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은 언제나 예상보다 더 차갑게 다가왔습니다.
코로나 델 마의 파이럿츠 코브로 내려가는 돌계단은 이른 시간의 물기 때문에 햇빛보다 먼저 번들거렸고 마지막 단에서 모래로 발을 옮기는 순간, 신발 속으로 스며든 가는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조심스레 긁어 지나갔습니다.
이름이 불리고, 짧은 대답이 따라왔습니다.
한 사람이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일어설 때, 젖은 옷은 무게를 더했고 소금 냄새는 보이지 않는 실처럼 피부에 걸려 남았습니다.
금세 사라지는 물결과 오래 머무는 냄새가 같은 장면 안에서 서로 엇갈렸습니다.
뒤편에 서 있던 한 청년이 거의 들리지 않게 “오늘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고, 곁에 서 있던 사람은 조용히 아멘을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의 모래는 새로 갈아낸 유리처럼 반짝였고 그 반짝임이 실제로는 잠시 비친 햇빛의 표정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그때만큼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마의 물기를 두 손으로 훔치며 가볍게 웃었고, 또 다른 이는 발바닥의 자갈을 털어내며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우리가 그 순간에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이 장면은 이미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채비를 마친 얼굴이었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사람들은 다시 코스타 메사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곳에서는 길 이름이 주소보다 먼저 목적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Fairview Street, Harbor Blvd.
신호등은 초록에서 노랑으로 천천히 표정을 바꾸었고 차창으로 길게 스며드는 석양빛은 이동을 한결 친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차량들 사이로 기타 넥이 언뜻언뜻 보였고, 접이식 의자를 펼칠 때마다 얇은 금속이 서로 스치며 낸 가느다란 마디 소리가 공기를 살짝 흔들었습니다.
바람이 있는 날이면 하얀 천막을 올렸습니다.
폴대는 매끈하고 차가웠고, 로프는 손바닥에 묻은 모래를 매정하지 않게 훑고 지나갔습니다.
말뚝을 모래 속으로 더 깊이 박을 때마다 망치의 둔탁한 울림이 발바닥에서 종아리로, 어깨로 은근히 번졌습니다.
한 번 일어나 서걱거린 먼지는 금세 얌전히 가라앉았습니다.
스피커 전원에 작은 불이 들어오자 아주 미세한 허밍이 들렸습니다.
객석 맨 뒤에서는 잘 구분되지 않았으나 음향팀에게는 그 떨림이 전압의 기분을 알려 주는 신호였습니다.
오전의 물과 오후의 공기가 같은 하루의 서사 안에서 하나로 엮여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모두는 분명히 받았습니다.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진실이 늘 그렇듯, 이 또한 설명보다 선명했습니다.
교회의 이름은 갈보리 채플 코스타 메사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캘버리 채플”이라고 불렀습니다.
강단의 목회자는 척 스미스였습니다.
그는 과장된 손짓으로 시선을 끌지 않았고 종종 문 쪽을 향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두었습니다.
맨발로 들어오는 아이, 젖은 샌들을 손에 쥐고 서성이는 청년, 운동화 끈이 풀려 뒤꿈치가 반쯤 빠진 채 급히 달려오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그에게서 먼저 움직인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몸이었습니다.
카펫 위에 커피가 쏟아져도 표정보다 걸레가 먼저 움직였고 스태프에게 담요를 펴 달라는 조용한 손짓이 뒤따랐습니다.
“사람이 더 귀합니다.”
설교가 시작되기 전, 이렇게 평범하면서도 중심을 꿰뚫는 말을 먼저 내놓는 교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그날의 순서가 미리 정돈될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꾸중이 필요한 순간에도 목소리는 좀처럼 높지 않았습니다.
잠깐 눈을 맞추고, 앉을 자리를 가리키며 “예배가 곧 시작됩니다”라고만 말했습니다.
기다림이 곧 가르침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오래된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습니다.
