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비폭력과 신명의 정치, 지금의 광장이 있기까지
군부독재에 맞선 폭력의 저항이 이룩한 광장의 주권
2017년과 2024년 광장은 평화와 참여의 가치 입증
젊은 세대 재치 있고 신명 나게, 공유된 광장 만들자
눈앞에 이른 윤석열 체포…새 정치적 가능성 열릴 것
▶ 지금의 광장이 있기까지
우리의 근현대사는 처절한 잿빛과 피의 기록 위에서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억압 속에서도 민중의 숨결은 끊이지 않고, 암흑 속에서 살아남은 들꽃처럼 뚜렷한 저항의 빛을 발했다. 그 빛은 생존을 넘어 삶의 존엄과 자유, 독립을 갈망하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조국의 해방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세우기 위한 대담한 비전과 실천이었다. 그들은 지식인, 농민, 노동자, 청년 등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며 시대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숨소리마저 의심하며 방아쇠를 조준했던 치열한 항일 전선은 지금에도 더 벅찬 불굴의 자유를 체감하게 한다. 이들의 희생과 투쟁은 한때의 과거로 박제되지 않으며, 현재와 미래에 이르는 우리의 가치관과 정신적 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립운동은 항쟁의 역사적 기록이되, 더 나은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고 세계로 도약하려는 의지가 함양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4.19 민중항쟁이 있었다. 5.16 군사 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강탈하며 민주주의의 숨통을 틀어막았지만, 민중의 저항 의지는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거리와 골목, 공장, 그리고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시민들과 학생, 노동자는 폭압에 맞서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는 시대마다 형태와 강도가 달랐으나, 어둠의 최극단을 직시하며 일군 숨통이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1980년 5월 17일의 밤은 무섭고도 길었다.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이 정당성을 가장한 채 일상을 침탈했고 수많은 인명이 사살되었다. 아니면 체포되거나 의문사로 사라졌다. 그러나 진실을 갈망하는 저항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 새로워질 세상을 꿈꾸었고, 그 희생은 진보를 향한 역사적 힘이 되었다.
이때까지의 저항은 필연의 폭력 -3.1운동 이후의 무장화, 전태일 열사의 편지 이후 분신, 거리 위에서 화염병 등장-을 낳으며 승화했다. 이는 상황을 통찰하는 뼈아픈 반발이되, 억압에 맞선 지속적인 진화의 과정이었다. 80~90년대의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진 이 흐름은 저항의 메커니즘이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발전하는 통과의례이면서 기폭제가 되었다.
2017년 촛불 저항은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압박하며 실현하도록 견인했다. 2024년에는 이러한 평화적 저항의 정신이 더욱 성숙한 형태로 나타났다. 분노는 희망으로 전환되었고 응원봉과 노래, 춤은 일상의 현상이 평화의 언어로써,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도구로 변환했다. 2017년과 2024년은 비폭력을 근간으로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중요한 사례이며, 평화와 참여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입증했다.
▶ 투쟁의 진화, 광장은 우리의 것
우리의 헌정은 법과 제도를 섣부르게 치장하는 문구의 집합체로 국한되지 않는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저항의 결과물임을 새삼 논할 필요는 없겠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평화는 역사에서 전개된 투쟁이자 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비폭력적 저항의 광장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가.
이로써 광장을 채우는 우리에게 주요한 임무가 제기된다. 80~90년대를 누볐던 세대는 자신들이 훌륭하게 싸워 이룩한 공간이라고 이를 독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세대와 공유하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더없는 희생으로 만들어진 역사의 광장을 어렴풋한 추억의 장소로 희화화하는 게 아니라, 시대를 재창조하는 변천의 장으로 승계될 단계임을 수용하는 일이다.
젊은 세대는 이 광장에 무임승차 하지 않고, 자신의 세대에 독보적인 다짐을 실현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소설과 영화, 모바일 콘텐츠에서도 역사를 배우고 교훈을 얻어, 자신들만의 정치적 지형도를 펼치겠다는 담대한 목표를 품고자 한다. 평화의 광장에서 갈등의 고리에서 근원을 논의하고, 미래를 설계할 장으로 탈바꿈시킬 과제가 남는다. 과거의 투쟁이 현재와 미래를 잇는 가교라면, 2030세대는 이를 토대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는 다양한 인간 존재의 존엄을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펼쳐 나갈 짐을 지게 됐다. 자신들만의 정치적 지형도를 설계하며, 비록 구체적인 성취는 더딜지라도, 우리도 여기에 동행할 의무가 생겼다. 모두가 함께해야 할 과업이며 필연적인 생존의 자기 존엄이다. 평화의 광장은 젊은이에게 새로운 담론을 나누고 미래를 설계하는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모두의 자유로운 성장이 각자의 존엄을 이루는 바탕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는, 시대를 초월한 지혜이다. 젊은 세대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는 결코 개인만의 짐이거나 무능력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삶을 둘러싼 구조적 틀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고립된 몸부림이 아닌 연대의 손길이다. 이를 증명하는 새로운 길은 이제 시작이다.
평화의 광장은 항의의 장이면서, 함께하는 대화와 토론으로 서로를 결속하며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성채를 쌓는 공간이다.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설계하는 터전으로써 기틀을 다져야 한다. 이곳에서 우리의 의지는 더 나은 진리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다시 보태자면 분리된 존재들이 아닌, 서로를 지탱하며 성장하는 세상을 꿈꾸는 광장에서 새로운 체제마저 일궈내는 행진을 만들어야 한다.
▶ 전에 없던 결과 창출을 위해
3일 비록 윤석열의 체포가 불발되었지만, 기어이 실행될 것이다. 순리의 결과와 시간은 언제나 임박해 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의 체포에 이어질 구속과 심판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정치적 적폐에 대한 국민적 요구이다. 이제 국민은 정치적 정의를 향해 무한한 발걸음을 내디디며, 수구적 극우의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의힘과 같은 기존 정치 구조를 타파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내란 비호 정당의 해산을 넘어, 정치 시스템의 재편을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적 갈망과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더 많은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한다. 광장은 저항의 공간으로 안주할 수 없으며, 미래를 설계하는 연대와 창조까지 잇닿아야 한다. 정치적 진영의 재구축을 넘어, 전에 없던 제도의 창출까지 설정하는 일도 우리가 직면한 과제임을 의식하자.
피아의 대립이 분명하다는 현재의 진단은, 정당하지 못한 세력을 잉태한 본질까지 뚫고 들어가 말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아울러 이후의 과제를 더 선명하게 덧입히는 심적·의지적 동기이자 행동이 유발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것이 광장의 정치이자 속결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