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장애와 신경다양성 (3)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다양할까? 자폐인의 다양성은 흔히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당신이 한 명의 자폐인을 만났다면 당신은 수많은 자폐인 중 단 한 명의 자폐인을 만난 것이다.”
신경정형인들을 단 하나의 특성으로 정의할 수 없는 만큼 자폐인들의 특성도 매우 다양하다. 자폐인은 말을 못 할 수도 있지만 말을 잘할 수도 있으며, 외향적일 수도 있지만 내향적일 수도 있다. 친사회적일 수도 있지만 반사회적일 수도 있으며, 천재일 수도 있지만 지적장애일 수도 있다. 그리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자립을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자폐인들이 가진 단 하나의 공통점은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 이외의 증상은 너무나도 다양하여 진단명에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런데, 이 “자폐”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정말 굉장하다. 스스로 자(自) 닫을 폐(閉), 스스로 닫는 사람이라니! 자폐라는 진단명을 들을 때마다 내 아이는 그 누구보다 열려있는 아이인데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진단명을 받아야 하는지 매번 이해가 가지 않았고 지금도 그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진다. 그래서 나는 한때 아이의 탈 “자폐”를 꿈꾸며 정말 치열하게 재활치료를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꼭 자폐가 없어져야지만 일상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폐가 있어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평범한 삶을 공유하는 성인 자폐인들도 있었고 내가 운영하는 마이레인보우베이비 채널에도 자폐가 있지만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한 가족이나 지인의 경험담을 공유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자폐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담을 메시지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이제 앨리스의 탈자폐를 꿈꾸지 않는다. 자폐는 치료법이 있는 질병이 아니라 신경발달장애이다. 앨리스가 가지고 있는 청각장애처럼 자폐스펙트럼장애도 앨리스가 삶을 살아가는데 엄청난 불편감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앨리스는 그 불편함과 함께 일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부모로서 나는 아이의 불편함을 제거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줄 수는 있다. 내가 앨리스에게 매일 보청기를 끼워주며 아이가 세상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아이가 자폐를 가지고도 행복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회적 기술을 가르쳐 줄 수는 있다. 평생의 여정이 되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나는 이제 자폐는 앨리스가 가진 고유 특성 중의 하나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앨리스가 신경정형인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이의 타고난 뇌가 그런 것이므로 신경정형인들과 똑같이 바꿀 수 있는 방법도, 바꿔야 할 이유도 없다.
아마 앨리스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성상 앞으로도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친한 친구가 계속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스스로 정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자폐 여부는 이제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신경정형인들조차 그런 성취를 맛보기는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