월 17일 수요일 11시.  조금은 긴장한 듯 수줍은 표정의 꼬마 친구들이 우리 교실에 들어왔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이번 수업의 취지와 형님들이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을 간단히 설명하신 후, 본격적인 '멘토링'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형님이 된 우리 반 친구들이 연신 웃으면서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아우들에게 얼마나 열심히 설명을 해 주던지!!


마무리로 유치원 친구들이 준비해 온 고운 노래 한 곡을 듣고, 유치원 선생님께서 고맙다고 준비하신 간식 선물도 받았다. 나도 손주 가는 길에 사탕 하나 손에 쥐어주는 할머니처럼 꼬마 친구들에게 비타민 젤리를 나눠 주고 헤어졌다.


25분간의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다. 어떤 친구는 미리 선물을 준비해 와 오늘 만난 아우에게 선물을 건넸고, 어떤 친구는 종이 접기로 접은 눈사람을 본인의 작품에서 떼내어 주었고, 어떤 친구는 오늘 만난 아우에 대한 사랑이 벌써 흘러넘쳐 쪽지 편지를 써서 전하고 싶다며 점심시간을 틈 타 건네고 왔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평소 때는 볼 수 없었던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짧지만 특별했던 만남!!


스승인 유치원 선생님과 나와의 만남이 그러했고,

제자인 유치원 7세 반 친구들과 우리 반 아이들의 만남이 그러했다.

일종의 유•초등 간 교류 수업이었던 이번 만남의 시간을 마치고 나서 몇 가지 깨달음이 있다.


 만남의 시간이 짧다고 해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것은 짧은 시간 동안에도 가능하다.

 짧은 만남에도 서로를 진솔하게 대하면 내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특별하고 따뜻한 경험을 선물해 줄 수 있다.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의미 있는 작은 만남은 그곳이 외로운 곳이 아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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