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다은 Dec 11. 2024

확증 편향의 늪

[에세이] 검찰 문화와 자기도취


지난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의 심장에 비수가 꽂히는 듯한 선포가 있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자유 헌정 질서를 수호하겠다는 명분 아래 이루어졌다. 계엄령은 6시간 만에 해제되었으나, 그 짧은 시간은 한국 사회를 깊이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한 지도자의 내면과 시대의 불안이 낳은 비극이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위험성   


윤석열의 결정은 그가 소비한 정보와 정신적 상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극우 유튜브 채널에 지나치게 의존한 그의 행동은 확증 편향이라는 깊은 늪으로 빠져 들었다.

확증 편향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심리적 함정이다. 갈라진 거울에 비친 왜곡된 세상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거짓된 진실은 혼란을 낳고, 결국 파멸로 치닫는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질 때, 사회는 혼돈 속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윤석열의 판단력은 오로지 한 지점에 머물렀고 결국 단 하나의 선택을 결행했다. 이는 한 개인의 잘못을 넘어,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한 문제로 이어졌다.     


지도자가 객관적 현실을 외면하고 편향된 정보만을 좇을 때, 결과는 국민의 고통과 민주주의의 위기로 되돌아온다. 더욱 우려되는 현실은 그 스스로가 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대통령 탄생에 이바지했던 자칭 보수, 국민의힘조차 지금의 사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역량마저 없다는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라는 울창한 숲에 불을 놓는 행위였다. 숲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질식하기 직전까지 내몰았다. 민주주의는 나무와 같으며, 그 뿌리는 국민의 신뢰에 의지한다.          



검찰 권한의 무소불위     


그의 선택이 왜 이토록 극단으로 치달았을까? 개인의 편향을 넘어, 그가 몸담았던 한국 검찰 조직의 구조적 특성에 연유한다.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며, 자신들의 판단을 절대적인 진실로 믿는 문화 속에 길들어져 있다.     


이런 폐쇄적 구조는 다양한 시각을 배제하고, 이미 정해진 결론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확증 편향을 키워왔다. 타인의 비판이나 다른 가능성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확신을 굳히는 데 익숙해졌다.     


검찰 조직의 이러한 성향은 윤석열이 지도자로서의 행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양한 목소리를 품어야 할 위치에서, 그는 검찰 시절 내면화한 습성대로 자신의 편향을 확장했다.


검찰이 가진 독점적 권한은 비판을 거부하는 힘이었고, 진실이 아닌, 무조건 한 방향으로만 치달았다. 지도자로서의 균형 감각을 배반하는 것이며, 나아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행위다. 자기 생각이 곧 진리라고 믿었던, 낯 두꺼운 발언과 행동을 이제는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지도자가 확증 편향에 사로잡힐 때 국가는 혼란에 빠진다. 이번 사건은 공적 권한을 가진 자들에게 편향성을 자각하고 극복해야 할 성찰의 장치가 장착되도록 요구한다.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숲을 다시 가꾸려 한다면, 나무를 시들게 한 편향과 폐쇄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검찰 조직의 그늘은 국가를 흔들 수 있는 위협임을, 이제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윤석열의 행위는 철학적으로 “자기 성찰의 부재”로 요약될 수 있다. 인간의 도덕적 성숙은 자기반성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윤석열은 반성이나 성찰이 없었다. 그 결과 국가는 혼란의 바다로 나아갔다. 등대의 불빛을 외면한 채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함선이었다.     


이번 내란죄 사건은 판단의 다양성과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도록 한다. 특히 지도자의 자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편향된 정보 소비는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가 직면한 도전이자,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다.     


국민은 더 이상 지도자의 무책임한 행동에 침묵하지 않는다. 더 나은 민주주의는 우리가 정보 소비의 균형을 이루고, 진실에 기초한 판단을 내릴 때 가능하다.     


진실의 빛을 밝히고,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며, 민주주의의 숲을 다시 울창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숲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며, 우리가 함께 심어야 할 내일의 나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