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in Oct 26. 2024

선이야   글쓰기가 뭐시 좋냐고?

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인제 네 글 읽었다. 나도 할 말이 많은디 댓글에다  달믄  되냐?"

"글고 이름은  왜  바꾸냐? 하기사 내가 선인지 ㅇㅇ인지 누가 알겄냐?"

앞전 글 속에 콜라에 밥 말아먹은 것에 대한 항변을 내가 한다

콜라에 밥 말아먹은 것은 너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처음엔 우유에  가볍게 말아먹었는데

네가 콜라에도 먹을 수 있냐 도발해서 먹은 거다 선이가  맞선다.

"내가 더한 것도 말할  게  있는디 너한테는 말 못 해주지."

그러고는  

" 근디  네가 하는 글쓰기가  뭐시 좋은지 한번  말해봐?"

갑자기?

그래서 글로 적겠다 했다.

생각 좀 해봐야 한다

9월부터 시작된  글쓰기는 나의 일상뿐 아니라

내 생각의 중심을  바꾸어 놓았다.



선이야

글쓰기가 종교는 될 수 없어

그렇지만  나를 사랑하고 내 자존감을  세워주는 방편으로

 주신 선물 같은 거야

엄마를 모신 이후로 변변찮은 여행도 한번  못 가

( 너니까 편하게  얘기하는 거야)

엄마를 잠시 맡길 곳도 없어

직장은 직장일  뿐이고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잠시 노래 연습하는 거뿐이었어

그렇다고 나의 상황을  절망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목소리 들었겠지만 여전히 느긋하잖아

딸들이 할머니를 엄마인 나와의 관계를  배제하고

각자 자신들을 키워 주신 분으로  돌보는

모습은 정말 위로가 되더라

나 혼자만의 돌봄이 아니라  딸들이

 같은 마음이 되어준 사실이 항상 뭉클하고 고마웠어

그렇지만 집안 일과 돌봄을 해내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었을까?


어느 날 느닷없이 내게  온 글쓰기가 그래서  선물 같았어

방금도 화장실에  앉으신 엄마 기저귀 갈고 옷 입히고 왔어

이런  하찮은 일들이 글로  표현될 때  의미를 가지게 돼


흐르는 시간들을 잠시 멈출 수 있게 해 주는 게  글쓰기야

내 글을 본  너랑 오늘  통화했잖아  

너희 언니 흉도 보고 내가 맞장구 쳐주고

너희 엄마 키도 많이 줄었단 얘기도 듣고

우리가 일흔쯤 돼서 이 글을 보면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겠지


내가 발견한 글쓰기는 좀 더 괜찮은 나를  앞장 세워  보내

함부로 뱉었던 말, 배려 없는 행동들을 조심하게 돼

가식이 아니고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언어로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어

거창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글쓰기를 할수록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


그리고 정말 좋은 게  뭔 줄 알아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역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연과 사건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네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지니게 되고

 심지어 무생물조차도

생명을 가지고 호흡을 시작하게 될 수 있어.


한 달  남 짓  매일 글을 쓴  나의 소회라고도 할 수 있어

이것들을  발견했는데  내가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어제의 것들이  어제의 그것들이 아닌 발견

모든 것들이 글이 되어 살아 움직이는 거 같아

자투리 시간이나 늦은 저녁에 글을 써야 하지만

쓰는 즐거움은  당분간 계속될 거


글을 통해 만난 친구들은  덤이지

글쓰기가 선물이라면 친구들은 1+1이야

사은품이 아닌 하나 더 선물

그만큼 글 쓰는 친구들은  배려 깊고 좋은 사람들이야

<부산시 동구 이바구길>


저녁을 먹을 때 선이에게서  전화가 왔고

잠시 글을 쓰려는데 엄마가 식탁으로 나와서 마주 앉는다

오늘 명료하시다

꿈을 꾸셨단다  집을 비워달라고  불한당들이 왔는데 절대 안 비워 주셨다고

느그 아부지 고집쟁이, 나 고집쟁이 그래서 집을 지켰다 하신다

기분이 좋으시다.

오랜만에 또렷하게 말씀을 많이 하신다

큰 오빠한테  전화해 줘야 하나? 엄마가 모처럼 또렷하시다고

이내 주무시러  들어 가신다


따로 조용한 방에 조용한  시간에 글을 쓸 여건이 안된다

새벽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게 새벽은 건빵 속 별사탕처럼 한 번씩만  찾아오는 미라클이다

새벽은 정말  자신이 없다.


사람은  적응해 간다

매일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글 쓰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다

내 나이가 어떠하든 지금 쓸 수 있는 복을  주심에 감사하는 저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