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이라는 이름

입사 1개월 차에 과장이요?

by SUN

원래 인턴은 딱 1개월이었다.

어차피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딱 하나, 인턴을 해봤다는 기록, 이력서의 한 줄이었으므로 나는 계획했던 휴학을 하며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야 했다. 물론 내 생각과는 매우 다른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지만.


1개월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 마케팅을 맡고 있던 이사님이 나에게 물었다.

"너 여기 좀 더 다녀볼래?"라는 제안. 일단은 1개월을 더 해보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휴학할 생각이었기에, 사실 1개월을 추가로 더 다니는 건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1개월 간의 월급은, 그러니까 첫 월급인 30만 원에서 파격적인 33% 인상을 거친 40만 원이었다.

나는 33%의 월급 인상을 기록하고,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

나와 같이 1개월 인턴을 하고자 들어왔던 인턴 중 80%는 다시 학교에 복귀하거나, 그냥 이 일을 그만뒀다.

(어쩌면 나도 이때 그만뒀어야 하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한다..)



물론, 1개월이라는 시간은 매우 짧은 것이지만, 또 동시에 40만 원 밖에 안 받는 이 인턴 자리를 계속해보기로 결정했던 것에는 그 결정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일이 재미있었다.

내 첫 회사가 내놓은 첫 번째 제품은 하루가 되지 않아 모두 완판 되었고, 두 번째 제품 역시 같은 속도로 소진이 되었다. 물론 첫 번째 제품은 단 100개였으며, 두 번째 제품은 500개 정도의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구성을 가진 제품이 시장에 안 팔릴 리 없었고, 나는 빠른 성장에 재미를 보고 만다.


그뿐이랴. 내가 직접 블로그, 네이버 카페를 운영해 볼 수 있는 경험과 (지금으로 치면 인스타그램이나 X 계정을 운영해 보는 것이었겠지?) 나의 말도 안 되는 마케팅 아이디어들(실제로 말이 안 된 건 없었지만, 그렇게 임팩트가 있는 마케팅 활동도 아니었긴 했다)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단순한 이벤트 기획과 진행조차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즐거워했었더랬다.


두 번째로, 나는 경력이 필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경력이 없어서 원서를 쓰는 대로 줄줄이 떨어졌었다. 제대로 된 취업 준비도, 인턴 준비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 당연했을 수 있는데, 나는 내 이름으로 된 몇 가지 프로젝트와 경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취업을 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 회사는 내가 무엇이라도 만들어 볼 수 있었고, 경력 한 줄을 조금 더 있어 보이게 채울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다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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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계약을 연장을 하기로 결정하고 얼마 뒤, 대표님이 나에게 물었다.

"SUN, 혹시 PR 해볼래요?"


마케팅의 ㅁ도 몰랐던 사람이 PR의 P를 알았을 리 없다.

그런 나를 붙잡고 대표님이 말했다.

"왠지 SUN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어리지만 잘 해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이런 말들은 내가 뭐라도 해낼 수 있다는 착각을 준다.

특히 나처럼 핏기가 가득한 사회 초년생에게는 더더욱 큰 착각을 준다.

결국 나는 뭔지도 모르는 그 PR을 해보겠다고 하고 만다.


PR 담당자가 되어 한 첫 일은 우리 회사의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뿌리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어떤 의미를 가진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들 인지도 모른 채 주어진 보도자료를 주어진 리스트에 대량으로 살포했다. 살포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잡지사, 일간지, 주간지를 가리지 않고 보도자료를 보냈고, 몇몇 기자들을 궁금해 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대표님과 미팅이나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여 실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게 되니, 내게 필요해진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명함이었다.

그렇게 PR 담당이 된 나는 내 첫 명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명함에 쓰여있던 내 직함은 "과장"이었다. 과장이라고 붙여줬던 이유는 하나였다. "만만해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이유. 기자를 만날 때 내가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인턴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니까. 그렇게 나는 PR팀 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직함은 꽤 괜찮아 보였다. 친구들을 만나 명함을 내밀 때는 깔깔 웃기도 했다. 과장이라니. 24살, 이제 경력 2개월 차에 접어든 내가 과장이라니.


10년도 더 지난 지금, 나는 직급이 없지만 여느 직급이 있는 회사를 가게 된다면 내 직급은 과장이 될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봤던 기자들, 협력 업체의 경력 많았던 진짜 과장님들은 도대체 이 회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고. 그때의 나는 과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도, 그 이름이 주는 힘도 전혀 몰랐던 그저 풋내기 인턴사원이었다는 걸, 이제야 돌아보며 깨닫게 된다.


그래. 그때는 정말로 몰랐다. 과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그리고 그 이름 아래에서 내가 하게 될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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