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영화
작년 9월 조용한 글 한 줄이 제게 도착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확정."
그 흔한 기사도 아니었고 화려한 홍보물도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문장이 가볍지 않게 내 안에 자리잡았습니다.
‘병구, 물파스, 외계인, 지하실, 그리고—
“엄마... 이제 지구는 누가 지켜...”’
그 존재들이 다시 꿈틀거리는 느낌이었죠.
그 이후 잠잠했지만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그 리메이크 작품의 시사회가 있었고
동시에 유튜브를 통해티저가 공개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티저에는 고무장갑과 피 묻은 이태리 타올
불안한 눈빛을 한 남자가 잠깐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장면 자체가 20년 전 저의 기억을 깨워주었어요.
바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였습니다.
2003년 개봉 당시 저는 이 영화를 거절했어요.
포스터 때문이었죠.
붉은 배경, 외계인 가면, 고무장갑
B급스럽고 유치한 감성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멸망한 SF 코미디’처럼 보였어요.
그럴 리 없었는데 그렇게 판단했죠.
그리고 한참 뒤 DVD로 봤을 때
저는 깊이, 깊은 곳에서부터 무릎을 쳤어요.
이 영화는 단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현실의 고통과 상상력의 고결함이 맞부딪히며 완성된
한국 영화사에 새겨야 할 비극적 걸작이었어요.
병구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파란 고무장갑을 끼고 실험을 하고
논리 같지 않은 이야기를당당하게 내뱉는
어떤 위험한 독백자처럼 보이죠.
그러나 그 이면에는
끝없이 갉아 먹는 상처와 불안
그리고 세상에 보내는 절박한 구조 요청이 숨어 있어요.
병구는 외롭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는 병원에 누워 계시죠.
그에게는 학창 시절 동창을 칼로 찔러 교도소에 다녀온 과거도 있습니다.
그는 ‘정상인’ 세계에서 완전히 분리된 존재였어요.
그래서 그는 신념 하나에 자신을 묶죠.
“외계인이 인간을 파괴하기 위해 지구에 왔다.”
그리고 그 외계인은 누구보다 ‘강사장’이었다는 겁니다.
그다음부터는 전환의 연속이에요.
병구는 강사장을 납치해서 지하 실험실로 데리고 가죠.
머리를 밀고, 물파스를 바르고
심지어 손에 못을 박아버립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고문’이었다기보다
“조사”라고 믿고 있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그에게 그것은
“외계인의 통신 기능을 무력화하는 과학적 탐구”였거든요.
그의 맹목 같아 보이는 망상은
그 안에 깃든 진지함으로 인해
관객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이게 망상일까, 신념일까?”
그리고 그 옆에 ‘순이’라는 인물이 있어요.
그 누구보다 병구를 외면하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그의 곁을 남아 있는 사람.
그 존재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병구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따스한 증거처럼 느껴져요.
시간이 흐르고, 경찰이 다가옵니다.
강사장은 병구의 비밀 노트를 발견하죠.
그 안에는 외계인에 대한 관찰 기록, 사진, 분석…
그걸 본 강사장의 표정이 약간씩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혹시 내가 외계인일 수도 있을까?”
정말… 현실과 환상 사이가 무너지는 순간이에요.
더 충격적인 것은
병구가 실험한 인물이 대부분
그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란 겁니다.
그리고 강사장 역시 그 안에 있었고
사랑했던 여인의 사고 때문에 원한을 품게 됐다는 사실.
이 사실이 병구를
‘단순한 광인’이 아닌
슬픔과 분노, 고독과 책임에 사로잡힌
‘인간’으로 만들죠.
병구의 일기장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습니다.
외계인이 파충류 실험을 잘못해서 공룡이 멸종했고
그 죄책감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 설정, 얼핏 유치하지만 정말 진지합니다.
병구에게 그 진실은
“세상이 아무도 지켜주지 않기에, 나라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선언이었어요.
영화는 그 순간부터 감정의 파고가 깊어집니다.
분노, 집착, 신뢰의 붕괴.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병구에게서 멀어지지 않는 건
그가 가리키고 있는 진실이
심연처럼 낯선 동시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강사장은 결국 무너집니다.
탈출하려 했지만 실패, 망상과 현실이 뒤엉킨 그 상황 속에서
“진짜 내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되죠.
그 순간 영화는 알레고리로 확장됩니다.
개인적인 망상극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흔들리는 서사”가 되는 거예요.
그 장면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병구가 어머니에게 속삭이는 마지막 인사.
“엄마... 이제 지구는 누가 지켜...”
그 말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광기 뒤의 순수, 절망 뒤의 결심
그리고 인간이기 위해 버텨야 하는 슬픈 의지였습니다.
그 마음의 강도로... 저는
얼핏 웃을 수 없었어요.
이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또 하나 있어요.
음악입니다.
그건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에요.
병구의 내면이고, 영화의 또 다른 언어에요.
잔혹한 장면엔 발랄한 멜로디가 깔리고
기괴한 장면엔 서정적인 선율이 흐르죠.
관객은 그 감각의 간극 속에서
불편함과 애정 사이를 계속 오가게 됩니다.
그리고 반전.
이 영화가 가진 진짜 반전은
병구를 미친 사람이라 여긴 우리 자신이에요.
그가 틀렸던 게 아니라 우리가 틀렸다는 생각.
그의 외침은 우리가 외면한 수많은 병구들의 대변이었고
그들을 향한 마지막 다정한 질문이기도 했죠.
이 영화는 단순한 소동극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미쳐야
세상의 이성을 되돌릴 수 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병구는 우리에게 가르쳤어요.
“내가 틀려도 좋아.
그러나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그 마음은 정말 강렬했어요.
그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You” who are reading this,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킬 것인가요?
이 영화가 던지는 그 침묵이
아직 가시지 않았어요.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