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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 Max ‘Lost Your Faith’

by 참지않긔





Ava Max의 ‘Lost Your Faith’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오래 닫혀 있던 방에 들어선 기분이었습니다.

조명이 켜져 있지 않아 사물들이 윤곽만 보이고 먼지가 천천히 빛 속에서 맴도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첫 음은 노래라기보다 낮게 깔린 숨결에 가깝죠.

귀를 기울이면 멀리서 문이 닫히는 소리나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배경에 묻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운드는 한쪽 스피커에 기울어 있다가 몇 마디 뒤에야 균형을 잡으며 방 안 구석구석으로 번져 갑니다.



눈을 감으면 잔해 위에 서 있는 발목이 보입니다.

흙과 깨진 유리가 뒤섞인 땅, 그 사이로 가느다란 풀잎이 돋아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데 비 냄새와 금속성 기운이 섞여 있어 계절을 단정할 수 없습니다.

Ava Max의 목소리는 그 바람과 닮아 있습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러나 오래 머물러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온도.



악기들이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들어옵니다.

베이스는 지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심장 소리처럼 두텁고 드럼은 나무 문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울림입니다.

프리코러스에선 하이햇이 촘촘해지고 신스 패드가 얇은 빛줄기처럼 천천히 기어올라 방 안에 길게 드리워집니다.

그런데 이 곡은 악기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여백이 또렷해집니다.

그 여백이 음악을 숨 쉬게 합니다.



후렴에 이르면 문이 열립니다.

Ava Max 특유의 직선적인 멜로디가 쏟아져 나오지만 이번엔 칼날처럼 날카롭지 않습니다.

부드럽게 굽은 선이 절망의 경계선을 따라 흐릅니다.

‘포기하지 마’라는 직설은 없습니다.

대신 폐허를 한 바퀴 돌게 하고 여전히 서 있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어딘가 잔해 속에서 네가 아직 서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 한 줄은 팝 음악에서 보기 드문 힘을 뺀 위로입니다.



보컬의 고음도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벽의 작은 금이 서서히 넓어지며 빛이 스며드는 것처럼 감정이 조심스럽게 풀려나옵니다.

그 빛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고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덜 무너져 있습니다.

완벽하게 닦인 보석이 아니라 살짝 거친 유리잔에 비친 빛 같은 질감입니다.

마지막 코러스에선 얇은 애드리브가 한 옥타브 위로 스치듯 지나가고 곡은 천천히 손을 놓습니다.



노래가 끝날 무렵, 방 안은 여전히 어둡지만 공기 속에 변화가 있습니다.

그건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흘러나온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되찾지 않았지만 완전히 잃지도 않은 상태.

잔해 속에서 여전히 서 있는 사람처럼.



그래서 ‘Lost Your Faith’는 이상하게도 곡이 끝난 뒤가 시작처럼 느껴집니다.

여백 속으로 각자의 잔해와 기억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Ava Max가 말했던 그 사실을 깨닫게 되죠.

“네가 아직 서 있다는 것.”

거창한 격려가 아니라 아주 작은 사실의 확인.

그런데 그 작은 사실이 의외로 오래 마음을 붙잡습니다.

Ava Max의 ‘Lost Your Faith’는 그렇게, 소리가 멎은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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