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이 주인이 되는 노래
예배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과 공동체의 유익에 두기 시작하면 말투와 선율, 그리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레 달라진다.
설명의 문장보다 호칭이 앞서고, 보고서의 어휘보다 기도의 어휘가 익숙해진다.
고백은 멀리 돌아가지 않고 곧장 대상에게 향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 같은 2인칭 고백은 길지 않아도 방향을 분명히 잡아 준다.
낯선 종교 용어가 줄고 일상의 말이 늘어나지만 얕아지는 대신 핵심을 더 곧게 겨눈다.
언어의 전환은 곧 선율의 선택을 바꾼다.
후렴은 간결해지고 최고음은 회중의 중간 음역에 머문다.
반복은 장식이 아니라 방향을 붙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같은 한 줄을 다시 부르는 짧은 순간, 숨이 고르고 마음이 정리된다.
반주는 목소리를 끌어올리는 배경으로 물러난다.
악기들이 빈틈없이 채우면 사람의 소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드럼과 베이스는 리듬의 바닥을 단단히 깔고, 건반과 기타는 남겨 둘 자리를 기억한다.
소리를 덜어 낼 줄 아는 절제가 공동 고백의 공간을 넓힌다.
곡 사이의 여백도 달라진다.
설명을 길게 붙이지 않고, 간주 몇 마디나 짧은 침묵 한 호흡이면 충분하다.
여백은 단절이 아니라 집중을 부르는 신호다.
여백 위에 그날의 정조가 짧게 얹힐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한두 문장의 위로와 격려가 지나가고 곧장 공동의 고백으로 되돌아온다.
이때 즉흥은 기술 과시가 아니라 오늘의 기도를 오늘의 말로 이어 붙이는 작은 다리로만 남는다.
다리는 길 필요가 없다.
건너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쪽으로 건너 마음을 모으는 일이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회중의 주체성을 불러낸다.
높은 고음을 오래 끌지 않으니 누구나 음을 얹을 수 있고 후렴이 짧아 금세 외워진다.
자막을 반 박자 먼저 보여 주면 사람들은 먼저 읽고 나중에 고백하게 된다.
작은 배려들이 쌓이면 노래는 특정 팀의 레퍼토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공용어가 된다.
악보를 보기 전에 몸이 먼저 기억하는 말, 몸이 먼저 아는 말이 입술에 오래 남는 경험이 생긴다.
그렇게 형성된 습관이 예배의 시간을 지탱한다.
은사의 자리를 묻는 일도 이 바닥 위에서 다시 정리된다.
예언은 미래를 맞추거나 개인의 삶을 지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공동체를 세우는 위로와 권면에 가깝다.
공예배 안에서 나타나는 예언적 발화는 공용으로 나눌 수 있는 범위의 짧고 분명한 문장에 머무르고, 곧장 본래의 고백으로 회수된다.
특정인의 비밀을 드러내거나 구체적 결정을 강요하는 방식은 예배가 감당할 자리가 아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예배 후 책임 있는 사람의 분별 아래 조용하고 안전하게 다루어야 한다.
방언에 대해서도 원칙은 분명하다.
개인의 낮은 소리 기도는 예배에 동반될 수 있으나 회중이 들을 만큼 공개된 메시지가 되려면 통역과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신약의 질서, 특히 고린도전서 14장의 방향을 오늘의 예배에 옮긴 것이다.
방언은 많은 은사 가운데 하나이며 성령세례의 필수 표지로 강요되지 않는다.
은사는 사랑과 질서 안에서만 오래 신뢰를 얻는다.
자유와 절제가 서로를 지켜 주는 장면은 예배의 온도를 안정시킨다.
자유만 남으면 혼란으로 기울고 절제만 남으면 냉혹해진다.
두 축이 함께 서 있으면 사람들은 안심하고 참여한다.
참여가 늘수록 노래는 단단해진다.
단단함은 볼륨에서 오지 않는다.
안심하고 같은 문장을 함께 말할 때 생긴다.
그때 예배는 설명이 아니라 대화가 되고, 대화는 오래된 믿음을 지금이라는 시간으로 데려온다.
이 언어와 형식은 다양한 전통 속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길을 연다.
고정된 예전의 틀을 지키는 공동체는 응답송이나 성찬 전후에 간단한 현재형 고백을 배치해 숨을 들여보냈고, 현대 예배의 형식을 선호해 온 공동체는 절기에 맞춘 전통 찬송을 더해 경외의 결을 보완했다.
이름과 구조는 달라도 기준은 같았다.
하나님께 직접 말을 건네는 간단한 고백,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낮춘 선율, 사랑과 질서를 우선하는 은사의 자리. 기준이 같으면 억양이 달라도 방향은 하나가 된다.
그래서 대륙과 전통을 건너 이 언어는 공동의 자산이 될 수 있었다.
어떤 선택도 그림자를 피하지는 못한다.
단순함이 깊이를 잃지 않으려면 본질을 정확히 붙들어야 하고 친밀함이 경외를 흐리지 않으려면 말의 무게를 가늠해야 하며, 즉흥이 습관적 장식으로 흐르지 않도록 본래의 고백을 보조한다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동체는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지금의 말이 사람을 세우는가, 성경과 사랑에 충실한가, 공예배의 질서를 지키는가, 분별과 책임이 가능한가.
같은 질문을 반복할수록 노래는 더 간결해지고, 간결해질수록 더 멀리 간다.
그 길 끝에서 체험과 질서의 경계, 은사의 사용과 남용, 현상의 해석과 공예배의 안전 같은 물음이 자연스레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