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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로저(Closer) 리뷰

by 참지않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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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 있잖아요.

앨리스가 거리를 걸어오고 댄이 그녀를 발견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주 짧지만 굉장히 의미심장한 인사가 이어지죠.

바로 “Hello Stranger.”

이 대사가 사실은 그냥 대사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선언처럼 들려요.

우리는 언제나 낯선 사람으로 만납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가다가 그냥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서 시작되는 거죠.

근데 그 우연이 사랑으로 갈지, 욕망으로 갈지, 아니면 운명으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중요한 건,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완전한 타인이 아니라는 거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Closer>라는 제목이 본격적으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댄이 앨리스를 처음 보자마자 끌리는데요, 그게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녀의 눈빛, 표정, 말투, 이 모든 것에서 뭔가 설명하기 힘든 생생한 기운이 느껴지거든요.

그 기운이 댄의 삶을 흔들고 결국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죠.

근데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묘하게 불안해집니다.

왜냐하면 영화가 보여주려는 건 결코 낭만적인 완성형 사랑이 아니거든요.

사랑은 가까워지는 순간부터 이미 다시 멀어질 씨앗을 안고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너무 솔직하게 말해요.

처음엔 낯선 사람에게 다가서고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 하지만 알고 나면 실망이 커지고 친밀감은 곧 환멸로 바뀌죠.


이 첫 만남의 힘이 굉장히 큽니다.

단순히 로맨스의 도입부가 아니에요.

사실은 결말까지 이미 예고하는 장치죠.

“Hello Stranger”라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순간에 결국 다시 타인이 돼버릴 그 관계의 그림자를 던져 놓는 거예요.

저는 이게 너무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영화라면 사랑의 시작을 찬란하게 포장해서 관객을 설레게 만들겠죠.

하지만 <Closer>는 첫 대사부터 차갑게 선언하는 겁니다.

너희는 결국 다시 낯선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가까워진다는 게 이미 아이러니한 운명인 거죠.


앨리스는 낯섦의 상징 같은 인물이라면 댄은 그 낯섦을 글감으로 삼는 사람이에요.

그는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글로 써 내려가죠.

사실 저는 이 설정이 굉장히 불편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순수하게 상대를 향해야 한다고 믿고 싶은데 댄은 상대의 고통과 비밀마저 자기표현의 자원으로 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의 사랑은 이미 처음부터 타락해 있었던 거죠.


근데 앨리스는 달라요.

그녀는 처음부터 사랑을 믿습니다.

두려움 없이 낯선 이에게 다가가고 자기 진심을 그대로 보여주죠.

저는 이 대조가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댄은 낯섦을 두려워하면서도 탐닉하는 인물이고 앨리스는 그 낯섦을 품어내는 인물이거든요.

그런데 결국 두 사람 모두 다시 낯선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앨리스가 마지막에 뉴욕의 거리로 사라지는 장면은 단순히 헤어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끝내 지켜내려는 선택으로 보이죠.


결국 영화의 제목 <Closer>는 이 과정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낯선 이로 만나고, 가까워지고, 다시 낯선 이로 돌아갑니다.

가까워지는 순간은 황홀하지만 그 황홀은 오래가지 않아요.

가까워질수록 사실은 다시 멀어질 위험도 커지죠.

그래서 <Closer>는 단순히 “가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까워지려는 순간이 오히려 관계를 파괴하는 지점임을 보여주는 거예요.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제목이 그냥 사랑의 친밀감을 뜻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까 이건 냉혹한 농담에 가깝습니다.

더 가까워지려는 그 열망 자체가 결국 상대를 다시 낯선 사람으로 만들고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다는 절망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첫 대사 “Hello Stranger”는 사실 결말까지 이미 내다본 말입니다.

가까워짐은 곧 낯섦으로의 귀환, 이게 바로 영화가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냉혹한 진실이에요.


자,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 네 인물의 관계가 점점 꼬이기 시작합니다.

댄과 앨리스, 댄과 안나, 안나와 래리, 그리고 앨리스와 래리까지.

이 네 갈래의 관계망은요 그냥 단순한 삼각관계의 연장선이 아니에요.

각자가 상대방 안에서 자기 욕망을 확인하고 그 욕망 때문에 파괴되는 구조거든요.

이게 바로 <Closer>라는 제목이 가장 냉혹하게 드러나는 지점이에요.

가까워질수록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가까워짐 자체가 곧 파국의 신호탄이 되는 거죠.


안나는 사진작가예요.

겉으로는 관찰자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가장 불안정한 인물이죠.

댄과 래리 사이에서 끝내 확신을 갖지 못하고 계속 흔들립니다.

이 흔들림이 사실은 그녀의 본질이에요.

저는 이 인물을 볼 때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사람의 초상을 본다는 느낌을 받아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주변 사람들을 상처 입히는 모습.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안나의 얼굴을 닮았을지도 모르죠.


댄은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자기 확신을 얻고 싶은 욕망에 가까워요.

