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다시피 조선은 신분제가 작동하는 왕정국가였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민본사상을 근간에 둔 유교를 국교로 삼았지만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구분은 명확했고 백성은 어디까지나 통치의 객체, 시혜적 대상으로 여겨졌다.
백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조선후기 실학파 학자들에게서 발견된다. 특히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원목>과 <탕론>에서 군주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도, 군주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도 백성이라는 점을 표명하며 민권사상의 단초를 제시했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있는가?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있는가?
백성은 곡식과 옷감을 생산하여 목민관을 섬기고, 말과 수레, 마부와 종을 내어 그들을 환영하고 전송하며, 자신들의 고혈과 진수를 뽑아내어 그들을 살찌우니, 백성은 목민관을 위해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있다.
아득한 옛날에는 백성들만 있었을 뿐, 목민관이 있었겠는가? 백성들은 평화롭게 모여 살았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이웃과 다툼이 있었는데 해결이 되지 않았다. 공정한 말을 잘하는 노인이 있어, 그 노인에게 가서 바로잡았다. 사방의 이웃들이 모두 감복하고 다 함께 그를 추대하여 ‘이정’(里正: 마을을 바로잡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여러 마을[里]의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는데 해결이 되지 않았다. 뛰어나고 식견이 많은 어떤 노인이 있어, 그 노인에게 가서 바로잡았다. 여러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고 다 함께 그를 추대하여 ‘당정’(黨正: 고을을 바로잡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여러 고을[黨]의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는데 해결이 되지 않았다. 현명하고 덕이 있는 어떤 노인이 있어, 그 노인에게 가서 바로잡았다. 여러 고을이 모두 감복하여 그를 추대하여 ‘주장’(州長: 지역의 어른)이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지역[州]의 우두머리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국군’(國君)이라고 하였고, 여러 나라의 우두머리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방백’(方伯)이라 하였으며, 사방의 방백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우두머리로 삼고 그를 ‘황왕’(皇王: 천자)이라고 하였다. 따져 보면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 비롯된 것인바,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정이 백성들의 바람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당정에게 올렸다. 당정은 백성들의 바람에 따라 법을 제정하여 주장에게 올렸다. 주장은 국군에게 올리고, 국군은 황왕에게 올렸다. 그러므로 그 법은 모두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정약용, <원목(原牧)>
태곳적 사람들 사이 갈등을 조정하는 공동체 대표를 뽑게 된 상황을 상정하며, 통치자는 백성에 의해 추대된 것이며 모든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유를 단호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군주의 지위는 백성의 뜻에 의해 박탈할 수도 있는 것이 된다.
천자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하늘에서 내려와 천자가 되었는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나 천자가 되었는가?
천자가 생겨난 연원을 따져 보자. 다섯 집이 1린(隣)인데, 다섯 집에서 수장으로 추대한 사람이 인장(隣長)이 된다. 5린이 1리(里)인데, 5린에서 수장으로 추대한 사람이 이장(里長)이 된다. 5비(鄙)가 1현(縣)인데, 5비에서 수장으로 추대한 사람이 현장(縣長)이 된다. 여러 현장이 함께 추대한 자가 제후가 되며, 제후들이 함께 추대한 자가 천자가 된다. 그러니 천자는 뭇사람이 추대하여 된 자다.
뭇사람이 추대하여 수장이 되었으니, 뭇사람이 추대하지 않으면 수장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섯 집이 협의가 잘되지 않으면 다섯 집이 의논하여 인장을 바꾼다. 5린이 협의가 잘되지 않으면 스물다섯 집이 의논하여 이장을 바꾼다. 모든 제후가 협의가 잘되지 않으면 그들이 의논하여 천자를 바꾼다. 모든 제후가 천자를 바꾸는 것은 다섯 집이 인장을 바꾸고, 스물다섯 집이 이장을 바꾸는 것과 같으니, 누가 감히 신하가 임금을 내쳤다고 말하겠는가?
(…)
깃대를 잡은 자가 절도에 맞게 지휘를 잘하면 무리들이 그를 존경하여 ‘우리의 지도자’라고 부른다. 깃대를 잡은 자가 지휘를 잘하지 못하면 무리들은 그를 끌어내려 이전의 위치로 복귀시킨다. 그리고 유능한 자를 다시 선발하여 선두에 끌어올리고 ‘우리의 지도자’라고 부른다. 지휘하는 자를 끌어내리는 것도 무리들이고 끌어올리는 것도 무리들이다. 끌어올리는 것은 괜찮고, 끌어내려 교체하는 것은 죄가 된다면 어찌 이치에 맞는 것이겠는가?
정약용, <탕론(湯論)>
천부인권사상이 보편화되고 민주주의 체제가 익숙한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신분에 따른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충(忠) 이념이 강고한 조선사회에서 백성이 군주를 끌어낼 수 있다는 논의는 실로 놀랍다.
반대로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뜻을 대의(代議) 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국민 75%가 찬성한다는 사안을 가결하지 않는 것 역시 놀랍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일당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한 질서 있는 퇴진은 탄핵으로부터 시작될 듯한데, 오늘, 지켜볼 일이다.
*참고자료
박혜숙 편역, 『다산의 마음-정약용 산문 선집』, 돌베개,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