규칙은 많지 않았으되 누가 먼저 환영받아야 하는지에 관해선 한결 분명했습니다.
새로 온 청년들은 대개 말수가 적었습니다.
말 대신 기타가 있었고, 기타 대신 짧고 솔직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통기타는 조금 낡았으나 소리는 따뜻했고 손가락은 삼화음을 맨 먼저 찾아냈습니다.
후렴으로 넘어가기 직전, 리더가 한 박자 숨을 들이쉬면 뒤쪽에 앉은 사람들까지 같은 호흡으로 조용히 따라 들이쉬는 모습이 객석 끝에서도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여기 계시지요?”
가사는 길지 않았고 멜로디는 높은 음에 무리하게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노래가 끝나면 척 스미스가 성경을 짧게 읽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혹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장황한 설명은 뒤따르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 절제로 인해 말씀이 설교가 되곤 했습니다.
한 구절이 천막 안을 지나갈 때, 천장에 잡힌 주름이 눈가에 조용한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바깥의 바람은 여전했지만 안쪽의 어깨들은 서로를 향해 아주 조금 더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 사소한 기울기가 노래와 말씀 사이의 간격을 무리 없이 메워 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육체의 문장이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7시 반이면 입구에 늘 줄이 생겼습니다.
작은 현수막에는 굵은 글자로 “Maranatha”가 인쇄되어 있었고 자원봉사자는 라벨지에 같은 단어를 매직으로 옮겨 적었습니다.
잉크 냄새는 금세 사라지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마라나타 콘서트라는 이름은 훗날 음악 레이블의 간판이 되었지만 출발점은 한 줄로 충분했습니다.
“오늘 부른 걸 다음 주에도 부르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는 중고 마이크를 들고 왔고, 누군가는 테이프 레코더와 공테이프 상자를 들고 왔습니다.
정확한 모델명이나 용량은 사람마다 기억이 달랐습니다.
어떤 이는 90분짜리가 여유로웠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60분짜리가 손에 익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분명했던 건 손글씨 라벨뿐이었습니다.
라벨 모서리는 자주 들떠 엄지손톱으로 꾹 눌러 붙여야 했습니다.
녹음 버튼이 눌리면 작은 빨간 불이 켜졌고 잠시 뒤 되감기 버튼이 딸깍하고 제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테이프가 늘어지면 연필을 꽂아 손으로 되감았고 헤드 근처가 미지근하게 달아오르면 복제를 잠깐 멈췄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대개 거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테이프 두 대가 서로 마주 보게 놓이고 재생과 녹음을 동시에 눌렀다가 표시 시간이 거의 같아졌을 때 멈췄습니다.
케이스에는 표지가 없었습니다.
“TONIGHT—Maranatha—Costa Mesa”라고 삐뚤빼뚤 적힌 메모가 그날의 증거였습니다.
그 메모면 충분했습니다.
사람들은 모임 전에 그 테이프를 돌려 들으며 첫 소절의 박자와 자막 줄바꿈의 타이밍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예배 준비는 기술적 리허설이 아니라 공동의 기억을 정렬하는 고요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대에 서던 팀 가운데 ‘러브 송(Love Song)’은 자주 회자되었습니다.
기타 두 대와 목소리 두 개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밤이 있었습니다.
한 번 듣고 금세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쉬운 노래들—그러나 쉬움이 곧 얕음을 뜻하지 않음을 사람들은 그때 배워 갔습니다.
누구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기보다 자기의 이야기를 곧장 올리는 법, 그 간명함이 깊이의 문을 먼저 열 때가 많았습니다.
리허설이 끝난 뒤, 회색 양복을 입은 한 장로가 조용히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본당은 잘 모르겠소. 그러나 오늘 이건 우리 교회가 오래 기다린 말 같구려.”
박수 없이도 동의는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조용한 수긍이 먼저였고, 그 수긍이 다음 주의 큐시트를 조금 고쳐 놓았습니다.
바뀐 큐시트는 다시 회중의 호흡을 다정하게 바꾸었습니다.
