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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 Dec 29. 2024

한강의 소설로 되짚는 계엄의 사태와 우리들

[에세이]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기억과 행동의 유기성

역사의 비극이 기억처럼 돌출되는 행동들
내란 사태에서 시민의 역할은 두드러지고
인간다움의 되새김, 그리고 공동체 양식의 다변화


과거는 기록되는 것을 넘어,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창이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과거의 비극적 사건을 통해 오늘날 인간성과 공동체의 본질을 성찰한다. 이들 작품은 역사의 고통을 관통하며, 기억과 연대를 통한 치유의 가능성을 찾는다. 고통은 개인만의 무게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이해될 때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한강의 서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의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이름 없는 이들의 고통과 희생을 조명한다.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의 침묵 속에서 더 큰 외침이 울려 퍼진다. 소설은 인간의 존엄성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 빚어낸 결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폭력과 부조리를 경고한다.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도 4·3의 죽음과 기억을 통해 삶의 본질을 천착하는 작품이다. 소설에서 ‘작별’은 사전적 이별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한강은 죽음의 무게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진 책임과 그 책임이 만들어내는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이는 비극적 사건의 상처를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새롭게 치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강의 소설에서 고통은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열쇠로 작용한다. 고통은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본질과 인간다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과정이다. <소년이 온다>는 억압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려줌으로써 독자에게 현재의 부조리를 직시하게 한다. 광주는 공동체의 붕괴와 재건을 상징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갈등은 외형적으로 과거와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여전히 인간 사이의 분열과 폭력이다. 이번 내란은 비록 총성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뿐, 억압과 살상, 심리적 파괴의 기저는 충분히 계획되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폭력의 근원을 고찰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억과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작품에서 한강은,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기억의 영역에서 회복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한강의 서사는 희망의 가능성을 실천적 과제로 제시한다. <소년이 온다>에서의 희망은 비극 속에서도 불씨처럼 꺼지지 않는다. 이는 부박하거나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희망이다. 고통과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전환점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서사는 현재의 사회적 문제와도 맞닿는다.


기억은 한강의 작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죽음이 인간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 기억은 과거를 반복하거나 복기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책임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비극을 기억함으로써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을 의지를 얻는다. 작품은 이러한 기억의 책임을 통해 독자에게 공동체와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는다.


비극은 인간 존재의 필연적 부분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파괴하는지, 아니면 더욱 강하게 만드는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선택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창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작품들은 고통의 흔적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재건과 윤리적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소년이 온다>에서 그려진 광주의 비극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에 머물지 않으며,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인간성을 시험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이로써 작가는 독자에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책임을 묵직하게 상기시킨다. 소설은 사회적 갈등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어떻게 공동체의 윤리적 의무로 연결되는지를 제공한다. 이러한 성찰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더 깊어지는데, 작별은 이별이 아니라 고통과 기억을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과정이다.


12월 28일, 광화문의 윤석열 탄핵 시민 집회 현장에서



인간사에 수두룩했던 비극은 물리적 폭력에 더해 심리적 상처로도 작동한다. 한강의 작품들은 보이지 않는 폭력의 본질까지 아우르며,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그렇기에 현재를 위한 경고이며, 미래를 위한 교훈이다. 기억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원리일 뿐 아니라, 공동체를 재건하는 책임의 출발점이다. 한강은 이러한 기억의 책임을 독자에게 묵직하게 전한다.


한강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시사점은 인간다움의 복원이다. 희망은 단순히 긍정적 사고의 결과물이 아니라, 고통과 대면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본질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비극 속에서도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상처를 함께 나누며, 더 나은 삶을 설계할 가능성을 드러낸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는 갈등과 폭력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비극과 희망의 교차점을 통해 인간 역사의 깊이를 조망한다. 이들 작품은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윤리적 질문으로 전환하며, 우리가 기억 속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연대와 책임의 본질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과거의 비극은 반복된다는 경고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반석이다. 한강은 독자에게 이 반석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사유와 성찰의 깊이를 보태준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굴레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다시 빛나게 하는 과정이다. 한강의 소설은 고통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과 남는 것들 사이의 균형이자 불가분성의 관계를 유도한다. 그리하여 현재 진행형의 내란 사태에서 시민의 생각과 행동은 비극을 목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억과 역사를 책임으로 전환하여 연대를 실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극 속에서도 치유와 연대를 찾아가는 한강의 서사는 고통의 반복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묵직하게 비춘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사유를 넘어, 시대와 인간다움에 대한 실천적 선언이자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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