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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젤라 Oct 29. 2024

섬김의 기회, 계획을 초월하는 순종의 중요성

성령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마무리하시던 순간에 마리아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며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 마태복음 26장에 기록된 마리아가 드린 향유는 단순한 물질의 헌신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사랑과 감사, 헌신의 표현이었다. 그녀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드렸고, 그 자체가 예배였다. 마리아의 향유는 단지 예물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도 매일의 작은 순간 속에서 순종하는 예배의 상징이 된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작은 헌신과 순종은 하나님의 눈에 결코 사소하지 않다. 마리아의 섬김이 예수님께 깊은 기쁨과 감동을 드렸듯이, 우리 역시 그 작은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마리아도 처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한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하고 향유를 부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을 깊이 사랑했기에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매일 기도하며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손님 접대에 집중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께 집중하여 칭찬받은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마리아가 '더 좋은 선택을 했다'는 예수님의 칭찬은, 그녀가 기도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할 길을 찾은 결과였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마음을 지닌다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주실 것이다.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인도받기를 기도하며 바라야 한다.

최근에, 두 가지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인도하심을 느꼈다. 하나는 올해부터 미국 청교도의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는 11월이 아닌 구약의 초막절 절기에 드리는 추수감사절 준비를 위해 성도들이 교회에 모이는 날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다음 날은 추수감사절 예배가 있었다. 오전에 권사님과 자매님들이 오신다고 하여 교회로 향하려는 중에, 수석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목사님은 화분을 교회로 옮기는 중이셨고, 근처에 있다면 성전으로 옮기는 일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교회로 가던 중, 어제 연락을 미뤘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힘든 일이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40분이 흘러 있었다.

교회에 도착하니 이미 목사님이 화분을 모두 옮겨 놓으신 뒤였다. 죄송한 마음에 목사님을 도와 주님께 꽃으로 섬기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회개혔다. “주님, 주님께 영광 드리는 일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라고 기도드렸다. 주님께서 목사님과 함께 그 자리에서 작은 예배를 드릴 은혜로운 기회를 주셨음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 기회를 붙잡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일상 속 작은 인도에도 더욱 민감히 반응해야겠다는 결단을 하였다. 

오후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참석할 일정이 있어 서둘러야 했다. 오전에 경험한 아쉬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서둘러 마친 후 평소보다 일찍 교회로 향할 수 있었다. 권사님들과 자매님들이 늦게 도착하셔서 다행히 나도 그 준비 과정에 동참할 수 있었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려주신 것 같은 감동에 감사가 밀려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애써 외면하고 내 방식에 집착했던 지난 순간이 부끄럽게 느껴진 또다른 일이 있다. 금요일에 지방에서 회의가 있었다.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 놓고도, 회의 중간에 “조금 일찍 출발하면 예배에 늦지 않게 참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회의에 남았고, 예정된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 도착했을 때 다른 기차는 이미 매진이었다. 30분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회는 이어졌다. 플랫폼에 가보니 내가 예약한 2시간 30분 걸리는 기차가 아닌, 연착된 1시간 30분 기차가 막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령님이 나를 그 기차에 초대하시는 듯한 감동이 들었다. ‘예배에 참석하고자 하는 내 마음을 아시고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셨구나!’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정해진 계획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고, 결국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저 ‘내가 정해둔 계획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은 표가 없는데 기차를 탄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타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나는 예배가 끝난 후에야 서울에 도착했다.

다음 날 성도분들이 전날 예배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전해 주었고, 그제야 하나님께서 주셨던 기회를 내가 끝내 거절했음을 깨달았다. 권사님께 여쭤보니, 입석으로라도 기차에 탈 수 있었음을 알고 뒤늦게 아쉬웠다. “그 기차가 천국으로 가는 기차였다 해도, 나는 표가 없다고 하면서 타지 않았겠지?”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마음은 간절하였지만, 주님께 부르짖으며 예배를 사모하는 그 마음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그 기본적이고 중요한 기도조차 하지 않고 매진만 머리에 담고 모든 기회를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30분간 '주님,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금요예배에 달려가고 싶습니다!'하고 매달렸더라면, 분명 그 연착된 기차가 주님이 예비하신 것임을 확신하고 뒷일은 주님께 맡기고 기차에 담대히 올랐을 것이다. 

혈우병을 앓던 여인이 오직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닿아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손을 뻗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규칙과 상식의 한계를 넘어 기적을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틀을 뛰어넘어 길을 열어주시지만, 내가 세상의 규칙과 나의 제한된 사고 속에 갇혀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니었을까?

아합 왕의 신하였던 오바댜가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영이 당신을 어디로 이끌고 갈지 모른다”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정해놓으신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인도하심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애써 세상의 규칙을 따라 내 계획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주님께 마음을 여는 순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회개와 함께 깨닫는다. 

내가 내 계획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성령님께 귀를 기울이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경험할 수 있음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신뢰하며, 순간의 순종을 통해 성령님의 인도에 민감해지자. 삶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순간의 부르심을 따르는 순종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이다. 매 순간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경험하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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