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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임 Dec 07. 2024

고전소설의 퀴어 코드

<하진양문록>의 동성애 감성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부인 순빈봉씨(純嬪奉氏)가 궁녀와 동성연애한 일로 폐출된 사건은 유명하다. 세자빈 순빈봉씨가 궁녀 소쌍(召雙)을 밤마다 불러들여 동침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소쌍을 심문한 결과 그것이 사실이라는 자백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세자빈은 이를 극구 부인한다. 오히려 소쌍이 다른 궁인인 단지와 한낮에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둘이 사랑하는 사이이지 자신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종은 관련 증좌가 많다고 꾸짖고, 궁녀들 사이 동성연애가 횡행한다는 소문에 그것을 엄히 금했는데 세자빈이 어찌 그런 풍습을 본받느냐 개탄하며 봉씨를 폐출시킨다. 이 역사적 사건은 ‘왕가+동성애’라는 충격성 때문인지 여러 매체에서 자주 다뤄졌고 현대 작가들에 의해 소설로도 재탄생하고 있다.     


세종이 세자빈 폐출 근거로 언급한 사항은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잘못으로 꼽은 것은 소쌍과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는 것으로, 세자빈이 소쌍에게 요구한 성적 행위가 『조선왕조실록』(세종 18년 병진, 1436년 10월 26일 기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세종은 정작 가장 문제시했던 세자빈의 동성애 혐의를 폐위 교지에서는 제외시키라 명한다. “봉씨가 궁궐의 여종과 동숙한 일은 매우 추하므로 교지에 기재할 수 없다(奉氏與宮婢同宿之事極醜, 不可載於敎旨.)”는 이유에서이다.


이 사건은 조선 사회가 동성애를 어떻게 인식하고 다루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금기시된 동시에 공공연하게 죄상을 밝혀 엄중히 징계할 수조차 없는,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부재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유교적 음양론은 남녀관계를 음양의 결합으로 여긴 까닭에 동성애는 음양의 조화를 깨뜨리는 불온한 것,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의 중국, 일본 등 이웃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차이나는 점으로, 중국의 명청시대나 일본의 에도시대에는 동성애 문화가 공공연히 존재했다. 조선 문인들은 사신 행차에서 그 문화를 접하고 놀라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이 1719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며 남긴 <해유록>에는 조선통으로 유명한 일본 학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와 교류한 기록이 많은데, 일본 동성애 문화에 대해 그와 대화한 내용도 나온다.     


“귀국의 풍속이 괴이하다 하겠습니다. 남녀의 정욕은 본래 천지 음양의 이치에서 나온 것이니, 천하가 동일한 바이나 오히려 음란하고 미혹하는 것을 경계하는데, 어찌 양(陽)만 있고 음(陰)은 없이 서로 느끼고 좋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였다. 그가 웃으며, “학사(學士)는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하였다. 아메노모리 호슈와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도 오히려 그와 같은 것을 보면 그 나라 풍속의 미혹함을 알 수 있겠다.
신유한, <해유록>      


이와 같은 인식은 문학의 영역에도 이어진다. 중국, 일본과 달리 조선시대 본격적인 퀴어 문학이라 이를 만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야담, 야사류에 남성 간 성적 관계가 희화화되어 그려지거나, 19세기 동성애 관계가 포착되는 한문산문이 발견된 정도이다.     


그런데 조선의 소설 가운데는 노골적이지 않지만 퀴어 코드로 읽히는 작품이나, 퀴어 소재가 등장한 사례들이 종종 발견된다. <방한림전>에는 남장한 여성과 그 정체를 알고도 그와 혼인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두 사람 사이 로맨스가 명확히 그려져 있진 않지만, 이들의 동성혼을 당대 은폐되어 있던 동성애의 소설적 표현이라 읽기도 한다.(김경미, 2008)      


또한 고전소설 가운데 가장 보수적 장르라 여겨지는 한글장편소설에 퀴어 코드가 나타난 장면들이 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여기서는 19세기 향유된 소설 <하진양문록>(29권 29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진양문록>의 주인공 하옥윤과 진세백은 정혼한 사이이다. 하옥윤의 부친이 지역 순행 중, 조실부모하여 갈 데 없이 유랑하던 진세백을 만나 그 인물됨을 알아보고 딸 하옥윤과 정혼시킨다. 그런데 하옥윤 계모 주씨가 정혼을 깨뜨리려 진세백을 음해하자, 하옥윤이 재빨리 진세백을 피신시키고 자신 역시 수절하기 위해 물에 투신한다. 이렇게 둘은 이별을 맞게 된다. 세월이 흘러 진세위라 이름을 바꾼 진세백은 장원급제하여 천자의 총애받는 신하가 되고, 하옥윤을 찾지만 이미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런데 사실 하옥윤은 투신한 당시 선계 도사에게 구해져서 법선관에 머물며 학문과 무예를 닦고 있었다. 그렇게 삼 년을 지내고 가문의 명성을 되찾고자 하재옥으로 개명해 남장을 한 후 벼슬길에 오른다.      


