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장애와 신경다양성 (2)
세 가지 진단명, 똑같은 아이
앨리스는 지금까지 전문가들로부터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소견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진단 검사를 통해 확정적으로 받은 진단은 자폐스펙트럼장애다.) 그렇다면 이 세 진단명에는 유의미한 차이점이 있을까?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고 방송에서 밝힌 테슬라의 CEO, 일론머스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진단명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일론머스크처럼 특이하지만 머리가 좋은 괴짜 천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진단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은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 2013년에 개정된 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정신 장애 진단 분류 체계) 5판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스펙트럼장애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DSM-4판을 기준으로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 특징>
▶요약
-언어, 인지 기능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자폐증
▶필수증상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심하고 지속적인 장해와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관심사 및 행동을 보임
▶자폐성 장애와 다른 점
-임상적으로 심각한 언어발달의 지연은 없다.
-소아기에 나이에 맞는 인지 발달, 자기 보호 기술 및 적응 행동 발달, 환경에 대한 호기심의 발달 (임상적으로 심각한 발달지연은 없다.)
▶남성에게 흔하다.
따라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간단히 말하자면 자폐 증상이 있는 사람 중에서 언어와 인지 기능에 심각한 지연이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아스퍼거 하면 떠올리는 괴짜 천재의 이미지는 실제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앨리스는 아스퍼거 증후군일까?
앨리스는 생후 17개월까지 무발화였으며, 16개월에 실시한 언어검사에서 1 퍼센타일(% ile)이라는 결과를 받았을 정도로 언어지연이 심각했다. 하지만 14개월에 보청기를 착용하고 15개월부터 주 4회 언어치료를 시작한 이후 24개월부터 언어검사 상 언어지연의 폭이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후 생후 30개월에는 언어검사에서 80 퍼센타일(% ile)의 결과를 받으며 또래 수준을 완전히 따라잡았다. 인지기능의 경우 만 2세 때 실시했던 카우프만 지능검사에서 3 퍼센타일(% ile)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만 3세에 실시했던 윕시 지능검사에서는 92 퍼센타일(% ile)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따라서 24개월 이전의 앨리스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기준에 맞지 않지만, 만 3세 이후의 앨리스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언어 기능과 인지 기능의 지연이 없음).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Social communication Disorder)
사회적 의사소통장애는 아스퍼거 증후군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진단명은 아니다. 그래도 채널A TV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의 열정적인 시청자라면 자연스럽게 접해봤을 가능성이 크다. 나 또한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사회적 의사소통장애라는 진단명을 처음 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는 지금까지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아이들이 꽤 많이 출연했는데 그중에서 아직까지도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한 아이가 있다. 귀여운 인상을 가진 남자아이였는데 한번 화가 나기 시작하면 무서운 동물로 변신하여 리얼한 동물 소리로 엄마를 위협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상황과 이유가 앨리스와 완전히 동일하여 너무나도 놀랐었다. (당시 앨리스는 진단을 받기 전이었다.) 앨리스도 본인의 욕구가 좌절되면 무서운 동물로 변신해서 나를 위협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만 5세인 현재는 그런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자기 위주의 일방적인 소통을 하는 것도 아주 비슷했다.
이처럼 사회적 의사소통장애의 증상은 자폐스펙트럼의 증상과 거의 다를 바가 없고 실제로 방송에서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은 사회적 의사소통장애가 자폐의 연장선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DSM-5에 나오는 사회적 의사소통장애의 특징은 무엇일까.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특징>
▶요약: 언어적 및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사회적인 사용에 있어서 지속적인 어려움이 있고 다음과 같은 양상이 모두 나타난다.
-사회적 맥락에 적절한 방법으로 사회적 목적의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의 결함
-맥락이나 듣는 사람의 욕구에 맞추어 의사소통 방법을 바꾸는 능력에 손상
-대화를 주고받는 규칙을 따르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
-언어의 비문자적 혹은 애매모호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
자폐성 장애와 다른 점
DSM-5에서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의 특징을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정의한다.
1.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음
2.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
사회적 의사소통장애는 자폐스펙트럼장애와 같이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으나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은 보이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그리고 지능지수는 평균 지능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경우에도 적응능력이 향상되면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 당사자가 아니라면 사회적 의사소통장애와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구분은 굉장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앨리스는 사회적 의사소통장애일까?
앨리스는 31개월에 사회적 의사소통장애라는 가진단을 받았다. 자폐라기에는 눈 맞춤과 상호작용이 비교적 좋았고 병원 진료실이라는 공간에서 제한적 관심이나 반복적인 행동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앨리스는 고작 몇 개월 후 자폐진단검사(Cars 및 Aods)를 통해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자는 아이의 눈 맞춤, 상호작용, 제한적 관심이나 반복적 행동의 질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에 부합한다고 했다. 검사자가 진료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보이는 아이의 모습뿐만 아니라 아이가 과거에 가정에서 보인 행동을 모두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같은 아이를 보면서도 상황에 따라 누군가는 아이에게 제한적 관심이나 반복적 행동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유능한 임상심리사의 보호자 면담이 매우 중요하다.
자폐스펙트럼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
DSM-5에서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의 특징을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정의한다.
1.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음
2.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
이 중에서도 고기능 자폐는 평균지능(85~) 이상의 지능을 가진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 그 자체가 진단명인 것은 아니다.
서번트 증후군은 고기능 자폐와 어떻게 다를까?
간혹 고기능 자폐를 서번트 증후군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르다. 이는 "고기능"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나타나는 혼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기능 자폐는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진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리키는 용어로써 고기능(高技能)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반면 서번트 증후군은 지능지수와의 연관이 없다. 서번트 증후군이란 뇌에 장애가 있는 사람 중에서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을 의미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처럼 지능이 높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지적장애를 동반한다.
앨리스는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일까?
앨리스는 K-Cars와 ADOS-2 검사를 각각 두 번씩 받았고 모든 검사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기준에 부합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지능검사는 모두 4번 받았는데 두 돌 때 했던 검사를 제외하면 모두 평균지능 이상이었다. 따라서 앨리스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고기능 자폐에 해당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기능 자폐는 공식적인 진단명이 아니다. 하지만 앨리스의 진료기록에는 HF(High Functional:고기능)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의사들이 진료 중에 아이의 지능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한다. 따라서 지능지수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분류하는 큰 기준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론
아스퍼거 증후군,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이름은 달라도 모두 장애 당사자가 사회생활을 하며 겪게 될 근본적인 어려움은 동일하다. 다시 말해,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어려움으로 따지자면 이 세 진단명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진단 중 하나에 해당한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에 준하여 치료적 중재를 시작해야 한다.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선별 도구 ASSQ (Autism Spectrum Screening Questionnaire)
자폐스펙트럼장애 선별 도구 중에서 지능이 높거나 평균이면서 상호작용의 어려움이 경미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을 선별하는 검사가 있다. 바로 ASSQ 검사다. ASSQ는 만 6세 이상인 학령기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이며 부모가 하는 경우 11점, 교사나 치료사가 하는 경우는 13점을 넘기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ASSQ 검사는 다음 포스팅에서 직접 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