작은 고갯짓이 음향보다 멀리 갔다면 그 밤은 이미 성공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같은 속도로 수긍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회의실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갔습니다.
“가사가 너무 짧지 않나.” “반복이 많아지면 기도가 흐트러지지 않겠나.”
“밴드가 앞에 서면 회중은 관객이 되는 거 아닐까.”
성가대 원로의 음성은 침착했지만 단어 사이사이에 오랜 습관의 무게가 서성였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답이 나왔습니다.
“짧아야 외웁니다. 외워야 일상에서도 부르지요.” “반복은 산만함이 아니라 집중입니다.”
“밴드는 안내자이고, 마이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앞으로 당기는 도구입니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결론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갈보리 채플은 누군가를 이기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말을 예배 순서에 넣었습니다.
전통 찬송을 예배의 뼈대, 이를테면 시작과 성찬과 파송에 놓고, 새 노래는 본문과 응답 사이사이에 가볍게 끼워 넣었습니다.
설교는 중심에 놓고, 노래들은 그 앞과 뒤에서 서로를 비추도록 순서를 짰습니다.
어떤 주일에는 전통이 무게를 잡았고, 다른 주일에는 새 노래가 참여를 넓혔습니다.
둘은 서로를 잠식하지 않았고, 서로 덕분에 더 또렷해졌습니다.
균형은 단번에 오지 않았습니다.
현장의 반응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다음 주에 작은 조정을 더하는 그 성실이 균형을 조금씩 키워 갔습니다.
이 흐름은 곧 이름을 얻었습니다.
예수 음악—Jesus Music.
설명을 덜어 주는 단순한 이름이었습니다.
이내 ‘Praise song’이라는 말도 쉽게 입에 올랐습니다.
명칭은 달라도 중심은 같았습니다.
문턱을 낮추고, 지금 쓰는 말로 하나님께 곧장 말하며, 무대보다 좌석에서 나는 소리를 더 잘 듣는 일.
어떤 밤이 끝나갈 때 누군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오늘 이후로는 조금 다르게 살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말의 주인이 아니라 말의 방향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마라나타! 뮤직은 이러한 흐름을 모으기 위해 분명한 편집 원칙을 세웠습니다.
키는 리더의 목청이 아니라 회중의 평균 음역으로 잡습니다.
코러스는 간결하되 방향은 분명하게 유지합니다.
간주에는 말씀이 들어갈 여지를 남깁니다.
드럼과 베이스는 흥분을 부추기는 장식이 아니라 속도를 붙잡는 바닥이 됩니다.
기타와 키보드는 멜로디의 턴마다 짧은 쉼표를 만들며, 호흡의 리듬을 안내합니다.
무엇보다 마이크는 독창을 돋보이게 하기보다 회중의 소리를 앞으로 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앨범은 스튜디오의 완벽한 매끈함 대신 예배당의 살아 있는 질감을 택했습니다.
손뼉 소리, 의자 삐걱거림, 누군가 숨을 고르는 소리.
음정의 작은 빈칸을 정직함이 메웠고, 그 정직함이 곡의 기억을 길게 만들었습니다.
음향은 친절해야 합니다.
친절은 과장을 멀리합니다.
과장이 빠져나간 자리는 이해와 참여로 차분히 채워집니다.
신학의 말은 느린 것 같으면서도 늘 제때에 도착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공동체의 응답—이 정의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응답의 언어와 방식이 넓어질 수 있음도 함께 인정되었습니다.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외와 교리는 예배의 기둥입니다. 가사가 짧아지면 신학 어휘도 짧아질 위험이 있어요. 밴드가 중심이면 회중이 관객이 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정직한 자기 성찰을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회중의 숨을 과소평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새 노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짧은 고백이 깊이에 도달할 때가 있습니다. 반복은 산만함이 아니라 집중입니다.”
이 역시 솔직한 첨언이 이어졌습니다.