두 사람은 과거를 위해 상경하는 길에 우연히 만난다. 남장한 하재옥이 자신의 정혼자 하옥윤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진세백은, 그러나 그 수려한 모습에 재삼 호감을 느껴 하재옥과 의형제를 맺고, 함께 전쟁에 출정해 전우애를 다지기도 한다. 그런데 진세백은 점차 하재옥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함께 술을 마시던 어느 날, 진세백은 취중에 끓어오르는 정념을 표출하고 만다. 하재옥에게 자신의 정혼자 하옥윤과 닮았다며 “그대 어찌 여자가 되지 못하냐” 타박 아닌 타박을 하기도 하고, “이대로 늘 함께 지냄이 어떻겠냐”는 말도 한다. 이윽고 손을 잡고 허리를 안으며 얼굴을 가까이 맞댄다. 이 같은 장면들은 서사가 전개되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다음은 진세백이 하재옥에게 하는 말들이다.       


진세백의 마음이 무르녹는지라, 하재옥의 옥수(玉手)를 잡고 얼굴을 맞대 뺨을 비비다가 가는 허리 후리쳐 안고 넋을 잃더니, 이윽고 웃어 왈, “소제(진세백)가 사람을 많이 겪어보았으되 형(하재옥) 같은 이는 보지 못했으니, 하늘이 진세백을 밉게 여기시고 조화옹이 요란스레 그대 남자로 만들었으니 세백의 애를 끓는도다.”
<하진양문록> 9권 18면.     
“사람의 정을 굳이 막으니 매몰차도다. 우리 피차 남녀로 대한다면 혹 혐의 될까 하지만 둘 다 팔 척 남자라. 얼굴 맞대 뺨을 비비고 옷을 벗어 함께 누운들 무슨 관계있으며 살을 접해 부부라 칭한들 무슨 혐의되리오? 그대를 보면 한없이 마음이 호탕해지고 정신이 어질하니 어찌 무심히 지내리오?”
<하진양문록> 9권 24면     
“너로서 남복을 바꿔 규방 미인의 모양으로 만들어 나의 정인(情人)을 삼으리라.”
<하진양문록> 9권 28면.      


진세백이 하재옥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는 성애적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하재옥에 대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손을 잡는 것은 물론 허리를 껴안거나 뺨을 비빈다. 어찌 여자가 아니냐 타박하다가도, 그저 함께 살자 하거나, 맨몸으로 살을 접하고 부부라 칭한들 무슨 상관이겠냐, 혹은 남복을 바꿔 입혀 정인으로 삼겠다 말하기도 한다.      


<하진양문록>은 고전소설 가운데 성애적 장면 묘사가 풍부한 편이다. 이후 하재옥이 사실은 진세백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정혼자 하옥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는 더 농밀한 장면들이 나오는데, 소절 전반의 성애적 분위기가 남성간 관계가 표상된 상황에서도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장면들은 기실 남녀의 러브신이라 할 수 있다. 남장한 하재옥은 여성인 하옥윤이고, 그 사실을 진세백만 모를 뿐 서술자도 독자도 모두 알고 있다. 때문에 독자들은 진세백이 언제 하재옥의 정체를 알게 될까 흥미진진하게 기대하며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읽어갈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전생이 남녀가 아니라 남남 관계로 설정되어 있어 이 서사는 동성애를 더욱 강하게 환기시킨다.      


전생 이야기에 따르면, 하옥윤은 천상계의 매화선이었는데 문곡성(진세백)과 바둑을 두며 함께 속세에 내려가 부부가 되면 좋겠다는 희롱을 하고, 이 일로 인간 세상에 마음을 품었다는 죄를 입어 속세로 쫓겨났다는 것이다. 둘의 인연은 전생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전생에는 남녀가 아니라 남남의 관계였다. 이들의 대화에 노한 옥황상제가 벌을 내려 적강하게 되었다지만, 결과적으로 현세에서는 선계에서 그들이 가졌던 욕망, 동성으로 만났지만 인간 세상에서 부부로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실현된 것이다. 매화선과 문곡성의 서사로 이 작품을 본다면 그들의 동성애가 다음 생에서, 그 세계에 허용되는 방식으로 실현된 것이라 읽을 수 있다.      


