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인제 네 글 읽었다. 나도 할 말이 많은디 댓글에다 달믄 되냐?"
"글고 이름은 왜 바꾸냐? 하기사 내가 선인지 ㅇㅇ인지 누가 알겄냐?"
앞전 글 속에 콜라에 밥 말아먹은 것에 대한 항변을 내가 한다
콜라에 밥 말아먹은 것은 너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처음엔 우유에 가볍게 말아먹었는데
네가 콜라에도 먹을 수 있냐 도발해서 먹은 거다 선이가 맞선다.
"내가 더한 것도 말할 게 있는디 너한테는 말 못 해주지."
그러고는
" 근디 네가 하는 글쓰기가 뭐시 좋은지 한번 말해봐?"
갑자기?
그래서 글로 적겠다 했다.
생각 좀 해봐야 한다
9월부터 시작된 글쓰기는 나의 일상뿐 아니라
내 생각의 중심을 바꾸어 놓았다.
선이야
글쓰기가 종교는 될 수 없어
그렇지만 나를 사랑하고 내 자존감을 세워주는 방편으로
주신 선물 같은 거야
엄마를 모신 이후로 변변찮은 여행도 한번 못 가
( 너니까 편하게 얘기하는 거야)
엄마를 잠시 맡길 곳도 없어
직장은 직장일 뿐이고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잠시 노래 연습하는 거뿐이었어
그렇다고 나의 상황을 절망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목소리 들었겠지만 여전히 느긋하잖아
딸들이 할머니를 엄마인 나와의 관계를 배제하고
각자 자신들을 키워 주신 분으로 돌보는
모습은 정말 위로가 되더라
나 혼자만의 돌봄이 아니라 딸들이
같은 마음이 되어준 사실이 항상 뭉클하고 고마웠어
그렇지만 집안 일과 돌봄을 해내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었을까?
어느 날 느닷없이 내게 온 글쓰기가 그래서 선물 같았어
방금도 화장실에 앉으신 엄마 기저귀 갈고 옷 입히고 왔어
이런 하찮은 일들이 글로 표현될 때 의미를 가지게 돼
흐르는 시간들을 잠시 멈출 수 있게 해 주는 게 글쓰기야
내 글을 본 너랑 오늘 통화했잖아
너희 언니 흉도 보고 내가 맞장구 쳐주고
너희 엄마 키도 많이 줄었단 얘기도 듣고
우리가 일흔쯤 돼서 이 글을 보면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겠지
내가 발견한 글쓰기는 좀 더 괜찮은 나를 앞장 세워 보내
함부로 뱉었던 말, 배려 없는 행동들을 조심하게 돼
가식이 아니고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언어로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어
거창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글쓰기를 할수록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
그리고 정말 좋은 게 뭔 줄 알아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역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연과 사건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네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지니게 되고
심지어 무생물조차도
생명을 가지고 호흡을 시작하게 될 수 있어.
한 달 남 짓 매일 글을 쓴 나의 소회라고도 할 수 있어
이것들을 발견했는데 내가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어제의 것들이 어제의 그것들이 아닌 발견
모든 것들이 글이 되어 살아 움직이는 거 같아
자투리 시간이나 늦은 저녁에 글을 써야 하지만
쓰는 즐거움은 당분간 계속될 거야
글을 통해 만난 친구들은 덤이지
글쓰기가 선물이라면 친구들은 1+1이야
사은품이 아닌 하나 더 선물
그만큼 글 쓰는 친구들은 배려 깊고 좋은 사람들이야
<부산시 동구 이바구길>
저녁을 먹을 때 선이에게서 전화가 왔고
잠시 글을 쓰려는데 엄마가 식탁으로 나와서 마주 앉는다
오늘 명료하시다
꿈을 꾸셨단다 집을 비워달라고 불한당들이 왔는데 절대 안 비워 주셨다고
느그 아부지 고집쟁이, 나 고집쟁이 그래서 집을 지켰다 하신다
기분이 좋으시다.
오랜만에 또렷하게 말씀을 많이 하신다
큰 오빠한테 전화해 줘야 하나? 엄마가 모처럼 또렷하시다고
이내 주무시러 들어 가신다
따로 조용한 방에 조용한 시간에 글을 쓸 여건이 안된다
새벽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게 새벽은 건빵 속 별사탕처럼 한 번씩만 찾아오는 미라클이다
새벽은 정말 자신이 없다.
사람은 적응해 간다
매일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글 쓰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다
내 나이가 어떠하든 지금 쓸 수 있는 복을 주심에 감사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