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어떻게? 가능할까?

by Ea혜성

“좌절 끝 방황 시작”


다시 방황 시작...

하늘도 무심하시지, 좌절을 내리 세 번을 하고

방황을 하다 보니 멘탈이 부서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버렸다.

이때가 정말 힘든 시기였다.

2~3년간 방황을 했나... 더 이상 일어설 힘이 없었다.

그 어느 누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칠전팔기라 했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 했던가...

속담과 사자성어가 그렇게 원망스러웠다.

아니, 그걸 만든 사람이 더 원망스러웠다.

하기사 누굴 탓하랴, 적응 못한 내 잘못인 것을...

너무 성급히 사회에 뛰어 들은 것 같다.

멘탈을 부여잡고 뛰어들지 않은 게 악수 중의 악수였다.

점점 더 몸과 마음 상태는 악화되어 가고

그에 비례해서 쏟아지는 사회의 비난...

나는 여기서 무너질 줄로만 알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 보지 않을래??”


그러다 제안을 하나 받게 되었다.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으니 썩히기엔 아깝다.

공무원 시험 보지 않을래??“


정말 아무것도 안 보고, 5개 과목(국어, 영어, 한국사, 전공과목 2개)만 본단다.

필기 이후엔 면접인데 블라인드 면접이라고 들었다.

면접관이랑 혹시나 아는 사이면 서로 못 만나게 바꿔준다고도 했다.


“해볼까??”


첫 번째 시험...

보기 좋게 떨어졌다.

다른 과목에서 떨어졌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하필 국어에서 떨어졌다... 그것도 과락으로...

거진 초중고 12년 동안 주구장창 공부했던 게 ‘국어’이고 ‘언어’ 아니던가??

참... 할 말이 없었다.

역시나 주변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년 시험 보기 전에 내가 굶어 죽게 생겼으니까!!!


“다시 한번 해보자!!”


어디에도 나가질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공부만 하려고...

실질적으로는 돈이 없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 뒤 필기시험을 치렀다.

부모님이 배웅을 와주셨네...

더욱더 부담이 되었다.


“혼자 올걸 그랬나... 이번에도 떨어지면??”


정말 나락이었다.

모아둔 돈도 떨어졌으니까...

사면초가에, 진퇴양난에, 너 죽고 나살자...

그때서야 늦게나마 또 깨달았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꼴등으로 필기를 합격했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면접은 언제 보니??”

“우리 집에도 공무원이 생기는구나!!”


부담스러웠다... 그것도 너무나...


“면접은 어쩌지??”


이번에도 이루어질까??

그랬다... 지금의 내 상황은 행운과 요행 두 가지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

말 그대로 배수의 진을 친 상태였다.

공무원 시험은 등수대로 골라서 갈 수 있다는데 아무렴 상관없었다!!

붙기만 하면 어디든 갈 생각이었다!!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이번에도 역시 부모님이 데려다주셨다...

필기시험보다 더 부담스러웠다...

이번에 떨어지면 필기부터 다시 봐야 했으니까...

면접을 끝내고 부모님 차에 올라탔다.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침울해하는 게 보였으니까...


“정말 간절하면 이루어질까??”


정말 간절했다. 여기서 못 붙으면 당장에 먹고살 길이 걱정이었다.

오죽했으면 면접 보고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아르바이트 자리 검색하고 있었을까...

면접 발표날까지 가족들끼리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밥상 앞에서도...

심지어 놀러 다니지도 않았다.

괜스레 죄송했다. 나 때문에 안 나가는가 싶어서...


“어?? 이게 되네??”


하아... 마지막까지 결과창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보기 싫었다라고나 할까.

그동안 좌절한 것, 필기 떨어진 것 등등 다시 한번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전화가 울렸다.

누구지??


“안녕하세요, 여기 공무원 인사담당 XXX입니다. 본인 되십니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침착하고 대답했다.


“공무원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 순위로 붙으셔서

어디에서 근무하실지는 앞의 분들이 다 결정하고 난 뒤에 결정되실 겁니다.”


사람이 엄청나게 놀라면 말조차도 안 나온다더니 정말 그랬다.

목구멍에서 목소리가 막혀 나오질 않았다.

주변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필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걸려올게 뭐람 ㅋㅋ...

부모님 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마치 10년, 100년처럼 느껴졌다.

그 뒤의 일은 누구라도 연상이 되겠지.

그렇게 행복한 우리 집안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그제서야 또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내가 잘되는 것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것을...”


(3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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