남장을 한 여성이 남성인물과 러브스토리를 전개하는 설정은 매력적인 만큼 대중콘텐츠에서 자주 활용된다. <커피프린스 1호점>(2007년)이나 <바람의 화원>(2008년), <성균관스캔들>(2010년)과 같은 드라마도 이와 같은 설정에 기대어 로맨스적 긴장과 애틋함을 극대화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동성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 감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고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표출하고야 마는 남성인물들은, 성별을 초월할 정도의 강렬한 사랑에 빠짐으로써 로맨틱 히어로가 된다. 남장은 결국 해제되고 남과 여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이 드라마들은 이성애적 러브 스토리로 끝이 난다. 그러면서 남남으로 표상되었던 연애 장면은 드라마적 흥미 요소의 하나로 자리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들이 방영되었던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드라마에서 환기된 동성애 코드를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하다. 오늘날에야 동성애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퀴어 콘텐츠가 넘쳐나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퀴어’는 우리나라 대중매체에서 어려워하는 주제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상파 드라마의 남장 여성의 등장, 남남으로 표상된 러브스토리의 전개는 시청자들 사이에 동성애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평론계나 학계에서 역시 그 지점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했다. 이러한 현상들은 그 드라마들이 내포한 동성애 코드가 작품 향유에 있어 중요한 감상 지점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회가 금기시하는 동성애 코드를 소재적 차원으로나마 감각적으로 다룸으로써 시청자에게 긴장감 있으면서도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고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불과 20년, 10여 년 전의 작품도 이러한데 조선의 소설인 <하진양문록>의 남장여자의 등장, 남남으로 표상된 러브스토리의 전개는 더욱 강력하게 당대 금기를 위반하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우선 내외법(여성의 외출을 제약하고 이성과의 만남을 금지한 규범)에 종속된 여성이 남장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내외법을 위반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발생한 이성과의 만남은 서사적으로 정당화된다. 그런데 이때 남성인 하재옥(실은 여성인 하옥윤)에게 진세백이 사랑을 느끼는 장면이 상세하게 형상화되면서 그것은 이성애와 동성애를 이중으로 표상하고, 여성의 혼전 연애와 동성애라는 금기 사항을 동시에 위반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중층적으로 이뤄지는 금기의 위반은 당대 지배 질서의 가치와 결합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위태로운 설정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한다. 내외법의 위반은 결국 굳건한 정절 이념과 연결되면서, 동성간 사랑은 실은 하재옥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음양의 조화가 재확인되면서 이야기의 위험성은 무마된다. 금기를 위반하는 설정이 마련되지만 위반의 강도가 오락적으로 향유될 만큼 안전한 수준으로 조절되므로 독자들은 안심하고 소설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동성애’라는, 오늘날에도 논쟁적인 소재가 지닌 사회적, 정치적 함의가 약화되고 문제성이 탈각되면서 이토록 위험한 이야기가 당대 유통될 수 있었다.     


논쟁적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진지하지 않고 가볍고 유희적일 때 비판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급진적 소재가 오락성을 등에 업고 독자들을 매혹할 때 얻어지는 효용이 있다. 오락적 향유의 방식은 당대 사회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소재와 주제를 시대에 앞서 내어놓기 좋은 방편이기도 하거니와, 반감을 최소화하며 그 향유의 저변을 확대시키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감성이 실존했을 것이나 표현될 공간을 얻지 못했던 조선에서, 단편적으로나마 동성애적 감성이 그려짐으로써 사랑을 향유하는 지평이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을까. 숨죽이며 동성에게 매료되었던 이들이 이런 장면에서 반가움과 쾌감을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참고자료

『하진양문록』 동앙문고본 29권 29책.(이대형 교주, 이회문화사, 2004)

고은임, 「한글장편소설의 동성애적 감성 형상화 장면-<소현성록>, <하진양문록>, <명행정의록>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구』 66, 민족문학사연구소, 2018

김경미, 「젠더 위반에 대한 조선사회의 새로운 상상-<방한림전>」, �한국고전연구� 17집, 한국고전연구학회, 2008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main/main.do)

신유한, 『해유록』,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79A_0030_040_0010_2003_001_XML)

커버 이미지 : 사진: UnsplashMercedes Me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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