그는 안나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확인하고 싶고 또 앨리스와는 다른 어떤 성숙함을 경험하고 싶어 하죠.

근데 이 욕망이 결국 모든 걸 무너뜨립니다.

가까워지고 싶다는 그 열망이 오히려 그녀를 더 낯설게 만들고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져요.

그러니까 <Closer>라는 제목은 여기서 아이러니하게 다가옵니다.

가까워지는 순간, 사실은 낯섦의 골짜기가 벌어지는 거예요.


래리는 또 다르죠.

그는 욕망을 숨기지 않아요.

앨리스에게 직설적으로 끌림을 표현하고 댄한테는 잔혹하리만치 솔직한 말을 던지죠.

불쾌하면서도 묘하게 존경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왜냐하면 위선이 없는 진실은 때로 가장 잔인하지만 동시에 가장 정직하니까요.

저는 그래서 래리를 보면서 불편해하면서도 이상하게 그가 네 인물 중에서 가장 정직한 인물이라고 느껴졌어요.

댄은 사랑이라는 말로 욕망을 포장하지만 래리는 욕망을 욕망으로 부른단 말이죠.

이 차이가 결국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제목 <Closer>는 날카롭게 드러나요.

댄과 안나는 서로의 눈빛을 읽으며 가까워졌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 순간에 이미 서로를 모르게 되죠.

앨리스와 래리 역시 욕망으로 가까워졌지만 그건 곧 환멸로 변합니다.

네 인물 모두 결국 다시 “Hello Stranger”로 돌아가요.

차이가 있다면 처음의 낯섦은 가능성과 호기심으로 가득했지만 이제의 낯섦은 상처와 환멸로 얼룩져 있다는 거죠.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의 잔혹한 정직함에 늘 놀랍니다.

보통은 가까워짐이 관계의 목표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Closer>는 정반대를 보여줘요.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결국 다시 낯선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이 제목은 그냥 ‘가까운 사람’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가까워지려는 순간, 관계가 파괴된다는 냉혹한 선언이에요.


그리고 그 아이러니가 제 마음을 가장 세게 찌릅니다.

저 역시 누구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 가까움이 결국 서로를 더 멀게 할까 봐 두려워하거든요.

영화 속 인물들은 그 두려움의 변주예요.

가까워짐의 환상에 매달리다가 결국 다시 낯선 자리에 던져지는 것.


결말에 가면 결국 가장 선명하게 다가오는 인물은 앨리스예요.

댄을 사랑했지만 끝내 떠나죠.

뉴욕으로 돌아가고 거리 위에 서서 사라집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똑같이 거리에서 그녀를 보여주는데 그 사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있어요.

처음의 얼굴은 가능성으로 빛났다면 마지막 얼굴은 자기 자신을 지켜내려는 냉정함이 스며 있거든요.

저는 그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압축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우리를 가까이 묶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멀리 던져놓기도 한다는 거죠.


댄은 마지막까지 그녀를 붙잡으려고 해요.

근데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에요.

집착이고, 자기 욕망일 뿐이죠.

그는 앨리스가 자기 곁에 있어 주기를 원했지만 앨리스는 끝내 자기 자신을 선택합니다.

저는 여기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어요.

앨리스는 더 이상 댄의 이야기 속에서 소비되는 여자가 아니에요.

이제 그녀는 낯선 사람으로 남죠.

사실상 영화 속 네 명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 의지로 이 관계의 순환에서 벗어난 인물이 앨리스라는 거예요.


안나와 래리도 더 이상 서로를 붙잡지 못합니다.

가까워지려고 애썼던 순간이 지나자 둘 사이엔 공허만 남죠.

저는 이 부분을 볼 때마다 씁쓸했어요.

가까워지려는 욕망이 결국 낯섦으로 귀결되는 구조, 그게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나니까요.


결국 영화의 제목 <Closer>는 여기서 완성돼요.

처음에는 낯선 사람, 그다음엔 가까운 사람, 그리고 마지막엔 다시 낯선 사람.

이 단순하지만 잔혹한 순환이 바로 우리가 사는 방식이기도 하죠.

저는 이 제목이 농담처럼 들리다가도 동시에 너무 깊은 진실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가까워지는 순간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앨리스가 낯선 이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이상하게도 안도했어요.

그녀는 상처받았지만 자기 자신을 끝내 잃지 않았거든요.

다시 “stranger”로 돌아가는 건 실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선택일 수 있다는 거죠.


결국 <Closer>는 사랑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사랑은 우리를 흔들고, 상처 입히고, 결국 다시 낯선 사람으로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제 삶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진 관계들을 떠올려요.

그게 결국 똑같은 순환이거든요.

낯선 사람으로 만나고, 가까워지고, 그리고 다시 낯선 사람이 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차갑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숙명임을 인정해요.

가까워지려는 열망이 결국은 우리를 다시 멀어지게 한다는 진실.


영화 <Closer>는 그 단순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순환을 잔혹하면서도 아름답게 기록해 놓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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