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알겠습니다.
직장인이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네, 알겠습니다.’일 것이다. 듣거나 봐서 이해했다 정도로 해석이 될 수 있지만 좀 더 나의 개인적인 분석을 덧붙여 본다.
l 지금 나는 보고/들어서 대화의 내용과 요청 사항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만일 그 내용에 충분히 동의하고 이해한 경우와 동의하지 않지만 알아는 들었다의 의미로 다음과 같이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긍정의 의미로 알/겠/습/니/다/의 단어 하나하나가 명확하게 그리고 하향식의 억양으로 발음하게 된다. 반대로 후자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형식상의 반응, 직장인이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와 버리는, 알겠습니다는 평이한 억양으로 단어를 조금 더 빠르게 발화하는 경우다. 마음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라고 외쳐 보고 싶지만 비록 힘없는 응대라 해도 최소한 직장인의 예의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l 그다음의 업무 진척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명령을 어서 내려 달라고 촉구하는 반응형 멘트이다
인식의 단계와 상호 동의를 뛰어넘어 함께 어떤 일을 착수하려는 적극적인 수용의 태세를 보여 주는 단계다.
l 분명 “네, 알겠습니다.”는 긍정어이지만 부드러운 거절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말한 사람이 무미건조한 억양인지 아니면 너무 친절한 어조인지 가늠해 보고 YES로 받아들이기보단 다시 한 번 알아들은 내용이 무엇인지 재차 확인하여 상대방의 진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육하원칙(Who, What, When, Where, Why) 중 하나에 대입한 질문을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하나요?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나요? 언제쯤 알 수 있나요? 어디서 진행되는지요? 또는 어디서 확인 가능한가요? 왜 한다고 생각하세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l 이제 대화를 끝마치자는 의미에서 아주 잘 알아들었고, 나는 또 다른 일을 해야만 하니 나를 놓아 달라는 심리적 압박감을 부담 없이 전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주로 대화를 마무리 짓겠다는 확인용으로 사용된다.
직장인의 ‘네, 알겠습니다’는 이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일상 용어이지만 상황과 상대방의 어조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코 쉽지만은 않다.
위와 같은 ‘알겠습니다’의 직장인 쓰임새와 더불어 나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착각을 말하고 싶다. 1부터 10까지의 자연수를 말했는데 상대방은 그것을 1, 3, 5, 7, 9의 홀수만을 또는 2, 4, 6, 8, 10의 짝수만을 가려 듣고 10까지의 모든 숫자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소통의 문제를 종종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알고 있다’의 개인차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치를 총동원하여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달라짐을 말한다. 영단어 “ I see”에서와 같이 이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해석과 공감 등을 통해 이해한다는 뉘앙스를 품은 것이다. 즉 see를 눈으로 보는 것, 무의식적으로 봐서 알게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 본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차용해 본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사물을 바라보고 앎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자세히 보려는 그리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