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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17. 2024

받아치는 여자 받아주는 여자 4

영수와 현숙의 꽃구경 이야기

영수와 현숙 꽃구경 이야기     

오늘은 현숙과 경주에 꽃구경을 가기로 한 날이다. 

5월의 경주는 불국사 입구 앞에 위치한 불국공원의 겹벚꽃, 첨성대 주변 꽃 단지, 그리고 분황사의 유채꽃밭 등 꽃구경하기 좋은 관광지다. 

지난주 만났을 때 현숙에게 “꽃구경 좋아해?” 하고 물으니 “꽃구경 안 좋아하는 여자도 있나?” 라며 물어보는 영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우리 다음 주에 경주 꽃구경 가자. 불국사 앞 불국공원, 첨성대 등 꽃구경할 곳이 군데군데 있어서 요즘 같이 좋은 계절에는 가서 걸어 다니며 예쁜 꽃구경만 해도 즐거울 것 같아.” 하며 영수가 경주 여행을 제안하자 현숙이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경주로 가는 5월의 고속도로는 가을 단풍시즌 못지않게 산악회와 향우회 등의 관광버스와 가족여행을 하는 자동차로 혼잡하다.

제 속도를 못 내며 달리는 운전자들은 조금이라도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단순히 운전 습관인지 급차선 변경과 끼어들기를 반복하며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여 영수는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운전할 수밖에 없다. 

“영수 씨가 자꾸 급브레이크를 밟으니 몸이 앞뒤로 심하게 흔들려 멀미가 나려 해. 차가 덜 흔들리게 운전 좀 얌전하게 해 줘.” 30분 전부터 인상을 찌푸리던 현숙이 마침내 한마디 한다. 

“나도 편안하게 운전하려는데 다른 차들이 자꾸 급차선 변경하고 끼어들잖아. 브레이크를 안 밟으면 추돌사고가 날 상황인데 어쩔 수 없어. 보면 알 거잖아.” 영수도 운전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반응이 부드럽지 못하다.

“알긴 알겠는데 그래도 좀 편안하게 운전해 줘. 운전자보다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멀미가 더 많이 나는 법이야.” 하며 영수 탓을 한다.

영수는 여자 친구 꽃구경 시켜주려고 도로가 막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감수하며 경주행을 추진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잘못 생각한 게 아닌지 후회가 되려 한다.

“알겠어. 천천히 운전하며 급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최대한 없도록 할게.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다른 차들 끼워주며 양보운전 할게.” 

영수는 도로에서 다른 차 운전자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보다 좁은 차 안에서 현숙과 신경전을 벌이는 게 더 싫어서 천천히 운전하기로 한다.     

예상보다 1시간 이상 더 걸려 도착한 경주는 톨게이트를 통과해도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는데 영수는 1차 목적지로 정한 불국공원으로 가서 주차장을 두 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빈자리를 찾아 주차한다.

“현숙 씨, 이 일대에 겹벚꽃나무가 300그루 이상 있다네. 저기 벚꽃터널로 가보자.” 영수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을 헤치며 현숙을 데리고 가려하자

“영수 씨, 잠깐 여기 앉아 쉬자. 속이 울렁거려 걷지를 못하겠어. 사람들이 많은 곳에 오니 더 어지럽고 힘들어.” 하며 현숙이 주저앉는다. 

“왜 그래? 어디 아파?”하고 영수가 물으니

“차 타고 오면서부터 멀미가 난다고 했잖아. 토할 거 같아.” 하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영수는 이제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는 겹벚꽃나무 명소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솜사탕 같은 꽃송이들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현숙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장시간 운전하고 온 보람을 느끼려 했는데 현숙이 꽃구경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되면서도 속이 상한다.

“커피나 탄산음료 마시면 좀 나아지려나?” 영수가 걱정스레 물으니 현숙이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 하여 영수는 근처에 있는 노점상에 달려가 캔 사이다를 사서 현숙에게 건네준다. 

현숙은 사이다를 마신 후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하더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고 한다.

“좀 괜찮아진다니 다행이네. 그러면 이제 저쪽 벚꽃터널 쪽으로 가보자.” 첨성대와 분황사도 가려고 계획한 영수는 마음이 급하여 빨리 불국공원을 구경하자고 재촉하니 현숙은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울렁거리는 거는 마찬가지라서 사람들 많은 데는 정신없어서 싫어. 조용한 데서 쉬고 싶어.” 한다.

꽃구경 하는 것보다 쉬고 싶다는 현숙의 말에 실망스럽지만 어쩔 수 없어서 영수는 “그러면 불국사로 들어가자. 거기는 겹벚꽃나무가 별로 없어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들었어.” 하며 현숙을 데리고 불국사 경내로 이동한다.

다행히 사람들이 대부분 꽃구경을 하느라 불국공원에 모여 있어서인지 불국사의 경내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영수는 현숙과 함께 사찰 안 산책로도 천천히 걷고 다보탑과 석가탑, 그리고 대웅전도 보며 한 시간을 보낸 후 이제 괜찮아졌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현숙은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건 좀 나아졌는데 힘들어서 더 이상 걷기는 싫어.” 한다.

“그러면 첨성대 꽃단지 구경이랑 분황사 유채꽃밭은 어떡해? 꽃구경하려고 경주까지 막히는 길을 힘들게 운전해서 왔는데 이렇게 그냥 가자고?” 

영수가 현숙을 보며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현숙은 “방금 힘들어서 구경할 기분이 아니라고 했잖아. 나도 여기까지 왔는데 꽃구경 하고 싶어. 그런데 몸이 안 따라 주는 걸 어떡해. 영수 씨는 운전하고 온 게 아까워서 구경하고 싶으면 첨성대 가는 길에 나를 커피숍에 내려줘.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혼자 천천히 구경 다하고 나중에 데리러 와.” 한다.         

큰소리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몸이 불편한 자기를 배려해 주지 않는 영수에게 섭섭해하는 것이 분명한 현숙에게 다시 꽃구경을 가자고 할 엄두가 나지 않는 영수는 경주에 왔으니 유명한 칼국수라도 먹으러 가자고 말머리를 돌리니 현숙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첨성대도 분황사도 아닌 삼릉 근처에 가서 경주 특산물인 우리 밀 칼국수를 먹고 영수는 다시 고속도로를 운전하여 힘들어하는 현숙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온다.

집에 와서 오늘을 생각해 보니 결국 경주에 가서 불국사만 구경하고 칼국수만 먹고 왔는데, 열 번도 넘게 가본 불국사를 굳이 이 꽃구경시즌에 복잡한 고속도로를 달려서 왜 가야 했는지 화가 나서 영수는 앞으로는 절대로 꽃구경을 가지 않겠노라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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