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나는 에드벨룬을 탔다.
밧줄은 오래된 운동화 끈처럼 희미하게 닳아 있었고 손바닥에 까슬한 감촉이 남았다.
불빛도 소음도 없이 바람만이 등을 떠밀어 올렸다.
아파트들은 종이 모형처럼 눕고 베란다에 걸린 셔츠들이 흔들리다 어느 순간 뚝 멎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줄어들어 신호등 옆에서 깜빡이는 초록빛만 남았다.
두둥실.
그때 나는 숨을 길게 들이켰지만 이미 내 몸은 내가 아닌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어제의 말들은 모두 힘을 잃었다.
아니, 내가 먼저 놓아버린 건지도 몰랐다.
칼끝 같던 문장들이 무너져내리며 빛만 남았다.
그러나 그 빛도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주머니가 바람에 뒤집히듯 금세 꺼졌다.
입술을 깨물었는데 아무 맛도 없었다.
그 무맛이 이상하게도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새벽에 눈을 뜨니 천장은 낡은 벽지처럼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영수증이 한쪽 모서리에 걸려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매달려 있었다.
컵 속의 물은 반쯤 남아 형광등 불빛을 탁하게 품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지만 그 순간 꿈은 사라졌다.
남은 건 아주 얇은 고도, 몸이 아니라 마음의 높이였다.
부엌으로 나가 주전자를 올렸다.
물이 끓기 전 창문 틈에서 오래된 윤활유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 냄새가 뜻밖에 안심이 되었다.
물이 끓는 동안 휴대폰 화면을 켰다가 껐다.
답장을 쓰려다 지우고 다시 켰다가 껐다.
사실은 애초에 답장이 필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화면 불빛이 천장에 부서져 흩날렸다.
저녁 무렵, 유리창마다 다른 빛이 걸렸다.
어떤 창은 붉게 달아올랐고 어떤 창은 벌써 푸르게 식어 있었다.
같은 하늘인데 왜 이렇게 다른가.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 차이가 결국 우리를 이어주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억지였다.
그러나 억지를 붙잡지 않으면 오늘을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밤이 오자 영수증 뒷면에 몇 줄을 적었다.
글씨는 비뚤어져 내가 쓴 것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종이를 접어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먼지가 묻어나 손끝이 까슬거렸다.
눈을 감자 장난감만 한 에드벨룬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림자도 소리도 없었다.
그저 공중에 매달린 하나의 점, 붙잡을 수 없는 크기.
내일 아침, 세상은 나를 다시 아래로 끌어내릴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잠깐, 그 점 안에 머무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틈새로 바람이 먼저 들어올지 아니면 침묵이 먼저 스며들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힘들지만은 않았던 기억들이 먼저 몸을 낮출 것이다.
누구도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식으로.
그다음은 알 수 없다.
충분할 수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둘은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믿음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쪽의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