“감정이 말씀을 가린 밤도 있었습니다.”
두 목소리 사이에서 중재하는 쪽은 서사의 힘을 믿었습니다.
“본문—해석—응답—파송. 흐름이 분명하면 다양한 노래가 서로의 빈칸을 메울 수 있습니다.”
중재는 때때로 미지근함으로 오해되기도 했습니다.
오해는 차분히 기록되었고 다음 주의 조정으로 옮겨졌습니다.
완벽한 합의는 드물었지만 방향은 대체로 같았습니다.
같은 북극을 바라보고 걸을 때, 발걸음은 자연히 비슷한 박자를 찾곤 합니다.
실무는 언제나 영성을 도왔습니다.
키를 정하는 일은 음악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목회의 문제였습니다.
리더에게만 편하면 회중은 구경꾼이 되기 쉽습니다.
회중에게 편하면 노래는 곧 고백이 됩니다.
빠른 곡 뒤에는 침묵이 필요했습니다.
간주 4마디의 정적—자막은 잠시 멈추고, 손뼉은 쉬며, 사람들은 숨을 고릅니다.
느린 곡 뒤에는 짧은 감사 문장을 한 줄 넣었습니다.
“오늘 감사한 일 하나 떠올려 보세요.”
볼륨은 감동을 대신하지 못했습니다.
드럼과 베이스는 바닥, 보컬은 얼굴이었습니다.
과한 이펙트는 얼굴을 흐리게 만들었고, 명료한 말은 얼굴을 또렷하게 세웠습니다.
곡 리스트는 메뉴판이 아니라 지도였습니다.
시작—본문—응답—파송.
지도가 분명할수록 예배는 서두르지 않고도 이동했습니다.
마지막 박수가 조금 늦게 시작되는 밤, 사람들은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떠나기가 아쉬운 장소는 대체로 좋은 장소였습니다.
바람이 더 셌던 어느 토요일, 천막 돗자리는 한 번 부풀었다가 금세 누그러졌습니다.
매듭은 교본대로였고, 말뚝은 더 깊이 박았습니다.
스피커 그릴에는 모래가 얇게 들러붙어 있었고 자원봉사자는 작은 브러시로 조심스럽게 털어냈습니다.
리허설이 끝나고 음향팀의 한 청년이 노트에 조용히 적었습니다.
“후렴 1회.”
실제 예배에서 후렴은 한 번만 돌았고, 집중은 오히려 더 높아졌습니다.
객석의 표정에서 답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고개가 크게 끄덕여지지 않아도, 눈썹이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충분하다는 말은 때로 불친절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예배의 현장에서는 의외로 정확했습니다.
카세트를 복제하던 거실의 온도는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케이스는 손바닥 열에 미지근해졌고 라벨 모서리는 다시 들뜸을 시작했습니다.
마커 잉크는 시간이 지나면 살짝 번졌습니다.
“MARANATHA (Sat.)—Costa Mesa—7:30pm.”
누군가는 한 번 ‘Fri.’라고 적었다가 그 위에 ‘Sat.?’라고 고쳐 놓았고, 옆에서 보던 사람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습니다.
토요일.
기록은 흔히 어긋났습니다.
1969년 여름이라고도 했고 가을이라고도 했습니다.
7시였다고도, 7시 반이었다고도 했습니다.
날짜의 정확함이 모든 진실을 보증하지는 않았습니다.
거실에 데크 두 대가 마주 놓였고, 한 장의 예배가 또 한 장의 예배로 복제되어 누군가의 자동차 카세트 슬롯으로 들어갔다는 사실—그 구체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구체적인 것들은 때로 정확한 것보다 오래 버팁니다.
일상은 구체로 움직이고, 기억은 그 위에 잠시 앉아 쉬었습니다.
도시는 달라도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떤 예배당은 창 너머로 Harbor Blvd.의 신호등이 바닥에 푸른 네모를 만들었고, 또 다른 예배당은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잘게 부숴 통로 위로 뿌렸습니다.
