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장애와 신경다양성 (1)
너무나도 비슷해 보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나는 한때 앨리스가 ADHD가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앨리스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산만했다. 자유롭게 기어 다니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단 1초도 가만히 있지 못했고 손에 잡히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끄집어내고 집어던지기 바빴다. 만 5세가 된 지금은 다행히도 물건을 집어던지지는 않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주변을 탐색하는 모습은 아기 때와 똑같다. 앨리스처럼 많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이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증상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자폐스펙트럼 아이들도 ADHD 아이들만큼 산만하다는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자폐는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 밖에도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문제, 감각처리 문제, 정서적 미성숙 문제 등의 공통점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산만함은 ADHD 아이의 산만함과 어떻게 다를까? 사실 산만한 증상만으로는 자폐와 ADHD를 구분하기 어렵다. 앨리스의 경우 48개월에 서울대에서 실시한 ADHD 평정척도검사(ARS)에서 컷오프 19점을 훨씬 초과하는 45점의 점수를 받았다. 검사를 실시한 임상심리사는 아이의 사회성의 어려움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함보다는 충동 조절의 어려움에서 기인한 것 같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앨리스가 따로 자폐진단검사(CARS나 ADOS)를 받지 않았다면 전문가들 조차 앨리스의 산만한 증상이 ADHD 때문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아이가 산만하면 보통 ADHD의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ADHD라는 진단명이 더 익숙하기도 하고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명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똑같이 산만하더라도 그 이유가 ADHD 때문인지 혹은 자폐스펙트럼 때문인지 아니면 ADHD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는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원인이 다르고, 근본적인 어려움도 다르며, 처방하는 약도 다르기 때문이다.
앨리스의 경우 과잉행동과 주의력 부족을 모두 갖고 있으며 독서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오랜 시간 동안 초집중할 수도 있는 전형적인 ADHD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나는 당연히 앨리스가 ADHD를 동반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소견을 가진 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국내 최고 자폐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모 교수가 앨리스의 산만함은 ADHD가 아닌 자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갈릴만큼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 그리고 ADHD를 동반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 구분하기
그렇다면 나와 같은 평범한 양육자들은 아이의 산만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까? 자폐스펙트럼장애를 동반하지 않은 ADHD와 ADHD를 동반하지 않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실 세심한 관찰만으로도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하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기준인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이 아이에게 관찰된 적이 전혀 없고 아이의 “사회적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의 수준이 또래의 수준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동반하지 않은 ADHD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최종 진단은 병원에서 받는 것이다.)
그러나 ADHD를 동반하지 않는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를 동반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는 관찰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진단하는 의사의 마음에 따라 아이의 산만함의 원인을 ADHD에 둘 수도 있고 혹은 자폐에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ADHD검사와 자폐스펙트럼진단검사를 각각 받아 보아야 한다. 또한 단 한 명의 소아정신과 의사의 의견에 의존하기보다는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의사와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두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최종적인 판단은 양육자가 내리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진료를 봤던 국내 최고 자폐 권위자 교수의 의견을 신뢰하기로 하고 앨리스의 ADHD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ADHD 검사
ADHD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종합주의력검사(CAT)를 받아야 하지만 그전에 가정에서 간단하게 ADHD 여부를 체크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앨리스가 서울대에서 실시했던 ADHD 평정척도(ARS) 검사를 해보는 것이다. ARS는 가정에서도 쉽게 실시할 수 있는 ADHD 선별 검사다. 검사 결과 자체가 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임상적 분할점수인 19점을 넘는 점수를 받았다면 의사의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의사가 후속 검사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경우에 종합주의력검사(CAT) 검사를 받으면 된다. 검사 결과에 따라 약물을 처방받거나 각종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ADHD 평정척도(ARS)는 다음 포스팅에 방문하면 직접 해볼 수 있다.
https://blog.naver.com/myrainbowbaby/223229301273)
다만, ADHD 진단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소아정신과에서 검사를 하자. 발달지연아이 맘카페를 살펴보면 아이의 ADHD 여부를 알기 위해 소아정신과 대신 발달센터에 가서 상담하겠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센터는 기본적으로 치료 수업을 파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검사 결과가 나와도 자신들이 판매하는 수업을 한 번 들어보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확한 진단을 받으려면 반드시 소아정신과에 방문하여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산만한 아이가 스스로 하루 일과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
산만한 증상이 있는 아이는 간단한 하루 일과를 실행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다. 작은 일도 수행하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양육자가 하루 일과를 최대한 잘게 쪼개어 아이가 각각의 단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좋다. (시각적인 자료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어 다음 활동이 무엇인지 바로바로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작은 단계들을 수행할 때마다 일일이 칭찬해 준다. 이렇게 작은 단계를 수행하고 칭찬을 받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 각각의 단계가 몸에 배어 하나의 완전한 루틴이 된다. 루틴 하나를 정착시키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잘 정착된 루틴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잔소리를 구구절절 길게 하지 않고 지시는 필요한 때에만 명확하고 짧게 해야 한다. 두 번 이상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계속 지시를 듣지 않는 경우에는 더 이상 말로 요청하지 않고 아이의 손을 잡아서 아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게 만든다. 부부 두 사람의 양육방식이 일치해야 효과가 높아지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서로 합의한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잔소리를 여러 번 하게 되면 지시의 효과가 떨어진다.)
결론적으로 산만함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았을 때 자폐스펙트럼 아이와 ADHD 아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아이의 정확한 중재 방향을 설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장애인지 ADHD인지 혹은 ADHD를 동반한 자폐스펙트럼장애(ASD+ADHD)인지 여부는 진단 검사와 2인 이상의 전문의 상담을 통해 정확하게 체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