스피커는 천장에 매달리기도 했고, 바닥에 낮게 서 있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찬송 한 절,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짧은 코러스 한 줄, “I Love You, Lord.”
언어가 달라도 방향은 같았습니다.
그 방향만 잊지 않는다면 전통과 새 노래는 같은 길에서 속도만 달랐습니다.
교회들은 각자의 도시에 맞는 보폭을 정했습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혹은 그렇게 믿고자 애썼습니다.
믿음은 종종 노력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다시 강단으로 돌아옵니다.
어느 주일, 척 스미스는 짧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말을 조금 덜 하겠습니다.”
설교는 짧았고, 핵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와 다르다.”
두 문장은 동시에 참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전통 찬송이었습니다.
리더의 손짓이 없었는데도 노래는 자연스레 시작되었습니다.
첫 마디는 조금 흔들렸고 두 번째 마디에서 곧 안정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높이를 잠깐 놓쳤고 또 다른 이는 가사를 한 음절 앞질러 불렀습니다.
작은 흔들림들이 오히려 울림을 키웠습니다.
노래가 멈춘 뒤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의자 사이를 빠져나가며 누군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았다가 놓는 손길이 있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몸짓이었습니다.
오래된 예배의 한 구절은 종종 말이 아니라 손등의 온도로 남았습니다.
그 온도가 사람을 다음 주로, 다음 장면으로 상냥하게 이끌었습니다.
갈보리 채플에서 벌어진 일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문을 조금 더 열었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온 바람을 마라나타가 병에 담았습니다.
병은 테이프였고, 악보였고, 때로는 밤공기 자체였습니다.
그 바람은 다른 도시에서 다시 열렸습니다.
누군가는 전통 찬송의 구절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누군가는 한 줄짜리 코러스에서 삶의 방향을 되돌렸습니다.
멀어 보이던 두 지점은 같은 곳을 가리킬 때 다리가 되었습니다.
다리를 건너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으나, 건너야 할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 가기 위해.
이유가 분명할수록 지도는 단순해졌고, 단순함은 때로 용기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의 장면으로 기꺼이 되돌아가 봅니다.
파이럿츠 코브.
물결은 여전히 허리에서 어깨로 오르내렸습니다.
이름이 불리고, 짧은 고백이 뒤따랐습니다.
물에서 올라오면 햇빛 때문에 눈이 잠깐 찡그려졌습니다.
자갈이 발바닥을 누르고, 젖은 티셔츠의 무게가 등판에서 천천히 식어 갔습니다.
“차갑네요.”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미소로 답했습니다.
“곧 괜찮아집니다.”
세례에 관한 말이면서 예배에 관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낯섦은 천천히 익숙으로 이동했고 그 사이에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노래했습니다.
아주 단순한 말로, 작은 음정으로, 그러나 진심으로.
“주님, 사랑합니다.”
다음 주에도, 다음 도시에서도.
언어는 달라도 방향은 같았습니다.
마라나타. 오소서, 주 예수여.
이 기도는 내내 현재형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통과 새 노래,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보편의 시선은 여전히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전통은 때로 회중의 호흡을 놓쳤고, 새 노래는 한때 감정에 치우쳤습니다.
보편은 가끔 미지근함으로 오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서 겸손히 배웠습니다.
전통은 접근성과 참여 설계를, 새 노래는 경외와 침묵의 무게를, 보편은 서사와 배치의 기술을.
덕분에 많은 교회에서 균형이 자랐습니다.
완벽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밤, 둘은 같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한 발 간격을 둔 채 나란히 서는 편이 더 안전했습니다.
그 간격조차 사랑의 모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단순한 상식이 지켜질 때, 어떤 편성이든, 어떤 언어이든, 어떤 리듬이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가운데 오십니다.
문을 조금 더 열어 두면 좋겠습니다.
바람은 늘 그 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람을, 이번에는 잃지 않기로 조용히 다짐합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